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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조우주
Nov 20. 2024
SKY를 나왔지만 백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연기를 하려고 하세요?
학력을 지울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다 보낸 프로필이
겨우 통과되어 가게 된 오디션에서
들은 말이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코로나
시기
,
대학교 졸업을 했다.
남들은 일이 년 한다는 입시를
삼 년간
하여 늦게 들어간 대학이었다.
인기가
많은 전공 중 하나라 더 오래 걸렸고
약간의 운도 따라주었다.
그러나
고생만 하던 딸이 기어코 원하던 곳에 갔다고
자랑스러워
하셨던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하고
언론사, 로스쿨이나
고시,
대학원,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주변
동문
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냥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 번쯤
은 나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무대에 섰을 때의 떨리는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예상대로
입학했을 때의 즐거움은 채 한 달이 가지 않았다.
이제 나의 길을 걸어가자고 생각했다.
학교수업은
제작실습과
영화이론 관련 수업으로 꽉 채웠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모두
연기를 배우는 데 사용하였다.
학비는
다행히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결국 졸업 후
부푼 희망을 안고
예술영화도 같이 제작한다는 극단에 들어갔으나
조연출로 일을 돕다가
매일 연극 연습 외에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계약서는커녕 교통비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나오기도 했고
소속모델로 활동하게 해 줄 테니
돈을 내고 화보를 찍으라는
에이전시
장편영화에 출연시켜 줄 테니
제작비를 내라는 제작자를 만나기도 했다.
뉴스마다 나오는 청년실업자라는 문구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경제활동가능인구의 감소가
학교나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도전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 것은
졸업을 하고도
그렇게 3년째 일이 없을 때였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영화가 좋았다. 어떠한 일보다도.
형제가 없던 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걱정하던 어머니는 음악학원에 데려가셨고
나름대로 성악에 재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동요 같은 노래도 부르고
신문사가 주최하는 콩쿠르에도 나가서 상도 타오고
그랬다.
어른들의 칭찬을 듣고 주목을 받으니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계속하려면 유학을
가는 것이 좋겠
다는
말을 듣고
어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
각종 대여료와 레슨비를 대느라
고생하는 부모님이었다.
두꺼운 분장과 치렁치렁한 드레스,
방송국 무대
의 조명이 점차 따갑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과감히 모든 것을 관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는 방송 쪽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티비는 잘 보지 않았지만 다행히
살던 집 건너편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파란색 간판에 귀여운 부엉이 그림이 있는 곳이었는데
점원분이 매번
친절하게
이주의 인기작이나
신작을 추천해 주셨다.
숙제를 하기 싫어 매번 미루었던 내게
어머니가 던지셨던 미끼는 공부
를
끝낼
시에
그 주에 볼 수 있는 비디오 한 편을 빌려주시는 거였다.
그렇게 몇 년간 매주 한두 편씩 영화를 챙겨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다채로운 인물들의 인생이
내게로
다가왔다.
현재
겪고 있는 불안이나 고민이
그 인물들이 겪은 고난과 시련을 보며
눈 녹듯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작은 소망은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비디오가게 주인이 되어 실컷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책임과 사회에서 부여한 역할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지만
그 소중한 기억만큼은 잊고 싶지 않다.
그렇다,
그저
영화를 만드는 총체적인 과정 안에서
무언가
나의
몫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역할이 작든 크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영화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였으니까.
영화는 공동작업이고
직업인으로서의 이 일은
한 작품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담겨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일이기에
결코 즐길 수만은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매 순간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
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느낌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걸어가는 기분에
영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두려움에
개봉한 작품에서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 편집되었을 때
명절 때
이어지는 친척들의 질문에
한없이
작아지는 부모님의 모습에
어느 날 걸어가며
문득
발견한 아버지의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에
병행할
일자리를 구하면서
면접에서
듣는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바라보
는 사회의 시선에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대로일 때
관두려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들은 생각은
이 일을 포기하고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냐는 내면의
물음이었다.
배우로서 인형 같은 외모를 타고났다거나
넘치는 끼를 타고났다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다.
회사나
믿을만한 구석
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끈기 있게 파고드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
전공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면
어쩌면 이
일이
싫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주름도 연기하는 배우로서
영화 안에서 인물로 살아가겠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감과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다.
앞으로도 조금만 더 잘 버텨보자.
잘 부탁한다,
영화
야
.
그리고 뒤늦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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