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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렁울렁 울렁증 극복기

내성적인 배우의 카메라와 오디션 이야기

by 조우주
다음 순서 앞에서 대기해 주세요.


평소엔 가만히 있던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칩니다.

적막한 오디션장의 공기가 나를 휘감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마릅니다.

전날 밤, 아니 방금 전까지 되뇌었던 대사들은

머릿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만 같아요. 이런 바보 같으니!!



자, ooo 씨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아침부터 계속된 오디션으로 인해 심사하는 분들이 모두 지치고 피곤해 보입니다.

자기소개에 이어 지정대사에 들어갑니다. 저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려옵니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몸이 굳어져 있습니다.

이윽고, 카메라엔 빨간 불이 켜집니다.

첫 대사를 내뱉는 순간, 숨이 차오릅니다.


다음 대사가 뭐였지?

아뿔싸,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다시 집중해보려고 해도

이미 흐트러진 집중력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든다.

대사들이 여기저기 떠다닌다.

악몽으로 꿨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말하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눈과 마음이다.


이 말을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타인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는 일,
배우를 하게 되었지만

드높은 장벽을 마주하였다.

바로 '카메라 울렁증'과
'오디션 공포증'.


평소 대화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데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 가서

카메라 앞에 설 때

유독 목소리부터 해서 손발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나 자신이 낯설고 너무도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중요하게 느껴지는 오디션에서

이러한 증상은 더 심해졌다.


배역에 욕심이 나면 날수록,

울렁울렁 심장이 요동쳐서

가까스로 잡은 오디션 기회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망쳤던 오디션은

3년 만에 보게 된 드라마 오디션이었다.


서평을 쓸 정도로

좋아하던 작가님의 소설 원작이라

꼭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었고

코로나 이후에 너무 오래간만의 대면 오디션이었다.


그러나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가득한 상태로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연기를 선보이자니

몸에는 힘이 들어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외운 대사가 허공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보시는 연출부 분들이 너무 안타까웠는지 여러 번 기회를 주셔서 재촬영을 했지만

이미 극도의 긴장 상태로 떨고 있던 몸과 목소리는 도무지 마음대로 통제가 되질 않았다.


속상하여 정신이 없는 나머지

집에 오는 길에 오디션장에서 신었던

구두를 두고 오기도 하였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배우만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면접을 많이 봐야 하는 취업준비생들

다수를 대면하여 영업을 해야 하거나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모두 '심리적 긴장'과 같은

작은 어려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하나는 연습량을 압도적으로 늘리는 것

두 번째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우는 것



첫 번째 방법의 경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거나

절대적인 시간이 짧게 주어진 경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인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과

다수의 면접, 오디션 경험에

스스로를 일부러 몰아넣는 방법이 있다.


그 사고방식이란
텍스트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과 상황에 집중하는 것

대사는 말 그대로 텍스트일 뿐, 인물로서 느껴지는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백 마디의 대사보다도
배우의 살아있는 눈빛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처음부터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오디션을 최대한 많이 보고 복기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망가지고 깨져보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현재의 나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연습한 대로 나오지가 않을 때가 대부분이라

속상하지만 어쩌겠나?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배우가 고생하고 힘들어 한 만큼

배역,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트라우마, 울렁증을 이겨냈을 때의 희열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중요한 시험, 면접과 오디션을 망쳤다고

혹시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속상해할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파이팅



이제 곧 설날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힘내보자.


모두 행복한 명절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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