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올림피아> 1863 캔버스에 유화 130.5x190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마네는 원근법을 버리고, 평면성을 강조하는 시도들을 했다. <올림피아>는 누드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면서 현대미술의 시작점이 되었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vs 올림피아
올림피아가 탄생하기 300여 년 전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누드화는 예술의 중심에 있었다. 실제 살아있는 듯 활기차며 생명력은 넣은 듯 표현했다. 베네치아 화가 조르조네의 비너스 몸은 길다.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사랑의 여신,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시기 여성의 누드화는 널리 그려지던 주제가 아니었다. 머리 위로 올린 팔과 내려진 손은 관능적으로 보인다.
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1510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언덕의 능선이 몸의 곡선과 함께 어울린다. 인간의 인체가 자연 속 하나의 생물, 유기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를 대고 있는 붉은 천은 따뜻함을 주고 있다.
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는 서양미술사에서 옆으로 누워 있는 첫 누드화였다. 조르조네 이후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티치아노, 패리스 보르도네, 안니발레 카라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귀도 레니, 디에고 벨라스케스, 고야, 알렉산드르 카바넬, 마네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간 수많은 화가들이 옆으로 누워있는 비너스, 누드화를 탄생시킨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VS 올림피아
조르조네의 친구였던 티치아노도 비너스를 그렸다. 티치아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16세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사랑의 상징, 아름다움, 다산의 상징으로 완벽한 르네상스 시대 여성을 표현한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후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비너스를 응용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 그림은 1538년 구이도발도 2세 델라 로베레 Guidobaldo II della Rovere 공작이 아내를 위한 결혼 선물로 티치아노에게 의뢰했다. 티치아노의 <Girl in a Fur Coat>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여성과 같은 모델이다.
(왼)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화 119x165cm 우피치미술관 (오) 마네 <올림피아> 1863
올림피아는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먼저 놀란다. 130.5x 190cm 미터에 달한다. 실제로 올림피아가 파리 살롱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렇게 큰 누드화에 놀랐다. 미술관 벽을 누드로 꽉 채울 만큼 시선을 사로잡는다. 관람객의 시선은 캔버스 안에 모든 것이 올림피아 몸으로 가득 차게 된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오른손에 사랑의 꽃, 장미를 들고 있다.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역시 사랑의 여신,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상징한다.
(왼)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발 아래 강아지 (오) 마네 <올림피아> 발 아래 고양이 침대 발끝 웅크린 작은 강아지는 부부간의 정조, 충성심을 상징한다. 반면 마네의 검은 고양이는 매춘부를 상징한다.
카소네 cassone 궤짝(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진 목제 수납가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부유한 집의 가구) 안을 뒤적거리는 하녀들은 신부의 의복을 담고 있다. 어린 소녀를 쳐다보는 여성은 모성애를 상징한다. 장소는 실내 궁의 인테리어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대부분 티치아노의 작품들은 부유한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의뢰인이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완성되고 327년 뒤 파리 살롱에서 마네의 올림피아가 대중 앞에 선보였다.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작품, 성급하게 그린 결과물' 비평가들과 대중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1855년에서 1881년 인상파 전시회가 시작되던 초창기 마네의 그림은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실외 바깥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던 시기였다. <올림피아>를 작업할 때 마네는 미리 스케치 작업을 하지 않았다. 티치아노와 반대였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아주 세밀하고 꼼꼼하게 준비된 작업이었다.
티치아노와 다르게 마네는 크고 작은 붓놀림을 사용했다. 그 차이는 베개에서 볼 수 있다. 마네의 붓은 베개의 질감을 살렸다. 불규칙적인 것이 티치아노의 미세한 촉감이 있어 보이는 베개와 다르다.
마네는 올림피아의 뒷 배경을 톤 다운시켰다. 이로 인해 창백한 올림피아의 얼굴이 확연히 대조되며 강조된다. 반면 티치아노의 그림 속 두 하녀들이 입은 흰 옷은 우르비노 비너스 몸의 색깔과 덜 대조적이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시선은 올림피아가 왼손으로 가린 다리 사이로 시선이 간다. 올림피아의 왼손은 방어하듯 가리려고 하는 듯 보인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왼손은 부드럽고 편안하게 놓여있다. 비너스에 비해 마네의 올림피아는 각성되고 깨어있는 듯한 몸의 긴장감을 준다.
티치아노의 작품 속 여성 누드들은 대부분 긴 나체에 누워 있는 편안한 자세다. 비너스는 우아하고 상상 속의 이상적인 미에 가깝다. 비너스의 쿠션은 좀 올려져 있다. 우리의 시선은 쿠션의 선과 몸의 선을 따로 본다. 티치아노의 방과 창문은 열려있다. 깊은 공간을 펼쳐 보인다. 보는 이로 하여금 넓은 방을 상상하게 한다. 마네의 올림피아는 어두운 배경에 닫힌 공간이다. 단지 올림피아만 강조돼있다.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올림피아의 시선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마네는 보는 이가 방 안에 갇힌듯한 느낌을 주게 했다.
두 그램의 주제는 대중이 어떻게 반응했는가가 중요하다. 마네는 종교화, 신화 속 인물보다 올림피아라는 평범한 매춘부를 담았다. 그리고 티치아노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올림피아는 작고 단단한 몸을 가졌다. 짧은 다리, 넓은 얼굴,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는 몸, 이것이 평범한 여성들의 몸이다."라고 말한다. 흑인 하녀는 올림피아를 쳐다보고 있다. 흑인 하녀의 시선이 올림피아의 누드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작품을 비슷한 형식으로 다른 상징물들로 바꾸었다. 도상을 기본으로 했을 때 프랑스 대중들은 올림피아를 매춘부로 인식했을 것이다. 꽃다발은 흑인 하녀의 손에 한 가득히 있다. 아마도 올림피아를 위해 손님이 주었을 법한 꽃다발이라 이 역시 올림피아를 매춘부로 인식되게 한다.
