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 아트페어에서 만난 갤러리, 그리고 작품들
+ 현재를 더욱 진하게. play, 절묘한 음악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음악.
지금의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먼 지점까지. 현재를 아주 진하게, 가득 채워주는 마법과도 같다.
멜로디를 감싸는 리듬이 심장을 두근두근 연주하면, 온몸의 엔돌핀이 돌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까 마신 커피 속 카페인은 피날레를 지휘한다며 달리고 또 달려대니, 나의 정신은 번개라도 맞은 듯 번뜩이기 시작했다.
역시, 음악은 마법.
현재를 더 리얼하고 진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머리티얼 아트페어의 입구를 거쳐 들어온 나는 아트 페어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분명 '미음(ㅁ)'자로 설계된 멋진 노출 철골 구조물과 수십 개로 쪼개진 수많은 갤러리 속 작품들이었지만,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패션 위크를 떠올리게 하는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음악, 그리고 그 속을 분주하게 오가며 리듬을 실어 나르고 있는 아트 피플들의 에너지는 아트페어 상황을 보다 음악적으로 만들었다. 눈에 가득 차게 무엇인가 보이고, 동시에 귀가 처음 트이듯 들리는 그런 상황 속에 내가 서 있었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깝구나.
흘러가는 상황을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찍어서 붙잡아보려 애써본다. 혼자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아까워서 SNS으로라도 격하게 공유해 보지만 아쉬움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같이 보면 정말 좋았을 예술가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래- 지금부터 열심히 눈에 담고 심장으로 간직하자.
그래서 이 감동을 생생하게, 그들에게 꼭 전달해야겠다.
벅차오름과 아쉬움이라는 교차하는 감정을 간직한 채 노출 철골 구조물 1층부터 3층까지 천천히 돌아본다.
+뉴욕 갤러리가 없는 곳은 없다
세계 유명 아트페어 어딜 가든 뉴욕 갤러리가 없는 곳은 없다.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는 만큼이나 뉴욕의 갤러리 또한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뉴욕의 갤러리는 언제나 세계 미술과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서서 트렌드와 미술계의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주일을 종일 발에 물집이 잡히게 돌아다녀도 아직도 못 가본 갤러리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갤러리의 스케일면에서도 가고시언 Gagosian이나 데이비드 즈워너 David Zwirner와 같은 딜러들은 제프 쿤스 Jeff Koons와 같이 미술 시장에서 수백억 원 대에 거래되는 대형 아티스트나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 미국의 레코드 회사 경영자, 영화 프로듀서)과 같은 슈퍼리치 컬렉터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굵직 굵직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들과 같이 전 세계 각국에 분점을 가지고 시장을 좌우하는 맨해튼의 갤러리부터,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고자 실험에 실험을 감행하는 젊고 유능한 작가를 발굴, 전시를 기획하는 브루클린의 작지만 힙 hip 한 갤러리까지. 전 세계 현대 미술 갤러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갤러리들로, 뉴욕은 가득 차 있다.
이번 머티리얼 아트페어에 참여한 여러 도시의 갤러리 중에서도 단연 뉴욕에 위치하고 있는 갤러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은 아트페어의 기획자 슐츠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는 내용으로, 미국은 멕시코에서 가장 가까운 거대 미술시장이고 그중 뉴욕은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기 때문에 뉴욕 갤러리들의 활발한 참여는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후에 소개할 비버리스 Beverly's가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 뉴욕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에 위치한 일종의 라운지 바 lounge bar 이자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이다.
머티리얼 아트페어 기획자 슐츠의 학창 시절 절친한 친구가 디렉터를 맡고 있는 비버리스는 아트페어에 참가한 전시자들, 즉 갤러리들을 위한 전용 클럽이자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중요한 호스트 갤러리이다.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기획자 슐츠와 비버리스의 디렉터 댄 수티 Dan Sutti는 일반적으로 아트페어가 컬렉터VIP를 위한 특별 라운지부스를 마련하는데 비해 참가 갤러리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버리스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고안해 낸 특별공간이다.
