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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Sep 13. 2024

왕따의 친구: 아픔을 지켜본 날들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

나는 왕따를 당해본 적이 없다. 직접적인 경험도 없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친구의 고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나로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중학교는 크게 두 곳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진학했다. A초등학교 출신이 90%, B초등학교 출신이 10%. 나는 B초등학교 출신이었다. 반에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기에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모르는 친구한테 말을 먼저 걸거나 빠르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운이 좋게도 1~2주쯤 지나니 5~6명의 무리가 생겼고,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학교를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친했던 다른 반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랑 같이 노는 애 있잖아. 걔 A초등학교에서 왕따였대."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 반에서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봤고, 통통해서 돼지라고 불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 생각에 그는 왕따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중1의 시점에서 왕따를 당할만한 것들을 얘기해 보자면,


기본적으로 말이 많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이게 왜 싫지?
공부를 잘해서 살짝 유식한 척을 한다.
나랑 비슷한 정도거나 조금 더 잘했다. 그렇기에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난 좋았다.
살이 아주 조금 쪘다.
별명이 돼지였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다. 비만 축에도 끼지 못할 통통한 정도.
선생님도 이 친구를 싫어했다.
이건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그의 누나가 관련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속칭 일진들의 시선에서는 그가 거슬리긴 하겠지만 왕따를 당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가 그와 멀어져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와 친하게 지냈다.


애석하게도, 학년이 바뀌어도 그는 계속 왕따를 당했다. 다른 반이 되었기에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그를 도울 수 없었다. 나는 그걸 바꿀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를 내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는 우리 반 친구들과 어울렸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같이 밥을 먹고, 방과 후에는 함께 피시방에 가고, 소풍 같은 행사 때는 우리 반으로 데려와서 함께 놀았다. 반에서 왕따인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저 친구로서 마음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좋았기에 친하게 지냈다. 그뿐이다.
그가 왕따를 당한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통통해서 돼지라 놀림받았겠지, 공부 잘하니까 잘난체한다고 괴롭혔겠지, 정도의 생각뿐이다. 사실 왕따라는 건 큰 이유를 동반하지는 않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왕따를 만들 수 있는 게 그 나이의 애들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다. 작년에 한 번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학창 시절이 너무 지옥 같았다고 했다.
"노래가 좋아서 이어폰을 끼고 다닌 게 아니야. 항상 누가 나를 욕하는 것 같아서 이어폰을 끼고 다녔고, 언제 어떻게 누가 나를 괴롭힐지 몰라 불안했어."


다행히도 중학교 졸업 후에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서 크게 힘들지 않게 생활했다고 한다.
"괴롭히던 애들이 없어서 정말 행복했고, 착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 이겨낼 수 있었어."

왕따를 당한 힘든 기억은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 하나로 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본인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인지 재수를 하기로 한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기숙 학원이라는 곳을 다녔다더라. 밖에도 못 나오고 갇혀서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운명의 장난인가, 그곳에서 중학교 때 그를 괴롭히던 애를 다시 만났다. 다행히 성인이 되어서 나쁜 기억들을 묻어둘 수 있었지만...
어느 날 싸움이 났다. "중학교 때 내 꼬봉이었던 새끼가 깝치네?" 그를 괴롭혔던 애가 말한다.
그 말을 듣은 내 친구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시 옛날의 힘없고 나약했던 그때로 돌아갔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그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고, 긴 시간을 버텨내고서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공부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는지, 3수를 하고 나서야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3년전 합격한 곳보다 안좋은 대학교로.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
그는 지금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도 어라? 했을 법한 것인데, 왕따를 챙겨준 나는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는가.

나라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누군가를 괴롭혀본 적이 없고 당해본 적도 없는, 아주 평범하게 평화로운 학창 시절을 보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 운이 좋다라는 말을 항상 한다. 키가 작았고, 조용하고, 모범생 이미지였다. 나도 충분히 그들의 타깃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인데 왜 그들의 타깃이 안되었나 생각을 좀 해봤는데...


공부는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잘했고,
운동도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잘했고,
게임도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잘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곁에 많았고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애들과도 별문제 없이 잘 지냈다. 그들과 같이 등하교를 같이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학교생활하면서 그들과도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에 대한 터치가 아예 없었고 정말로 평화로운 상태에서 학교를 다녔다. 말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재밌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이 내 자리로 와서 놀고, 등하교같이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운이 좋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을 것 같다.

딱히 모난 구석이 없었기에, 그를 챙겼음에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많이 힘들어질 것 같기에, 정확히 그가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는 글에 담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로 한순간부터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당연히 좋은 기억이 아니니까 그렇겠지.

얼마 전 예비군에서 그를 가장 악랄하게 괴롭히던 애를 봤다. 걔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으나 양아치스러운 모습을 보니 그가 맞았다.

간호학과..? 그런쪽으로 간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가해자는 별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더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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