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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Jun 18. 2020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실비아 슬레이

1975년 뉴욕주 대법원이 브룽크 Bronx 미술관에 전시된 한 작품을 내리라는 캠페인에 앞장섰다. 재판부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남성 누드화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남성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나타난 그림이었다.



실비아 슬레이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를 그리지만, 남성 누드화를 그린다. 실비아는 회화 작품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왜 유명하다는 명작들은 모두 여성 누드화인가? 예술가는 남성이고 모델은 여성인가? 오랫동안 왜 서양 미술사는 남성의 시각에 의한, 남성 관객을 위한 것이었는가? 이러한 관점들을 벗어나려고 벨라스케스, 티션, 앵그르, 보티첼리, 지오르지오, 앵그르의 작품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앵그르, Turkish Bath, 1862, 108x108cm, oil canvas, wikiart.org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터키탕>(1862)이다. 이 작품은 실제 여성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상상으로 한 스케치와 다른 작품들의 초안들을 보고 연구해 완성한 그림이다.

Sleigh, Turkish Bath, 1973, 193x259.1cm oil on canvas ©Estate of Sylvia Sleigh


실비아는 앵그르의 작품 제목 <터키탕>을 그대로 가져왔다. 수많은 여인 대신 실비아가 알고 지내던 친구, 동료 예술가(Scott Burton, John Perrault), 남편 로렌스가 등장한다. 로렌스는 오른쪽 구석에 왼팔을 기대고 누워있는데, 마치 마네의 올림피아가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던 모습과도 같은 시선으로 캔버스 밖을 쳐다보고 있다.


남편 로렌스는 런던대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처음 만났다. 그는 실비아보다 열 살 많은 유부남이었지만, 둘은 미술에 관해 대화하다 연인이 된다. 로렌스는 40개가 넘는 실비아 회화 작품 속에 등장한다. 로렌스는 그 시기 성공한 큐레이터이며 비평가였지만 실비아의 작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글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로렌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고, 특정 예술가나 운동을 옹호하는 비평가는 아니었다. 1950년대 '팝 아트(Pop Art)'라는 단어를 처음 쓴 비평가였다. 로렌스가 언급한 이후 미술사에는 팝 아트라는 용어와 그룹이 등장하게 된다.


로렌스가 뉴욕 구겐하임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둘은 1961년 미국으로 이주한다.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 아트 등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실비아는 뉴욕 미술계 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남성 누드화를 시작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급진적인 예술 운동들이 일어났고 그중 하나는 페미니즘이었다. 실비아는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한다.

(좌)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4, oil on canvas, 119x165cm, wikipedia

(우) Sleigh, Imperial Nude, 1977, oil on canvas, 107x168cm, Private collection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실비아의 <Imperial Nude>, 이 두 작품은 구도나 구성이 비슷하다. 실비아는 고전 회화의 구성을 가져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며,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강조하고 싶었다. 왜 여성만 유혹하는 포즈로 누워있어야 하는가. 남성과 여성의 몸은 동등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라 말하고 싶었다.



고전 회화부터 프랑스혁명 시기까지 회화 속 여성은 항상 누드 모델의 주인공이었다. 프랑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으로 바뀌는 격변기를 맞이하면서 여성운동이 시작된다.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영국, 독일 그리고 미국까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퍼진다.

(좌) 마네, 풀밭 위 점심 식사, 1863, oil on canvas, 208x264.5cm, wikipedia

(우)Sleigh, Concert Champêtre, 1976 oil on canvas, 182.9x203.2cm ©Estate of Sylvia Sleigh


마네는 여성 누드를 현실적 인물로 나타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캔버스 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흰 피부 여성은 자유분방했던 모델 빅토린 뫼랑이다. 그녀의 허벅지 근육, 접힌 뱃살, 살집을 그대로 표현했다. 관객들은 왜 이렇게 이 여성을 현실적으로 그렸는가? 비난을 퍼부었다. 여성을 신화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묘사한 큰일을 해낸 마네의 그림이었지만, 이 그림조차도 실비아에겐 한 커플 더 벗겨야 하는 고정관념과 같은 그림이었다. 실비아가 재해석한 잔디밭 위 남녀는 함께 옷을 벗고 있다. 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시선이 엇갈리지 않고 편안해 보인다.  

Sleigh, Paul Rosano in Jabobsen Chair, 1974 oil on canvas, 132x142cm ©Estate of Sylvia Sleigh

이 붉은 의자는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제이콥센이 1958년 호텔 라디슨에 두려고 디자인했다. 빨간 의자에 앉아있는 무명 모델 폴 로사노는 실비아의 다른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서양 미술사에서 그리는 사람은 남성이었고, 그림 속 여성은 항상 수줍은 모습으로 묘사되었어요. 나는 내 관점을 넣고 싶었어요. 남성이건 여성이건 상관없이, 단지 지적이고 인간적이면서 사려 깊은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랑과 기쁨의 휴머니즘도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 안에는 긴장감, 수치심, 부끄러움 따위는 없어요. '누드화는 섹슈얼리티가 있어야 한다'라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싶었어요.[1]


Sleigh, Paul Rosano Reclining 1974 oil on canvas137x198cm Tate Modern©Estate of Sylvia Sleigh

작품에 등장하는 실내와 정원 실비아의 집이다. 실비아는 남편과 함께 많은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중 폴 로사노는 그녀의 집에서 직접 모델이 되어주었다.

Sleigh, Annunciation: Paul Rosano, 1975, Oil on canvas, 228.6x132.08cm, paintersonpaintings.com



(좌) 렘브란트 Sampling officials, 1662, Oil on canvas, 191.5x279cm, wikiart

(우) Sleigh, Soho 20 Group Portrait, 1974, oil on canvas, 182.88x243.84x7.62cm, wikipedia


왼쪽은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던 남성의 길드 이사회를 표현한 렘브란트의 <직물 길드 이사회>이고, 오른쪽은 여성 예술가에게 전시회를 열 기회를 주었던 소호 갤러리 멤버들을 그린 실비아의 <소호 Soho 20>이다. 실비아는 <소호 20>뿐 아니라 여러 기관의 일원으로, 여성 예술가들의 전시회 작품 활동 지원에도 도움을 주었다.


실비아의 남성 누드화가 우리에게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 회화에 이미 익숙하게 길들어서일지 모른다. 실비아는 1970년대 추상 표현주의,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아방가르드가 유행할 때 고전을 들여다보며, 사회가 반기지 않는 남성 누드화에 도전했다. 유행에 따라가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과거의 시각들을 되짚어 봤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는 실비아의 시선 덕분에 미술사는 한 가지 종류의 시선을 더할 수 있었다.


참고

[1] Brooklyn Museum, https://www.brooklynmuseum.org/eascfa/about/feminist_art_base/sylvia-sle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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