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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Oct 04. 2024

마음에 없던 소리를 했던 나

친구와 멀어지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잘못으로 인해 멀어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왜 없겠는가.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합리화하려 한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너 때문에 우리 사이가 틀어진 거야."
"그때의 상황을 넌 모르잖아."

나를 유독 아껴주던 친구가 있었다.
꽤 긴 시간을 함께하며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아갔던 사람이다.

어느 날, 작은 오해 하나로 다툼이 일어났다.
우리의 관계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고, 변명의 여지도 없는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싸운 것도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상처를 줬을 뿐.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어렸던 나의 이야기다.


함께했던 나날들

그는 여성스러운 사람이다.
굉장히 잘생겼는데 예쁘게 잘생겼달까...
또래 남자아이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거친 면모는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춤에 관심이 많은 친구로, 특히 여자 아이돌의 춤을 능숙하게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이성친구와의 교제도 곧잘 했으니까.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에서 여성스러움을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항상 나를 찾아서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여러 명이 같이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항상 나와 함께했다. 나의 생일을 크게 챙겨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생일파티를 같이 준비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친해진 친구이다.
그냥 친하다 정도가 아니라 꽤나 특별한 느낌이랄까...
언제나 그와 함께했고 많은 것을 공유했다.
초3에서 중2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가장 크게 기억이 남는 건 장기자랑이 아닐까 싶다.

성당을 다니면 방학 때 캠프를 간다.
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스키장.
수련회 느낌으로 2박 3일 정도 간다고 보면 된다.

중학교 1학년의 나는 누구 앞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발표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리는 사람이라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다 같이 장기 자랑에 나가자고 그가 제안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혼자 무대에서 춤을 추곤 했다.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재밌어 보였던 걸까?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수락을 한다.
춤에 재능이 있던 건지 곧잘 그를 따라 했고, 은근히 어렵지 않게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캠프 때마다 같이 춤을 추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나의 숨겨져있던 모습을 끄집어 내주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와 연이 끊긴 이후로는 다시는 춤을 출 일이 없었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은 분명히 행복했다.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


어느 날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슬픈 소식이라는 한마디로 퉁치기엔 너무나도 화가 나는 일, 억울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던 일.
성당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성당을 새로 하나 짓는다고 한다.

성당은 기본적으로 아무 곳에 나 갈 수 없다.
집 근처에 있는 곳을 가는 게 무조건적인 원칙.
물론 단순히 한두 번 방문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지만, 어떠한 활동을 하려면 집 근처의 성당에 가야 한다. (10년도 더 된 일이라 요즘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근처에 지어지는 새로운 성당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를 제외한 친구 4명과 많이 친했던 후배들까지... 모두 나 빼고 그대로 그 성당에 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중2였던 나는 이 사실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왜 가야 하지?
왜 나만?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애초에 성당을 신앙심으로 다닌 게 아니었으니까.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아서 다닌 거였으니까.
앞으로 친구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어했다.
같은 학교도 아니었고 따로 밖에서 많이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럴 나이도 아니었고.

그렇게 평생 마음속에 담아놓고 있는 그 사건이 시작이 된다.
이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참 착잡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성당에 있다가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하더라.
"우리 오늘이 마지막인데 우리끼리 더 놀다 가자."

그는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이제 볼 수 없어 아쉽고 화가 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 빼고도 잘 지낼 그들이 미웠던 걸까.
이런 상황을 만든 성당 자체가 싫었던 걸까.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이제 못 보는데 뭐 하러 만나. 꺼져."

나는 그에게 모진 말을 하고 말았다.
그가 남들보다 여성스럽고 여린 마음을 가진 걸 알면서도 심한 말을 하고 말았다.
물론 그땐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다.
내가 더 억울했고 내가 더 화가 났기에 그의 마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내가 앞으로 볼 수 없다는 걸 나는 진심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은 그는,
나와 더 이상 마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그는 나를 보러 우리 성당에 몇 번 찾아오곤 했다.
내가 그를 볼 용기가 없어서 그를 피했을 뿐.
그는 관계 개선을 위해 용기를 냈고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잃어버린 기회


그를 잊고 살던 어느 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4~5년 전이었던 것 같다.
같이 친했던 누나를 통해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한번 만나보자고.

너무 반가웠다.
드디어 그날의 미안함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만남을 수락하고 들뜬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있기 며칠 전,
나는 도저히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볼 면목이 없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건 너무 고마운 일이고 나도 보고 싶은 건 맞지만... 미안함이 너무 커서인지 도저히 그를 만나러 갈 수 없었다.
결국 약속을 취소하고 만다.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내 발로 차버렸다.

그 후로는 뭐... 당연히 그와 만난 적은 없다.
연락을 한 적도 없고. 지금이라면 그와 제대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있지만 이제는 그가 나를 만나 주지 않지 않을까.
아니 사실 아직도 그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내가 춤을 췄다는 걸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니까.
가장 친한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까지도 말이다.

그가 이 글을 볼 일은 0% 지만,
보면 자신의 이야기임을 한 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애초에 내 이름이 본명이기도 하고...

그는 아이돌 활동을 하다가 배우 활동도 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려나...
언젠가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먼저 연락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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