또한 비버리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잘 살려 연출한 사이트 스페서픽 아트 site-specific art(장소 특정적 미술)를 일종의 쇼룸 show room과 같은 개념으로 보여줌으로써, 머티리얼 아트페어가 지향하는 예술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 세계 각국에서 멕시코 시티로,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참여 갤러리
머티리얼 아트페어에서는 국내에서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북유럽, 라틴 아메리카에 위치한 현대 미술 갤러리들과 그곳의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가 볼만 할 아트페어이다.
비록 규모가 작을지언정 그만의 엄격한 기준과 철학 하에 소속 아티스트들을 영입하고 주목할만한 전시를 기획하는 프런티어 갤러리의 참여를 지향하는 행사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가 이름을 들었을 때 한 번에 '아~거기!'할 수 있는 갤러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갤러리 하나하나가 선보이는 특색 있는 컬렉션들은 나를 비롯한 여기 모인 아트 피플들의 시선과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고 신선했다.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 꼭 한번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했던 인상적인 세계 각국의 갤러리를 추려 소개해 본다.
멀리 북유럽 스웨덴에서 참가한 안드렌-쉽첸코 갤러리 Andrehn-Schiptjenko Gallery는 아트페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갤러리로 들어가 유심히 작품을 보고 있던 내게 웃으면서 자신을 소개하던 여자분은 바로 안드렌-쉽첸코 갤러리의 디렉터 실렌 안드렌 Cilene Andrehn이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급 반색을 한다. 저 멀리 북유럽 스웨덴에 있는 갤러리 디렉터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식에 격한 반가움을 표할 것이란 건 예상치 못한 터라 살짝 놀랐던 게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이번 머티리얼 아트페어에 갤러리 대표로 참가한 아티스트 중에 호세 리온 세릴요 Jose Leon Cerrillo가 2016년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그리고 또 다른 소속 작가인 자비에 베일한 XAVIER VEILHAN의 조각 작품 [The Skater]가 경기도 오산시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하. 그랬구나. 정말 신기한 인연이네요. :D
하며 나도 덩달아 반가운 마음이 생겼다.
사실 아트페어에 들어서기 전, 행사가 열리는 프론톤 멕시코 Fronton Mexico 입구에서 한 아티스트를 만났더랬다. 그는 행사장 근처 갤러리에서 친구들과 그룹 전시를 한다며 내게 보러 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주 반가워하면서 자신이 몇 해 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모 디렉터를 알고 있냐길래 내가 대학원 시절 교수님이셨다고 했더니 세상 참 좁다며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이야기했더랬다.
멕시코시티까지 날아와서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광주 비엔날레와 인연이 있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만나다니. 그들도 나도 참 멀리까지 왔다 갔다 하며 이렇게 또 우연한 기회에 연이 닿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다.
José León Cerrillo (1976~, San Luis Potosí, Mexico) 지난 2016년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한 아티스트 호세 리온 세릴요는 멕시코 출신으로, 프린트된 포스터에서 퍼포먼스와 조각까지 다양한 범위의 매체를 사용하면서 진정한 추상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아티스트이다.
*호세 레온 세릴로 작가의 2016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Jacob Dahlgren’s (b. 1970, Sweden)
Matts Leiderstam (1956, Gothenburg, Sweden), Lost Pendants
도쿄에 위치한 에이토 에이코 갤러리가 선 보인 오카모토 미츠히로 Okamoto Mitsuhiro의 작품 One Piece One Piece (2016)는 유명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온갖 캐릭터 인형으로 만든 드레스 형태의 조각 작품이다. 이 캐릭터 인형 장식의 드레스 작품을 직접 입고 갤러리 부스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여성 모델. 내가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어보니 저렇게 환하게 예쁜 미소를 보여주며 포즈를 취해준다.
