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글을 쓰는 시간
오디션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늘 묘하다. 방금 전까지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타인의 삶을 연기했는데,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한 사람의 배우로 돌아온다. 합격과 불합격은 알 수 없고, 대기실에서 보았던 수십 명의 긴장된 얼굴이 머릿속에 겹쳐 떠오른다. 그 사이에 앉아 있던 모습은 어쩐지 흐릿하다.
배우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고, 연락을 기다리고, 대본을 기다린다. 그렇게 언젠가 올 ‘나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끝을 알 수 없다. 시간이 마냥 지나가는 것 같아 초조하고, 과연 맞는 길을 걷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다른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
바로 글쓰기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기록이었다. 일상의 작은 아이디어나 책을 읽다 떠오른 문장을 메모장에 적었다. 오디션에서 느낀 창피함, 촬영장에서 몰래 삼킨 긴장, 연기를 하며 순간적으로 스친 환희와 고통까지. 연기라는 예술이 무대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과 달리, 글은 그 순간을 붙잡아주었다.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깨달은 건, 연기와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연기는 대사를 빌려 타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고,
글쓰기는 내 언어를 빌려 나 자신의 감정을 꺼내는 작업이다.
대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결국 둘 다 ‘진심을 전하는 일’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배우의 하루가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스쳐가도, 글은 그 하루를 충실하게 존재하게 만든다. 주변에서는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택했냐”라고. 비단 연기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고, 막상 시작해도 끝이 없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 답이 조금씩 보인다.
영상 속이든 무대 위에서든 원고지 위에서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라는 단순한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제 기다림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글을 쓴다. 글을 쓰는 동안 배우로서도 성장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줄 날이 오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왜냐하면 기다림 속에서 쓴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했으니까.
연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곧 글을 쓰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기에, 여전히 배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