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힘이 되어주는 나의 열등감
최근 웹상에서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처럼 정말 이불속에만 있고 싶게 만들던 강추위가 몰아치던 어느 날이었다. 패딩에 목도리를 칭칭 감아메고 완전무장한 상태로 서둘러 집에 돌아오던 나는 집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의 가로등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를 멈춰 세운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추운 겨울에도 봉오리가 움트는 나무가 있었고 신기했던 나머지 추위도 잊어버리고 가만히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어르신 한 분이 슬쩍 말을 건네었다. “아... 뭘 보나 했네?.. 이거 동백꽃이라서 겨울에 꽃봉오리가 있는 거예요. 아마도 날이 따뜻해지면 금방 꽃을 피울 거요.”
동백꽃 앞에서 갑작스레 친해진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잔뜩 움츠려있던 몸과 마음에 뭔가 새로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아.. 그랬지 겨울에 움트는 나무도 있었지!’ 뭔가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서 좀 더 가만히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살포시 담아왔다.
겨울은 종종 어려움의 상징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리고 그다음 계절인 봄은 주로 새로움의 상징으로 기억되곤 하는데 ‘추위를 이겨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새싹을 틔우는 계절’ 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봄의 단골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는 것은 마치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강인한 자아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경험과 기질에 중점을 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심리학적 바탕을 두고 있으나 정신분석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은 과거의 경험과 타고난 기질만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에 따라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아들러는 신체 질환으로 인해 장애가 생긴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장애를 극복하며 도리어 자신의 장애를 성취동기로 삼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하였는데 열등감은 그저 삶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시도하고 성취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현장에서 집단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들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미술작업을 통해 그들이 걸어왔던 삶의 무게를 양파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내다 보면 그 속에 단단하게 응어리져 돌같이 굳어버린 열등감들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원래부터 외톨이였어요. 뭘 해도 잘 안되고 그냥 세상이 다 미워서 맨날 술에 찌들어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냥 술을 좀 먹으면 그저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었는데...”
어렸을 적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워 가난함 속에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
부모님을 일찍 떠나보내었거나 부모님께 받고 싶은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셨던 분,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있거나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 등등
그분들의 개인적인 삶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반복되던 삶의 어려움 속에 좌절하며 열등감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갔을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이 집단상담에 참여한 것은 충분히 커다란 변화의 활시위를 당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열등감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멀리하거나 감춰두려고 할 때 그 왜곡된 상처들은 마음에 부담을 주고 갈등을 일으키지만, 열등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역설적으로 그 열등감으로부터 느꼈던 상처와 아픔들을 딛고 창조적인 성취를 맛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려 애쓰기보다 내 안에 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못난 나의 모습도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올지라도 활짝 꽃을 피울 수 있게...
머지않아 곧 피어날 꽃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듯하다.
추운 계절로 시작된 한 해지만 꽃피울 날이 곧 찾아올 예정이니 참으로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