머티리얼 아트페어만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친근하면서도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갤러리스트들의 에티튜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들어가는 갤러리 부스마다 거의 모든 갤러리스트들은 작지만 알차게 전시해 놓은 그들의 전시 부스 안에서 적극적으로 관람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를 소개하고자 하고 있었다.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온 갤러리스트들의 열의가 담긴 아티스트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벨기에 부뤼셀에서 참가한 데미안 앤 더 러브 그루 Damien & The Love Guru에서 보게 된 크리스티안 블랫만 Christiane Blattmann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중 갤러리스트가 설명해준 크리스티안 블랫만과 그의 작품 제작 방식, 사용하는 매체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해외에서 여러 전시를 보면서 점차 텍스타일 textile 작품에 큰 관심이 생겼던 터라
크리스티안 블랫만 Christiane Blattmann의 작품은 내게 유독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넨다.
작품이 마음에 드시나 봐요-
갤러리스트이다.
네. 정말 인상적이에요. 황색 마 바탕에 붉은색 컬러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저는 최근 들어 텍스타일 작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매체인 것 같아요. 사실 한국에서는 텍스타일 작품을 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렇죠, 텍스타일 작품이 흔하진 않죠.
하지만 이렇게 해외에 나오면 흥미로운 텍스타일 작품을 종종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나저나, 이 작품에 사용된 붉은색 매체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은 작가가 실리콘을 녹여서 빨강 염료를 섞어서 황색 마 위에 채색한 작품이에요.
실리콘이요?
네, 저도 블랫만이 작업실에서 작품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적 있는데,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실리콘이라니, 상상도 못했네요. 저는 처음에 보고 "밀랍인가?" 했어요. 하하.
갤러리스트와 한참 작품에 대한 이야기, 브뤼셀에 위치한 갤러리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아직 벨기에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꼭 한번 벨기에에 직접 와서 갤러리 전시를 보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혼자 간 전시라 심심하지는 않을까 했는데, 참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는 보람찬 시간들이 흘러갔다.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퍼포먼스 프로그램은 디렉터 미켈란젤로 미촐리스 Michelangelo Miccolis가 기획한 것으로, 지난해 2017년부터 머티리얼 Material(물질, 정형)의 반대 개념인 Immaterial(무형)이라는 주제 하에 일련의 시리즈로 진행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이다.
올해 퍼포먼스 작품에 참가한 아티스트는 마르텐 스판베르크 Mårten Spångberg와 마리아 하사비 Maria Hassabi로, 마르텐 스판베르크의 작품은 철골 구조물 3층 한켠에 마련된 공간에서 댄서들이 모여 팝, R&B 음악에 맞춰 지속적으로 춤을 추는 퍼포먼스였다.
마리아 하사비 Maria Hassabi는 아트페어 부스 곳곳을 급습하며 특정 몸짓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내용 참조: Beyond the Zone: the 5th Material Art Fair , Robert Ayers Mexico City 15 February 2018, OCULA
아트 씬에서 퍼포먼스 작품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 N.
N은 학부시절 연기과 수업에서 만나 알고 지낸 친구이다.
어디선가 멋진 퍼포먼스 혹은 영상을 보게 되면 나는 그 친구에게 공유하곤 한다.
"보자마자 니 생각이 났어-"
하면서 말이다.
N은 지난 2016년 여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현대무용단의 합작 프로젝트 [예기치 않은 Unforeseen] 전시 출품작 <풍경 없는 지역(2016), 김정선 & 마티아스 에리안 Matthias Erian>에 퍼포머로 참여했었던 적이 있다. 직접 가서 본 그의 공연의 감동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작품의 아이디어도, 퍼포먼스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댄스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니, N도 이런 멋진 아트 씬에서 퍼포머로 참여하면 정말 잘 어울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만 있어도 영감과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드는 (매우 흔치 않은) 전시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둘 더 늘어만 간다.
건축물 위에서 아래의 아트페어 풍경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으로 문득
언젠가 나도 이런 멋진 아트씬을 기획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혼자는 힘들겠지만. 규모는 작을지언정, 내가 그간 한국 주류 아트페어에서 느꼈던 아쉬움, 아티스트들이 이끌어가는 아트 페어에서 느꼈던 아쉬운 마음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고 새로운 디렉션을 줄 수 있는 아트페어를 기획하는 나의 미래를 슬며시 그려보며..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보러, 삐걱 거리는 철골 구조물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