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독재에 맞서 한민족을 지켜준 호랑이

임세택의 <호랑이>(1973)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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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민족의 상징 호랑이

한(韓)민족에게 호랑이는 가장 중요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신화를 시작으로, 각종 설화와 민담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호랑이는 때로 사람들을 해치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악귀를 쫓아내고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복을 가져다주는 신령하고 영험한 동물로 여겼습니다. 한반도는 대륙을 움켜진 호랑이 형상으로 호랑이는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상징입니다.


46400_45515_856.jpg <무용총 백호도>, (고구려 시대)


호랑이는 한국 미술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구려 벽화의 주요 주제인 “사신도”(四神圖)에는 용, 주작, 거북이와 함께 흰색 호랑이(白虎)가 신성시 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민화에서는 “호작도”(蒿雀圖), 즉 “까치호랑이”라는 별도의 주제로 발전하였습니다. 심지어 민화에서 착안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K-Pop Demon Hunters》(2025)의 전 세계적인 인기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호랑이는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였습니다. 임세택(1947-) 작가의 <호랑이>(1973)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2. 임세택의 <호랑이>


스크린샷 2025-10-23 오전 11.37.29.png 임세택, <호랑이> (1973)


<호랑이>는 가로 45.2㎝, 세로 32.8㎝의 중소형 캔버스의 유화 그림으로 크게 좌우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주황색 털 색깔을 지닌 호랑이가, 왼편에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철제 방폐로 몸을 가리고 플라스틱 투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인물들과 그 뒤로 무장을 하지 않은 인물들이 겹쳐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는 호랑이가 무장한 인물들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임세택은 197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일제강점기(1910-1945)에서 광복 이후 195·60년대까지 서양으로 유학을 떠난 미술가들은 거의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임세택은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의 강건한 권유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릅니다. 프랑스 도착 직후 그는 미술의 성지(聖地)인 파리(Paris)에 머물렀지만, 유학 전 혼인한 동갑내기 미술가 강명희(1947-) 역시 프랑스로 건너오자 임세택 부부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인구 3,000명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인 퓌보(Fuveau)로 내려갑니다. 1973년 27살의 임세택은 퓌보에서 <호랑이>를 완성합니다.


3. 예술은 현실의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한다!

부친이 임세택을 프랑스로 유학 보낸 건 사정이 있었습니다. 1965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한 임세택은 1969년 같은 학교 미술대학 내 타과 학생들과 함께 《현실동인》을 조직합니다. 《현실동인》에는 그의 부인이 되는 회화과의 강명희를 비롯해, 조소과 동기이자 이후 한국 민중미술의 아이콘이 되는 오윤(1946-1986), 회화과 후배인 오경환(1949-) 등이 참여합니다. 미래주의(Futurismo), 다다이즘(Dadaism), 절대주의(Супрематизм), 초현실주의(Surréalisme)처럼, 《현실동인》은 문학가들도 참여하는 문예 단체였습니다. 게다가 창립 선언문을 발표한 것도 서구의 문예 운동과 동일합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김지하(1941-2022) 시인이 작성한 「현실동인 제1선언문」에는 진정한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며,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 사회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현실동인》이 지향하는 예술론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0-23 오후 4.00.21.png 임세택, <선거> (1968-1969)


《현실동인》의 창립 멤버인 임세택의 <선거>(1968-1969)는 이러한 가치관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1967년 6월 8일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모티프로 합니다. 총선 결과,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은 전체 175의 의석 수 중 129석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금품 수수, 물품 살포, 심지어 대리 투표 등의 온갖 부정행위가 밝혀지며 제7대 총선은 6·8 부정 선거로 더 잘 알져지게 됩니다. 이에 야당과 대학생을 주축으로 선거무효화 및 재선거를 요구하는 반대 시위가 발생하였습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선거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심각한 안보 위협 상황이 발생하며, 박정희(1917-1979) 정부는 국민 통제를 강화하며 민주화 운동은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이러한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의 부조리를 고발할 목적으로 임세택은 가로 130㎝, 세로 185㎝의 대형 캔버스에 <선거>를 제작합니다. 작품은 《현실동인》의 창립전시회에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사전에 경찰은 이 작품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압수하여 폐기하였습니다. 다행히 <선거>는 파기를 모면하여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0-23 오후 4.31.24.png Fromanger, <Le Rouge> (1968)


《현실동인》 활동으로 박정희 정부를 비판한 임세택의 행보는 1970년대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이러한 행보를 깊이 염려한 임세택의 부친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여자 친구인 강명희와 급하게 혼인시켜 프랑스로 강제 유학을 보낸 겁니다. 하지만 사회 비판적인 그의 예술론은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예술이 사회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현실의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추상보다는 구상 회화로 회귀해야 한다며 신구상주의(Nouvelle Figuration)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이러한 배경에서 임세택이 프랑스 유학 2년 차인 1973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4. 10월 유신과 임세택의 <호랑이>

