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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Nov 05. 2020

과거와 현재 사이 방랑자ㆍ피터 도이그

피터 도이그 Peter Doig

2살, 6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곳에 되돌아가 남은 평생을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때 시간으로 나를 이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어야 할까.


195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피터 도이그는 두 살 때 가족들과 남아메리카 대륙 북쪽 카리브해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Trinidad 섬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무역 관련 일을 했다. 일 년 후 캐나다로 이주했다.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 보내며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영국 윔블던 아트 스쿨에서, 대학은 런던 세인트 마틴, 첼시 스쿨에서 수학했다. 도이그는 동시대 예술가 중 중요한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작가이다.

카리브해 작은 섬 트리니다드는 1498년 콜럼버스의 3차 항해로 세상에 드러났다. 섬은 1532년 스페인 식민지였다. 1700년대 스페인들이 모든 원주민을 멸족했다. 1802년 섬은 영국 손에 넘어갔다. 1833년 섬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제를 폐지했다. 1950년부터 섬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1962년 트리니다드는 영국 연방 자치국에서 독립했다.     


도이그 삶의 여정은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1997년 38세 도이그는 트리니다드 섬에 초대받는다. 친구이자 화가였던 크리스 오필리 Chris Ofili가 그를 초대했다. 섬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낸 후, 스페인 항구(Port of Spain)라 불리는 항구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후 섬과 독일 뒤셀도르프를 오가며 미술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Peter Doig, The Architect's Home in the Ravine, 1991, Oil on canvas, 200x250cm ⓒSotheby

2002년 도이그는 트리니다드 섬에 돌아가 정착할 생각을 했다. "난 장되었습니다. 백인 예술가가 독립된 지 얼마 안 되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바르셀로나로 수학여행 갔던 학창 시절처럼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나에게 흥분되는 도시였습니다. 섬의 스페인 항구(Port of Spain)는 내가 두 살 때 살았던 곳입니다. 지금 내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랍니다. 나와 어릴 때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섬에 도착하고 내 작품은 많이 변했습니다."


도이그란 이름은 1990년대 초반부터 려지기 시작했다. 도이그는 카누가 있는 풍경화 여러 점을 그렸다. 영화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1980년)에 영향을 받았다. 풍경화들은 캐나다 황무지를 떠오르게 한다. "파스텔 톤 장면들과 내 경험이 묻어나는 풍경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있다. 모든 그림들은 자서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서전 읽기를 만드는 것을 거부한다."[1]


그림 작업 대부분은 런던 킹스크로스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캐나다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억 찍었던 사진들에 의존했다.

(좌) Henri Matisse, Open Window, Collioure, 1905, Oil on canvas, 55.3x46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Image:Wikipedia

(우) Peter Doig, Swamped, 1990, Oil on canvas, ⓒChristie.com


왼쪽은 마티즈, 오른쪽 도이그 <늪>이다. <늪>은 2015년 경매에서 25.9 밀리언 달러에 낙찰되었다. 새하얀 카누가 눈에 띈다.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익숙한 풍경일 수 있는 장면이 낯설게 느껴진다. 붉은색과 짙은 초록색이 강하다. 마티즈가 사용했던 강렬한 빨강, 초록색이 떠오른다.

Peter Doig, Canoe Lake, 1997-1998, Oil on canvas, 200x300cm ⓒSaatchi Gallery

카누는 도이그 작품에 중요한 소재다. 초록색 카누에 기대 있는 사람은 호수를 표류하는 미지의 존재 같다. 어딘지 모를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연초록색 물은 판타지를 보여준다. 침묵. 조용한 물살. 따뜻한 노란색 물. 기이한 느낌. 슬프면서도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실과 비현실 그 경계에 있는 장소 같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억의 한 장면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도이그 작품 속 인물들은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춰지거나 흐릿하다. 신비로움을 준다. 도이그는 지루하지 않게 오래 볼 수 있는 얼굴. 화가 자신과 관객을 놀라게 하는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Peter Doig, 100 Years Ago(Carrera), 2001 Oil on canvas229x358.5 cm ⓒPompidou

