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진 Jun 10. 2020

그 남자가 나에게 준 것

후안 무노즈 (Juan Muñoz)

스페인에서 태어난 후안 무노즈는 자신을 스토리텔러, 이야기꾼이라고 말한다. 마드리드에 있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두 달 만에 포기하고 열일곱 살 나이에 런던으로 갔다. 1970년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블랑코 총통 아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였다. 이미 1950~1960년대 25만 명 이상 스페인 사람들은 민주주의 억압을 피해 유럽 다른 나라로 떠났다.

Giorgio de Chirico, The Enigma of a Day, 1914 oil on canvas 185.5x139.7cm ⒸMOMA

런던에서 5년간 머무는 동안 평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미술관을 찾았다. 런던 테이트에서 본 달리, 미로, 추상화 작품들은 실제로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대신 키리코 회화가 눈에 들어왔다. 추상화 작품들에는 없는 것이 키리코의 작품에는 있었다. 현실의 순간을 건축물, 조각, 빛, 그림자가 두드러지게 표현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무노즈는 런던에서 스톡홀름으로 건너가 일 년간 머물며 정치적으로 좌파인 사람들과 어울렸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프린트 메이킹(Printmaking)을 공부하기 위해 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았고,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프린트 메이킹을 공부했다. 17살부터 27살까지 작품 작업보다는 여행을 많이 했다. 29살 스페인에 돌아와 처음으로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2년 후 첫 개인전을 열었다. 30대 초반부터 그의 작품 속에는 키리코처럼 건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후 건축물, 조각, 빛, 그림자를 활용한다.

Juan Munoz, streetwise 1998 cement, paint, woodⒸJuan Munoz

"나는 세상을 보고 있었어요. 내 밖의 이미지들이 주는 반향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요. 이미지들과 나를 연결해보려고 했어요. 스페인으로 돌아오고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어떤 남자가 자신의 정원 조각을 팔고 있었어요. 난 그가 조각가라고 인정하지 않았지요. 반면 나는 조각가였는데 조각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있었지요. 내가 조각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남자는 스스로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남자는 시멘트로 정원에 사자 같은 조각들을 만들고 있었어요. 나는 그의 조각을 몇 점을 샀어요.


나는 예술사를 공부했고, 그 남자는 예술사를 공부하지 않았어요. 그는 정원을 꾸미기 위해서 단순히 시멘트로 여러 가지 만든 것이었죠. 그는 신념이 있었어요.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에게 질투가 났어요. 자신을 조각가라고 믿는 그가 부러웠지요. 나는 몇 년을 조각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지 몰라 하고 있었거든요. 그의 작품 언어 일부분을 가져왔어요. 그의 작품 일부분을 부수고 나의 언어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내 조각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지요. 어느새 발코니는 작품들로 가득 찼고 방까지 조각들로 채웠어요."

Juan Munoz, 난쟁이와 나이프 1989, 120x58x40cmⒸJuan Munoz,Instituto Valenciano De Arte Moderno

무노즈는 접었다 폈다 하는 작은 나이프를 주머니에 들고 다녔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나이프가 만져졌다. 내면의 폭력성이었다. 나중에는 신경증에 걸리는 것 같아 나이프를 대신 카드를 넣고 다녔다. 카드 게임을 좋아했다. 카드 게임의 손기술, 속임수를 좋아했다. 그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은 소리 없는 폭력을 당하고 있다. 걸을 수 있는 발이 없고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로맨틱한 모습의 발레리나를 만들기는 두려워요. 발레리나는 영원히 움직여야 하고 어디론가 가야 하니까요."


Juan Munoz, 두 발레리나, 1990 Bronze, ceramic, wood 44.5x57x56cmⒸJuan Munoz, artnet.com

30대 중반부터 무노즈는 인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사망할 때까지 완성한 인물 조각들이 유명하다. 1980년대 회화나 사진 속에 인물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조형적 인물은 꺼리는 분위기였다. 난쟁이와 복화술 자의 인체 모형들은 그의 시작점이었다. 건축물을 연극의 무대처럼 사용했다. 관객이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싫었다.