1972년 10월 17일에 발생한 사건은 임세택이 <호랑이>를 제작하게 된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19시, 국회를 해선하고 정당 및 각종 정치 활동을 일체 금지하는 비상조치를 기습 발표합니다. “10월 유신”으로 불리는 당시 사건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의한 친위 쿠데타로서 국회는 해산되고, 대통령 직선제 폐지와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며 연임 제한을 삭제한 개헌안을 발표합니다. 결국 같은 해 12월 27일 박정희의 제8대 대통령 취임과 「유신헌법」이 정식 시행되며 대한민국은 제4공화국 체제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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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부정 선거, 그 결과 박정희 대통령의 3연임을 가능하게 해준 1969년 제6차 개헌, 부정선거로 얼룩졌던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 등 박정희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때마다 야당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국민들의 격렬한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였습니다. 유신 체제 선언 시에도 대규모 반정부 운동 발생을 예상한 박 대통령은 1971년 10월 15일 <위수령 衛戍令>을 선포하여 주요 대학 캠퍼스에 군대를 동원하여 학생운동을 폭력 진압하고 학생운동의 발생을 원천 차단하였습니다. 그 이전부터 이미 권위주의가 팽배해진 상황에서 10월 유신이 단행된 당시에는 즉각적인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인 1973년 8월 김대중(1924-2009) 신민당 의원 납치·암살 사건을 계기로 그해 10월,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반(反)유신운동을 시작으로 유신 철폐 운동이 발생합니다.


스크린샷 2025-10-23 오전 11.37.29.png 임세택, <호랑이> (1973)


임세택의 <호랑이>가 제작된 배경을 알고 이 작품을 보면, 그림 속 무장한 군인들과 호랑이가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림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무장한 군인들을 올려다보지만 무장한 인물들은 호랑이 뒤에 누워 있는 인물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무장 군인들은 호랑이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서 호랑이는 자신들을 보호해줄 보호 장구도 무기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 호랑이는 몸을 웅크린 채 오른쪽 앞발을 들어 올린 모습입니다. 호랑이의 전반적인 형상은 한반도 지형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림 속 호랑이는 실제 호랑이가 아닌 우리 민족의 상징 혹은 한민족 정기(精氣)를 시각화한 겁니다. 혹은 복과 행운을 가져다주며 역사적 고비 혹은 국난 때마다 한민족을 지켜주었던 우리 민족의 수호신으로서의 호랑이를 소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호랑이가 아닌 호랑이 너머의 누워 있는 인물을 주시하고 있는 것도 호랑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라는 걸 암시합니다.


아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했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임세택은 고국을 떠나 유신 체제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이를 비판하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서 박정희 정부의 권위주의 독재체제에 저항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이 작품에 호랑이를 등장시키고 작품의 제목을 <호랑이>로 정한 건 국난 때마다 우리 민족을 지켜주던 호랑이에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힘없는 국민들을 지켜달라는 기복(祈福)적, 주술적인 의도를 지닌 선택이었습니다.


5. 과욕필망과 안분지족


朴正熙出殡.jpg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 국장


1972년 10월 17일 19시, 10월 유신으로 영구 집권에 성공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19시 41분,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1924-1980)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아 사망합니다. 1972년 10월 17일 19시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7년 9일 41분 후인 1979년 10월 26일 19시 41분 유신 체제뿐만 아니라, 1962년 3월 2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오르며 18년 5개월 동안 지속된 박정희 체제 자체가 붕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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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뜻의 “과유불급”(過猶不及), 욕심이 지나치면 스스로 화를 부른다는 의미의 “과욕필망”(過慾必亡) 등, 동·서양에서는 오랫동안 과한 욕심의 끝은 비극임을 경고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부를 지녀도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듯, 오늘날에도 한국 및 전 세계에서도 막대한 권력과 부를 지닌 인물들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누르기 위해 무리한 욕심을 부려 스스로 몰락의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은 권력자의 무모한 욕심을 생생히 목격했고, 우리 국민들은 그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김없이 2025년도에도 열 번째 달을 맞이하였습니다. 10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 중 하나지만, “가을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일교차를 보이는 환절기, 급격히 줄어든 일조량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시기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10월은 유신 독제체제가 성립된 달이자 그 권위주의 정부가 한순간에 몰락된 달로 과도한 욕심을 부르면 비극적 결말에 이름을 보여주며 잔인한 계절 가을의 명성을 입증해줍니다. 10월에는 우리 모두 과유불급, 과욕필망, “소탐대실”(小貪大失) 등 과도한 욕심이 부르는 화를 주의하며,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의 자세를 되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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