도이그는 종종 익숙한 오브제와 배경을 사용한다. 그 속에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마법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때문에 도이그 회화를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부른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문학에서 쓰이는 기법이다. 환상과 현실을 오고 가는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Peter Doig, Pine House(Rooms for Rent),1994, Oil on canvas 180x230.5cmⓒChristies.com

2014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8 밀리언 달러에 낙찰된 <소나무 집>이다. 화재로 소실된 집터에 새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본 도이그는 폐허가 되었던 이전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도로에 얼어있는 빙판 위로 집이 반사된다. 집 일부분은 푸른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겨울과 여름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다.

                          

(좌) Edvard Munch, 재(Ashes), 1894, Oil on canvas, 120.5x141cm, Image:wikimedia

(우) Peter Doig, 호숫가 메아리(Echo Lake), 1998, Oil on canvas, 230.5x360.5x5.2cm ⓒTate


왼쪽은 뭉크의 <재 Ashes>, 오른쪽은 도이그의 손꼽히는 대표작 중 하나인 <호숫가 메아리>이다. 이 작품은 <재>와 함께 언급된다. 도이그는 말한다. "뭉크의 <재>에서 색채와 표정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녀가 호수를 바라본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 그림에는 경찰관이 호수를 가로질러 우리를 향해 소리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나는 뭉크 그림을 직접 착안했습니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흰 수평선이 보인다. 90년대 다른 회화들처럼 색으로 전체적인 구성을 나누고 있다. 수평선 위로 흙, 무성한 잡초를 파스텔색으로 표현했다. 그 뒤 미국식 경찰차가 있다. 차 위로 밝은 빛이 난다. 빛은 오른쪽 곧게 뻗은 나무 높은 곳까지 비춘다. 나무 끝은 반대편 전신주와 수평을 이룬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와 넥타이를 맨 남자는 뭉크 그림 속 여자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우리를 향해 소리친다. 어둡고 텅 빈 호숫가는 남자의 메아리로 가득 찬다. 물결 위로 풀과 남자 모습이 반사된다. 발 주변으로 작은 물결이 일고 그림자가 비친다. 도이그에게 물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연물이다.

Peter Doig, Country-rock (Wing mirror), 1999, Oil on canvas, 194.9x270cm, Image:artnet.com

2014년 6월 런던 소더비에서 14.5 밀리언 달러에 낙찰된 <컨트리 록 Country-rock>이다. 노란색 도로와 풍경을 가로지르는 흰 바리케이드, 로 무지개가 보인다. 우리는 상상을 해본다. 무지개가 진짜 그곳에 있을 수 있을까. 있는 날이었나? 검은색 때문에 단순히 터널일 수도 있겠다 싶다.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에서 거대한 돌이 하늘 위에 떠있었다. 도이그의 무지개는 지면에 붙어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두어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한다.

Peter Doig, Buffalo Station II, 1998-98, Oil on canvas, 269.9x69cm Private Collection,LondonⓒSotheby

1960, 70년대 컨트리 록이 유행했다. 1978년 롤링 스톤은 <Some girls> 앨범 미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19살 도이그는 차를 끌고 토론토를 출발했다. 몇 시간을 운전해 미국 리치 스타디움 Rich stadium 공연장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20년이 지난 후 사진을 보며 그날의 공연장을 그렸다.


도이그는 필름과 회화 작업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찍히는 사진의 도움을 받지만, 도이그의 회화는 숨겨져 있고,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풍경화이다.