명작 회화 역시 꾸며낸 것으로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위대한 마스터들은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창조해내며, 회화 속 공간의 창조가 위대한 미술의 역사였다. 조각은 회화에 비해 소외당했다. 모더니즘 시대 와서 조각은 '나도 독립적인 예술의 한 분야야'라고 소리칠 수 있었다.

Juan Munoz, Sin Titulo, 1992 cloth figures, iron, linoleum 70x120x34cm

ⒸJuan Munoz, Instituto Valenciano De Arte Moderno


시각적인 바닥은 내면의 긴장감을 준다. 관람객의 인식에 인물들이 주는 심리학적 공간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의 눈은 당신을 바보로 만듭니다. 눈을 믿지 마세요. 본다는 행위에 질문을 품으세요."

무대 위 공연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는 듯하다. <A place called Abroad>는 건축적인 요소와 연극적인 요소들을 함께 넣었다. 뉴욕의 창고를 빌려 다른 공간을 설계하고 인물들을 넣었다. 걸어가며 새로운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다른 장면들이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빛과 어둠을 활용했다. 모던 아트의 완전한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Last Conversation Piece, 1994-1995 Bronze 66x244x321inch ⒸHirshhorn Museum, photo Brian Fitzsimmons

셋은 모여있고 둘은 떨어져 있다. 셋은 모여 뒤에 멀리 있는 이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표정은 그리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자연스러운 인물이 아닌 괴상한 느낌마저 든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볼 추상적인 모습이다. 관람객은 인물들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에는 참여할 수 없다. 미묘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함께 하지만 동시에 함께하지 못한다.


Juan Munoz, Conversation Piece, 1999, ⒸWendy North, wikimedia.org




Juan Munoz, Many times, 1999, polyster resin 145x40x40cmⒸJuan Muñoz. Photo Jean Luc Lacroix

무노즈의 가장 유명한 작품 <Many times>이다. 145센티 키를 가진 백 명이 모여있다. 색은 무광 회색, 웃고 있는 아시아인이다. 무노즈는 이들을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모두 대머리에 눈을 감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그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어떤 표정을 하며 대화하는가, 서로 인사를 하는 사람들, 악수하는 이들, 서로를 비웃는 표정인가 살펴본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있다. 모두 발이 없다. 그들의 신체는 머리부터 발목까지이다.

Juan Munoz, Many times 1999 (좌)ⓒJuan Munoz  (우)Ⓒphoto Courtesy Marian Goodman

서로 대화하고 인사하고 웃고 있지만 서로의 감정과 반응을 무시하는 것들이 오고 간다. 유럽인의 눈에 비친 '다름'을 모도 톤으로 표현했다.  


텅 빈 곳은 서 있는 개인들에게 더 긴장감을 준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있지만 낯선 이처럼 고립감을 준다.

Juan Munoz, Many Times, detail, 1999, photoⓒBen Davis

이들의 손은 팔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따로 떨어져 있는 고무장갑을 붙인 듯하다. 어색한 대화, 잘린 몸의 부분들은 공허함을 준다.

Juan Munoz, Double Bind 2001 Fiberglass, metal,polyester,resin pigmented, wood Variable dimensions

© The Estate of Juan Muñoz / Photo©Tate


사망하기 전 마지막 유작 <Double Bind>은 어두운 양쪽 벽이 3층까지 이어진다. 인물들과 건축적 요소, 빛과 어둠을 활용했다. 


조각가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조각가라고 생각하며 조각을 만들었던 이웃집 남자. 조각가였지만 조각을 만들지 못했던 모노즈 자신, 이 둘을 발견한 이후 모노즈는 이분법을 즐겼다. 설치 환경과 전통적인 조각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단순히 전통적인 조각가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각상이 조각품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가르기는 그에게 도전이었다. 단순한 조각가의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은 조각에 건축을 입히고 회화적 요소 명암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참고

Beal Benezra, Olga M. Viso, Juan Munoz,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이미지 

https://juanmunozestate.org                                                                                                                                                                                                                                             



Ⓒ 이 글은 저작권법에 따라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필자의 서면 허락 없이는 영리적 비영리적 목적의 글 인용이나 게재를 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침묵으로 말하다ㆍ요코 오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