마네는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누가 손님인가? 캔버스 속에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림을 보고 있는 관람객 역시 손님이란 말인가? 마네는 그림을 관람하러 오는 남성 관람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숨겨진 화가의 싸인
티치아노의 다른 작품 <비너스와 오르간 연주자>에 누워 있는 비너스와 오르간 연주자가 함께 보인다. 연주자는 음악을 연주하고, 예술가는 누드를 연주한다. 비너스의 팔꿈치 아래 흰 강아지가 있다. 전통적으로 애완견은 애인을 보호하는 의미였다.
(왼) 티치아노 <비너스와 오르간 연주자> 1548-9 Gemaldegalerie, Berlin (오) <비너스와 오르간연주자>의 확대한 강아지 얼굴 & 티치아노 흰 강아지는 티치아노 자신을 상징한다. 캔버스의 오른쪽 하단 코너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사인을 적는 곳이었다. 싸인을 쓰는 것 대신 자신의 턱수염을 강아지의 털로 표현했다. 강아지는 입을 벌리고 짖고 있는 듯하다. 마치 메두사의 얼굴과 시선이 닮았다.
그리고 300년 후 마네가 올림피아를 그릴 때, 마네는 분명 티치아노 그림 속 흰 강아지를 보았을 것이다.
(왼) 마네 <올림피아> (오) 확대한 올림피아의 다리 부분과 검은 고양이 마네는 흰 강아지 대신 검은 고양이를 넣었다. 고양이 역시 강아지처럼 지킴이 역할을 한다. 캔버스 밖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 하단 코너, 티치아노가 강아지 털로 자신의 수염을 표현했다면, 마네는 고양이 다리에 자신의 이니셜을 넣었다. 고양이의 다리는 마네 Manet의 M을 그리고 있다. M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마네의 작품 속에도 숨어있다.
마네는 고야의 그림을 봤을까?
고야는 마네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다.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야는 찰스 4세의 궁정화가로서 귀족들의 삶과 초상화를 그렸다. 고야의 초상화는 얼굴과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의 성격, 인품, 느낌이 묻어나게 표현했다. 고야의 <옷 벗은 마야>는 <올림피아>보다 60여 년 전 세상에 나왔다.
(왼) 고야 <옷 벗은 마야> 1797-1800 (오) 마네 <올림피아> 1863 고야의 <옷 벗은 마야>가 세상에 나왔을 때 재판소에 회부되어 왜 이런 외설적인 누드화를 그렸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 시기 스페인 누드화는 신화 속 인물들이 주인공이었거나, 나체이어도 일부 중요한 부분을 가리거나 뒷모습, 옆모습을 표현했다. 마네의 <올림피아> 역시 파리 살롱에 걸렸을 때 관객들은 지팡이로 그림을 때리며 화를 냈고, 비평가들은 혹평을 써냈다. 프랑스 전통 회화에서 누드화는 아름다운 여성의 미를 표현해 왔기 때문이었다.
마야는 신화 속 여성이 아닌 현실 속 인물이었다. 그림 속 모델은 고야의 연인이었던 35세 미망인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이 있고, 그림을 의뢰했던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 페피타 츠도우라는 설이 있다. 진짜 모델이 누구인지 고야는 죽을 때까지 밝히지 않았다. 올림피아는 역시 현실 속 여인이었다.
마야 Maya라는 뜻은 풍만하고 요염한 여자라는 뜻이다. 반면 올림피아 Olympia는 1860년대 파리 매춘부들이 많이 쓰던 이름이었다. 마야는 웃음기 띈 얼굴로 부드러운 시선을 보이는 반면 올림피아는 웃음기 없는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야와 올림피아는 완전한 인간의 누드를 훤히 드러낸다. 시선은 관객을 빤히 응시하는 두 누드는 당시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현대 작가가 만든 올림피아
모리무라 야스마사는 1951년생 일본 작가이다. 야스마사는 예술사 속 유명한 작품들 안에 자신의 얼굴과 몸을 넣는 작업을 한다. 모나리자, 프리다 칼로, 벨라스케스의 작품 등에 야스마사 자신의 사진을 넣는다.
모리무라 야스마사 <푸타고 Futago 자화상> 1988 이미지:modernart2013
마네의 <올림피아>에 야스마사의 얼굴과 몸을 넣었다. 야스마사가 자신의 몸과 얼굴을 넣음으로써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양인이 동양인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인종과 성의 이데올로기를 한 작품 안에 집어넣었다. 올림피아가 깔고 있던 꽃이 수놓은 천은 기모노로, 검은 고양이는 새끼 검은 고양이 조각상으로 대체되었다. 이 새끼 고양이 조각상은 일본의 가정과 가게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Clark, T.J. (1999) The Painting of Modern Life: Paris in the Art of Manet and His Followers. Revised edi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p.86
Anne D’Alleva Methods and Theories of Art History Laurence King Publishing, p.116
http://www.hasta-standrews.com/features/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olympia/ywfei4rxgcso1qhlen-gb
참고 이미지
wikipedia
www.everypainterpaintshimself.com
modernart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