Peter Doig, Grande Riviere, 2001-2002, Oil on canvas, 230x360cm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1990년대 후반 다시 카누 주제로 돌아왔다. 이 시기 얇은 페인트 도포 작업과 두드러지게 과감한 지평선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2000년 도이그는 트리니나드 섬을 잠시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이용해 <그랜드 리비에레 Grand Riviere>를 완성했다. 이년 후 섬에 정착하고 완성한 첫 작품이 되었다. 별이 물에 비친다. 시간이 멈춤 듯 고요한 순간이다. 평범한 자연 풍경으로 낯선 감정을 전달한다. 대담한 흰색이 강한 느낌을 준다. 기억을 호수 위 비친 별과 물로 담아냈다. 제목 리비에레 Riviere는 아프리칸스어(Afrikanns)이다. 아프리칸스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에서 쓰는 언어다. 트리니다드 섬은 식민지 역사를 가졌기에 프랑스, 스페인, 영어를 사용한다.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 문화 역시 남아다.

Peter Doig, Gasthof zur Muldentalsperre, 2002-2004, Oil on canvas, 196x296cm Image:wikiart

<가스타우스 추어 멀든탈슈페레 Gasthof zur Muldentalsperre>에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나타난다. 오로라가 펼쳐진 밤하늘 풍경이다. 두 남자가 알록달록한 벽돌 길 앞에 서 있다. 얼굴색은 청색이다. 비현실 속 인물처럼 느껴진다. 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로 거대한 캔버스를 채운다.


도이그 런던 콜로세움에서 일하던 어느 날 친구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작품 <페트루시카 Petrushka> 공연을 관람했다. 무용수들은 얼굴을 색칠하고 인형 복장을 입고 춤춘다. 도이그와 친구는 공연에서 봤던 의상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도이그는 사진을 인물 스케치나 연구 자료로 사용했다. 가지고 있던 풍경화 엽서 사진과 직접 찍은 사진을 합했다. 서로 다른 사진을 합해 도이그만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경치는 묘한 색채로 변했다. 연극 무대 위 서 있는 배우들 같다. 저 돌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세계가 있는 듯 상상하게 만든다. 작품 제목은 독일의 한 주점 이름에서 따왔다.


영국 예술회 의장인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는 도이그에 대해 말한다. "그의 그림은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입니다. 현대인의 불안하고 멜랑콜리한 표현, 불확실성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도이그의 어둠은 고야의 그것들을 연상시킵니다." 도이그는 항상 현장에서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봤던 장면과 머릿속에 있는 기억. 그 사이에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좌) Paul Gauguin, 타히티안(Tahitian pastorale or Faa Iheihe), 1898, Oil on canvas, 87x113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wikiart

(우) Peter Doig, 크리켓(Cricket paragrand), 2006-2012, Oil on canvas, 300x200cm, private collection


2002년 섬으로 이주하고 최근까지 많은 작품들이 섬에 관한 것이다. 왼쪽은 고갱이 그린 타히티 원주민이고, 오른쪽은 도이그가 표현한 트리니다드 사람들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스포츠 크리켓을 하고 있다. 이그가 고갱 영향도 받았다고 언급되는 것은 강렬한 색으로 원시적인 느낌의 회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히티에 가서 여생을 산 고갱과 영국 식민지였던 트리니나드 섬에서 살고 있는 도이그. 단지 강렬한 색을 넘어서 둘은 다른 듯 닮아 보인다.  

(좌) Paul Gauguin, 파페 모에(Pape moe) 1893, Oil on canvas, 99x75cm Zurich private collection, Image:wikimedia.org

(우) Peter Doig, 펠리컨(Pelican), 2003, Oil on canvas, 276x200.5 cm, ⓒMichael Werner Gallery New York and London

 

타히티에서 고갱은 원주민들과 교류하고 좋은 관계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말년은 쓸쓸했. 도이그는 섬도착해 영화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큰 작업실을 영화관처럼 섬사람들에게 오픈했다. 스튜디오 필름 클럽 Studio Film Club을 만들었다. 작업실 벽을 스크린 삼아 매주 목요일 사람들과 영화를 본다.

