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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비비 Dec 24. 2020

줄서기에 대한 화학적 고찰

칼럼 #1

 우리의 눈앞에 책에서만 봤던 메테인 분자 하나가 인간 크기로 커져 서 있다고 가정해 보라. 이내 당신과 눈이 딱 마주친 메테인 분자가 말했다. "안녕, 난 메테인 분자야. 반갑지만 악수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내게 한 발짝만 더 다가와도 너는 두통과 구토 증상을 보이며 죽을 수 있거든. 아무튼 잘 부탁해."

 메테인을 살펴보면 피라미드 모양으로 네 모퉁이에 위치한 H가 자기보다 큰 C 주변을 안정적으로 에워싸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떠오르지 않는가? H는 인내심을 가지며 C에게 손을 내밀고 C는 H에게 고마워하며 그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사뿐히 몸을 맡긴다. 이들은 안정적인 결합각을 유지하며 이상적인 공유결합을 완성한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흔히 이유 없이 끌린다는 말을 쓰는 것처럼 저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면서 여러 가지 반응들을 일으킬 뿐인데 굳이 원인을 찾아서 이유를 붙이는 것이 과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메테인은 하나의 전자쌍을 다섯 원소끼리 공유하고 있는 안정 상태의 분자다. 수소 둘이서 결합해도 안정 상태가 되지만 더 안정된 상태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럼 저들은 아직 불안정 상태 아닐까? 메테인을 위해 설명을 해 본다. 저들은 저것이 가장 안정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무리 내에서 활기찬 이야기 상자보다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고로 체험학습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앞 혹은 뒤에서 혼자 터벅터벅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헛헛하지 않다. 짝이 없다 한들 몇 명씩 뭉쳐 다니면 됐지,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처럼 둘씩 짝을 지을 필요가 있는가? 얼마 전 비슷한 성격의 타 학교 친구가 급하게 연락이 왔다. "나 지금 너무 짜증 나. 5명이서 돌아다니는데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그럼 다들 쳐다보더라? 똑같이 웃고 떠드는데 눈초리 때문에 속이 너무 답답해. 왜 나는 매번 혼자일까? 너도 나랑 비슷하잖아. 말 좀 해 봐."


 이제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물끄러미 서 있는 메테인을 바라보자. 탄소 하나, 수소 넷. 어느 누구도 외로워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존재할 뿐. 원소는 얼마가 모이든 서로 잘 지내는데 사람이 다섯 모이면 왜 안 되나? 친구를 위로하려 해도 꺼낼 말이 없다. 전혀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홀수를 기피하고 짝수를 선호하는 현상은 인간 사회에서 매우 흔한 결합 방식이다. 식탁 의자도 2개씩, 4개씩 그리고 6개씩 모여 있다. 왜 홀수는 기피할까?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왜 두려워할까? 눈초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홀수를 핍박할까?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인생이라는 말도 있는데. 메테인도 다섯 이서 잘 지내고 있는데 말이다. 줄서기를 화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짝수만을 고집하는 불완전 결합을 추구하고 있음을 결론지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홀수, 짝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다 온통 짝수를 좋아하는지 몰라. 어쩌면 그것은 짝수의 꿈일지 몰라." 개사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린다. 사람들은 조금 더 자연 친화적일 필요가 있다. 환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말로만 친환경을 고집하지 말고 자연의 이치에 어우러져 살아가란 말이다. 짝수를 선호해도 홀수를 기피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지금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을 수많은 홀수 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분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오늘부터는 홀수로서의 삶에 마음을 억압당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삶. 친구가 셋이든 넷이든 상관하지 않는 삶. 당당해지자, 홀수!




*현재 재학 중인 대학에 입학한 후 쓴 첫 칼럼이다. 문예창작과에 다니던 시절, 소설 전공 교수님께서 내셨던 과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신만의 상상력 사전을 집필하는 과제였는데, 나는 A부터 Z까지, ㄱ부터 ㅎ까지의 목차로 총 49개의 단어를 내 방식대로 정리해 제출했다. 사전 제목은 '편향적이며 종합적인 생각의 백과사전'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응용했다. 그중 목차 C에서 'CH4의 분자 모형'을 나만의 생각으로 정리한 내용이 한 뼘 정도 성장해 칼럼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렇게 썼다. '작은 분자도 인간보다 세상의 이치를 더 잘 알고 있다. 서로 조화롭게 힘을 합치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뻔하디 뻔한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전달하는 것이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하여 과거에도, 오늘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나는 최대한 뻔함이 줄어든 글을 집필하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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