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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Sep 20. 2024

꿈이 없는 아이

엄마가 말하길
나는 어릴 적에 조용하고 의젓해서 힘들지 않게 키웠다고 한다.

과연 조용하고 의젓한 게 내 의지였을까?
언제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던 게 아닐까.

하고 싶다고 말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거 하고 싶어요."
"안돼."
"이거 갖고 싶어요."
"안돼."
"필요한 거예요."
"안돼."

정말 어릴 때부터 이게 반복되니
중학교 때부터는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안되니까.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가질 수 없었다.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말로 꺼내는 순간 실망으로 이어질게 뻔하니까.

'가능하다'라는 말을 못 들은 채로 살면
꿈이 없어지고 목표가 없어진다.
바꿔 말하자면
꿈을 꿀 수 없고, 목표를 세울 수 없다.

언제나 꿈이 없는 채로 살아왔다.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하면 참 막막했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될 수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 봐."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면 일단 가능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건넨 선생님의 한마디.
"선생님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잘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에 어릴 때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성적이 어느 정도 돼야 하는지, 뭘 해야 선생님이 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울린다고 하니까.
그게 전부였다.

고등학교 때는 나의 꿈이 아닌 누군가의 바램으로 목표를 잡긴 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에 포기했고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었는가?
전혀.
심하면 더 심했지 꿈이 생기진 않았다.
학창 시절에 공부도 잘했고 완만한 교우관계를 지냈지만 꿈과는 상관이 없더라.
아무런 소속이 없는 사회로 내던져지자,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건 더욱 없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택한 건 '돈'
군대 가기 전까지 알 바만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군대를 가면 뭔가 생각이 바뀌고 어른스러워진다고 하더라.
하고 싶은 게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2년 허송세월 보내고 끝이 났다.

전역하자마자 회사에 들어갔다.
게임을 계속 해왔기에 나름의 배경지식들로 게임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평생을 즐겨 했던 분야이기에 3년을 열심히 다녔고 만족하며 다녔다.

하지만 꿈과는 멀어졌다.
회사는 내가 꿈꿔왔던 이상과 많이 달랐고,
유저를 돈으로 보고 있는 그들에게 환멸이 났으니.
게임 쪽으로 계속 가야겠다는 꿈은 3년 만에 끝이 나고 만다.

그리고 현재.
여전히 꿈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자 나름 무언가 많은 경험을 하며 돌아다니고는 있다.
퇴사한지 얼마 후면 1년이 다 돼가는데,
1년간 정말 많은 것을 했다고 자부한다.
회사에 있었더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참 많이 경험했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거야,
네가 부족해서 꿈이 없는 거야,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꿈이 없는 것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기 위함도 아니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누군가는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고,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꿈을 꿀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그저 내가 경험한
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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