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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주 May 28. 2023

 A에서 F학점까지

과정과 결과 사이에서

대학시절, 딱 한번 F학점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내가 F를 받다니...!

출석과 과제를 다 해놓고도 받은 성적이었다. 

성적표에 그런 알파벳이 뜨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씁쓸하지만  기억은

내 안에 있던 두려움을 직접 대면하고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작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그 과목명은 이름도 특이한,

'위험사회와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전공선택 과목이었다.


과목에서는 각종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그를 적용할 수 있는 각종 사례들을 배울 수 있었고 수업시간 내에 다른 학생들과 조별 토의의 형태로 의견 교류를 할 수 있어 나름대로 흥미롭게 들었다. 중간고사 성적은 A학점이었고, 기말고사를 대체한다는 보고서만 잘 제출하면 그럭저럭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던 수업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A에서 F학점을 받았을까.
 


기말 보고서를 제출할 당시 나는 기한 엄수를 하지 못했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어떻게든 써서 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이미 써놓은 보고서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절반을 지우고 새로 작성하다 보니 데드라인이 끝난 그다음 날에야 제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데드라인을 넘긴 보고서는 아마 제출 인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출석을 빠지지 않았고, 중간고사도 잘 봤으니 C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여유를 부렸으나 실제로 내가 받은 성적은 웬걸, F였다. 설상가상인 상황인 것은, 내가 성적을 확인한 순간이 정정기간이 지나버린 여름방학이었다는 것이다. 그 과목은 그 뒤로 내가 졸업할 때까지 대체과목이 열리지 않아 나는 재수강을 하지 못한 채 F를 안고 졸업하게 되었다. (참고로 F학점은 A학점을 6번을 받아도 커버가 어렵다.) 그 이후,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 가끔씩 학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하여 변명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그래도 그런 질문이 거의 없어서 참 다행이다.)


만약에 내가 뭘 하든 계속 A학점만 받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F학점을 받는 이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불성실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막상 그러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성적은 A학점이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사람,

대학교 평균학점이 3.0이 미처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팀원들에게 진심이었던 선배분,

전공이 맞지 않아 자퇴를 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을 보니 정말로 정량적인 성적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은
그 사람의 정성적인 부분에 대하여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그 사람의 긍정적인 성격,
폭넓은 경험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대화방식이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내 안에 내재된
각종 성적에 관한
두려움과 상처를 담담히 대면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늘 결과를 확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이 심한 곳에서 자라왔고 학창 시절에도 끊임없는 경쟁이 이어졌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학교와 학원에서는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반을 갈라놨다.

1점 차이로 전 과목 석차와 언수외 등급이 달라

엉엉 우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민이 생겼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지?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해야만 했다.


그래서 성적표가 매겨지는 순간부터 결과를 최대한 늦게 확인하거나, 꼭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으로 되는 경우라면 넘겨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의 뇌는 미세한 스트레스를 감지하고 스트레스 상황을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만든다는데, 어찌 보면 그 일환으로 내게 그러한 경향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노력하는 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를 확인하고 바로 잊어버리는, 그런 능력이 나에게도 언젠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과보다 내가 노력한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하자.
점수가 아닌 그 이면의 것들을 보자.



나와 당신은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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