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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재 May 22. 2019

해체주의와 포템킨의 도시

허상의 도시는 대중과 작별한다.

건축적 작가주의의 허상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극단적인 해체주의가 아닌가싶다.
건축의 본질을 종합적 공간예술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많으나, 기본적으로 모든 건축은 합리적인 공간이용을 철저히 염두해둔 '건축적 실용성'을 지녀야한다. 건축물과 캔버스가 명백히 다른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해야한다는 것이다.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건축가는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을까? 사실 이를 명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다. 다만, 본인의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 건축을 한다면 그처럼 의미없는 건축이 또 있을까. 모더니티를 철저히 비판하면서 성장해온 post-modernism 예술가들이 다시 대중과의 작별을 고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이전과 같은 box-shaped의 획일적인 건물 스타일을 옹호하는 것은 결코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범위에서도 충분히 예술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승효상의 건축물들은 그러한 나의 생각들을 잘 대변한다.

해체주의의 결말
해체주의는 기본적으로 건물의 본연과는 괴리가 있다. 버리는 공간도 많고, 에너지 효율성도 극도로 떨어지며, 무엇보다 평당 공사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는다. 물론 건축적으로 혁신적인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는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속에 공간사용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겸비되어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랜드마크성 건물로는 효과적이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는 영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해체주의 건축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다. 공간사용을 외면한 그들의 작가주의적인 영역은 대중들에게 쉽게 잊혀지기 쉽다. 20세기 후반 아방가르드 음악들을 상기시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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