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꿈에 대하여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가 저작권 협회에 등록되었다. 한 장의 등록증이지만, 오래전 꿈의 문 앞에 첫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믿고 글을 쓴다.
얼마 전, 내게 작은 사건하나가 일어났다.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가 시나리오 마켓(스토리움)과 저작권 협회에 정식 등록된 것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한 장의 등록증일 뿐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순간은 오래된 꿈의 문 앞에 첫 발자국을 남긴 일이었다. 청소년기부터 품어온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라는 꿈. 배우로 살아가는 지금도 글은 늘 내 안에서 나를 다시 불러내곤 했으니까.
요즘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이런 과제가 주어졌다. "살아오면서 마음 깊이 품었던 소망 세 가지를 적어보라."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곰곰이 떠올려 보니, 어린 시절 가장 강렬했던 소망은 '환상의 세계'에 가는 것이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가 루돌프 썰매를 타고 와 선물을 두고 간다고 믿었던 것처럼, 나는 책 속의 세계가 우주 속의 은하계 어디에라도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였다. 《오즈의 마법사》, 《끝없는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그 속에서 나는 때론 용감한 전사가 되고, 때론 신비로운 공주가 되었다. 현실이 아무리 버거워도 책장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마음껏 상상하며 그곳을 살아냈다.
영화도 좋아했지만, 영화는 감독의 선택이 이미 정답처럼 제시된 세계였다. 반면 소설은 독자에게 훨씬 넓은 자유를 허락했다. 등장인물의 눈빛과 목소리, 정글과 바닷속에서의 모험과 전투 장면의 긴장감은 모두 나의 상상력에 달려 있었다. 그 무한한 자유 속에서 나는 행복했고, 동시에 상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배웠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배우로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내 직업적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카메라 앞에서 중요한 것은 몰입과 집중인데, 나는 비교적 쉽게 캐릭터의 감정 속으로 스며든다. 어린 시절 책 속에서 수없이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본 덕분이다. 그때 키운 문해력과 상상력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이후 그때의 소중한 기억을 가끔은 잊곤 한다. 현실의 무게가 커질수록 상상력은 때로는 쓸모없는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치열한 사회적 경쟁과 압박 속에서 상상은 자꾸만 뒷자리로 밀려나고 환상의 세계는 잊혀 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또 다른 소망이 생겼다. 어린 시절의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 순수했던 상상력,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던 눈, 무모할 만큼 창조적이었던 힘을 끝까지 잃지 않는 것.
시나리오 등록증을 받아 든 오늘, 나는 잠시 그 시절의 나와 눈을 마주쳤다. 책장 앞에서 반짝이던 눈빛, 언젠가 나도 이런 세계를 쓰고 싶다 다짐하던 소녀. 그 아이가 내게 속삭였다.
늦지 않았어. 계속해.
네가 만든 세계는 이미 시작되었어.
어쩌면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그리고 그 빚을, 이제 아주 조금씩이나마 갚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장 앞의 그 소녀에게
너를 결코 잊지 않겠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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