(좌) 도이그가 찍은 사진. 트리니다드 섬의 스페인 항구, 라페루즈 묘지 담벼락 ⓒDoig's Archive

(우) Peter Doig, Lapeyrouse Wall, 2004, oil on canvas, 78 3/4x98 1/2inches, ⓒMorning Paramin


2002년 섬에 도착한 도이그는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지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찍었다.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는 시점 속으로 걸어다. 하늘, 길, 벽, 공기, 빛만 있다. 앞을 막 지나갔을 남자. 혼자 걷는다. 도이그 작품들에는 혼자 있는 인물이 많다. 분홍색 작은 우산을 들고 햇빛을 피해 담벼락 그림자를 밟으며 걷는다. 적막한 마을의 기운이 감돈다. 붉은빛이 도는 담장은 정적인 시간 속 동적인 남자의 발걸음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작품 제목 <라페루즈 벽 Lapeyrouse wall>에 라 페루즈 Le Perouse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아래 있었던 해군 제독 이름이다. 라 페루즈(Picot de La Peyrouse)는 1778년 배 두척과 선원들을 끌고 태평양 탐험에 나섰다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라 페루즈는 스페인 항구 외곽 진흙땅을 매입했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 노예들을 시켜 숲을 사탕수수 땅으로 개간했다. 무스 코바도(Muscovado) 설탕을 생산하기 위한 첫 번째 공장을 지었다.


스페인은 섬을 점령하고 라페루즈를 공동묘지로 사용했다. 1797년 영국이 지배했을 때는 더 큰 묘지가 필요했다. 묘지 벽을 세우고, '구묘지'라는 표지판을 세웠다. 현재 라페루즈 묘지에는 영국 등 여러 나라들 기념비, 중국 비문이 새겨진 무덤, 프랑스 귀족 가문 전사자들을 위한 작은 맨션이 남아있다. 라페루즈는 식민지 역사, 여러 문화를 품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사진첩 같은 곳이다.

Peter Doig, Blotter, 1993, Oil on canvas 240x199cm ⓒWalker art gallery

도이그는 살았던 기억 속 장소에 상상력을 더한다. 괴이하거나 에너지 넘치는 자연풍경. 눈 덮인 베일에 싸인 풍경. 완전히 보이지 않는 인물. 잔잔한 물 위 떠 있는 카누. 강렬하지만 몽환적이면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국 미술 평론가 조나단 존슨(Jonathan Jones)은 그를 '터무니없는 생각과 리드미컬한 진정한 상상력, 작품에 대한 진실한 마음, 겸손한 창의력을 가진 예술가'라 평했다.

Peter Doig, Milky way, 1989-1990, Oil on canvas, 152x204cm ⓒPeter Doig DACS 2015, Image:Scttoish National Gallery


도이그는 2살 때 트리니다드에 머물다 19살까지 캐나다에서 살았다. 고등교육은 런던에서, 지금은 트리니다드로 돌아와 살고 있다. 유목민처럼 대륙을 넘나들며 살았다. 남미, 북미, 유럽을 떠돌았던 시간들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방랑자가 아닌 거주으로 살았던 나라들. 그곳들은 그리는 방식과 무엇을 그리는 가에 대한 영향을 주었다.  

Peter Doig, Lion in the Road: Sailors, 2019 ©Peter Doig. DACS 2019 Image:Michael Werner Gallery

도이그는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다. 19세기 마티스, 고갱, 모네와 현시대를 잇는 연결고리의 예술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작품이 자서전으로 읽히고 싶지 않다는 그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사진처럼 선명하지만 물에 반사된 카누 속 인물처럼, 분리되어 있으면서 무의식 속에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일까. 사진은 기억을 남기고, 붓은 상상력을 더해 기억과 하나가 된다.






참고문헌


[1] Hilke Wagner, "The Fortunate Traveller" in Peter Doig: Metropolitain, Cologne: Walther Konig, 2004, p.12

Anrian Searle, Kitty Scott, Catherine Grenier, Peter Doig, Phaidon, 2011, p.98

Vienne secession talk 'Exhibition talk:Peter Doig and Matthew Higgs', 2019

Scottich National Gallery, Edinburgh, 'Peter Doig No Foreign Lands' exhibition 2013. 8

https://www.saatchigallery.com/artists/artpages/doig_canoe_lak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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