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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또다시 도전

나만의 길을 걷는다는 것

by 조우주


멈추지 않는 이유


넌 왜 그렇게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니?
그리고 어떻게 매번 해내는 거야?


얼마 전 지인이 던진 질문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멈추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늘 새로운 무대로 걸어 들어갔을 뿐이다.
3년간 탈락했던 대학교 입시도, 첫 단편 영화의 오디션도, 새벽까지 이어진 촬영 현장도 그랬다.

넘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그게 아마도 내가 끝내

멈추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막판 뒤집기


고등학교 때 전 과목 중 유일하게 수학을 잘하지 못했다.

언어, 수리, 외국어, 사탐 2과목 중

수리만 브이라인 성적표가 뚜렷했다.

나는 괜찮았는데, 선생님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이 참 안타까워했다.

그걸 빌미로 한 친구가 다소 무례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수학을 못하니 명문대는 어렵겠어.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가서 방송국 PD가 될 거야. 너는 절대 못 가겠지.


지나가면서 툭 던진 그 아이의 말은 뇌리에 남았다.

설마 정확히 그곳에 내가 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여러 해가 지나고

정말로 우연찮게도

그 아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학교의

해당 전공에 들어갔다.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던 그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불가능처럼 말했던 것을 이루었다는 사실,

그 한 번의 성취의 경험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산이 되었다.


안정적인 , 그러나

나만의 길


뒤늦게 들어간 학교에서 언론학을 공부했지만,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진로 ― 로스쿨이나 대기업, 공무원의 길을 택하지는 않았다.


졸업 후 처음 들어간 곳은 대학로의 한 작은 극단이었다.
조연출 겸 음향 오퍼레이터로 무대 뒤에서 배우들의 호흡을 맞추며, 관객의 숨결을 이어주는

장치 하나에도 마음을 쏟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은 없었지만, 그 대신 내 앞에는 살아 있는 호흡과 무대가 있었다.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서야 할 무대는 여기일까?


독립 영화의 치열한 현장


독립영화 〈웰다잉, 마지막 수업〉에서 주연을 맡았다.
마지막 수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다루는 영화였다.

경험 있는 스탭이 부족한 현장은 혼란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여러 변수들로 인하여

촬영해야 하는 씬이 계속 뒤로 밀리는 바람에 새벽 5시가 넘어가면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인원이 부족해 스태프 일을 함께 도와야 했다.
그래도 장면을 반드시 오늘 안에 완성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힘을 모았다.

몸은 이미 한계였지만, 카메라 불이 켜지는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힘이 났다.


인물이 겪고 있는 어두운 시간과

성찰을 통해, 나는 오히려 더 강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견딤의 시간


올해 개봉한 장편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 촬영 당시에는 운이 좋았다.

촬영 직전 오른쪽 어깨가 파열되어, 겨우 회복을 시작한 상태였다.
오른팔을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대부분의 현장은 기다려주지 않기에

작품에 출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촬영날짜가 뒤로 밀리면서 어깨가 회복이 되었다.

약간의 통증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나는 알았다.


연기는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고와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가진 것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그 견딤의 시간이

한 편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글로 이어가는 또 다른 무대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글을 써왔다.
브런치에 쓴 글이 전시에 선정되었을 때,

무대 밖에서도 내 이야기가 관객에게 닿음으로써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았다.

연기가 내 몸을 단련한다면,

글쓰기는 매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둘은 서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작은 배우로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은 호흡, 더 치열한 수련을 위해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본질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나만의 걸음걸이와 속도가 있다.

이 선택은 불안이 아니라 확장이다.

더 큰 무대, 더 깊은 연기로서 성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한다.


당신에게 드리는 질문


그래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굳이 또?”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선택한 무대가

결국 나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


혹시 당신도,
새로운 무대를 향해 다시 도전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요?


궁금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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