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달 Apr 05. 2016

사막에서의 하룻밤

모래알 침대와 구름 이불, 그리고 낯선 발자국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외장하드에 고이 모셔뒀던 사진과 글들을 꺼내 정리하고 있다. 원래 브런치를 시작한 목적은 문화 공연들을 본 뒤 짧은 글이라도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왠지 여행 콘텐츠를 더 많이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때가 되면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에 써놓은 원고들이 꽤 있었는데,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대략 18개국 45개 도시를 여행했는데 그 시간을 모아보니 6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알리바바처럼 창고에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살았다면 더 많은 곳을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었겠지만, 나는 없는 살림에 모으고 아끼며 다녔다. 학생 때는 장학금과 알바비를 모았고, 졸업 후에는 바로 취직해 한눈팔지 않고 일만 했다. 한참 때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3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옷을 사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 대신에 여행에 투자했다. 또 여행을 갈 땐 여자의 몸으로 큰 짐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교통비를 아낄 목적으로 걷는 시간이 많았기에 최소한의 짐만 챙겨 떠나곤 했다.


인도 자이살메르, 푹신푹신 고운 모래사막


여행으로 '사는 법'을 배우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 인생 경험치가 쭉쭉-올라간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사람이 못 살 곳은 없다는 생각에 우쭐해하거나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현대적인 혹은 고전적인 건축물, 사람들의 생김새 등 신기한 것들을 많이 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사막에서의 하룻밤이다. 세계 곳곳에 사막이 있겠지만 내가 가본 곳은 인도 자이살메르와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곳의 매력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여행 일정상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은 원데이 투어를 해야 했고,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는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인도와 이집트의 사막은  분위기도 달랐고, 사진을 찍으며 다른 매력을 더(?) 느끼게 됐다.


바하리야 사막에서 낯선 여우의 발자국을 발견하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그만큼 난 더 행복해지겠지." - 어린 왕자 中


소설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된 바하리야 사막, 이집트 카이로에서 버스로 5시간 거리다. 많은 여행객들이 검은 화산재가 덮인 흑사막과 석회암으로 덮인 백사막을 직접 보기 위해 이집트를 찾는다. 흑사막은 그 신비로움이 말로 할 수 없으며, 백사막에는 수만 년 동안 바위가 풍화되면서 특이한 모양으로 변한 바위들이 곳곳에 놓여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이 중 닭을 닮아 '치킨 바위'라 불리는 바위는 여행자들 사이에선 굉장히 유명하다.


사실 여행 중에는 이 곳이 어린 왕자의 배경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곳에서 나는 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아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꽤 똘똘한' 사막여우가 떠올랐다. 우연히 만난 사막여우의 발자국 때문이었을까?



잊지 못할 인도 사막에서의 하룻밤

사막까지는 낙타를 타고 이동한다. 인도 남자 사람 몇 명은 나와 함께 사막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낙타를 데리고, 또 염소를 한 마리 데리고 길을 나섰다. 사막은 딱히 길이 없고 위험해 인도인에게 길을 안내받는 수밖에 없단다. 처음 보는 인도 남자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건 조금 꺼림칙하였지만, 여행객 또한 여러 명이 모여서 가기에 별 탈은 없었다.


낙타를 타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 엉덩이가. 두세 시간쯤 갔을까 생각보다 사막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은 사막이 2시간 거리도 안된다는 것. 첫날 우리는 짧은 거리를 돌고 돌아갔더라. 일종의 투어 서비스랄까)


인도의 사막은 고운 모래가 특징이다. "사막에 고운 모래가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고운 입자였다. 등을 대고 누우면 스르르 잠이 올 정도로 포근하기까지 했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은 텐트 대신 침낭을 이용했다.



낙타 등 뒤에 싣고 간 배낭을 꺼내 몸을 돌돌 말아 누운 뒤 하늘을 바라보면 끝없는 은하수가 펼쳐졌다. 온갖 별자리들이 하늘을 수놓았으며, 별똥별이 떨어지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라도 듣는 날에는 '감성 소녀'로 빙의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부터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같은 철학적인 질문까지. 스스로 묻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더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다른 여행지와 다르게 '자신을 찾는 여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배 타고 떠난 일본 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