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시티, 멕시코 시티로 떠나라! ep. 04

비상계단에 숨어 있던 [비버리스 Beverly's]의 판타지!

by ARTSYKOO




+ 쭈뼛쭈뼛. 왜, 난, 늘,



그 순간의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

"쭈뼛쭈뼛".



사실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궁금했다.

저건 무슨 싸인일까? 칵테일 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갈 때도,

저 싸인은 설치 작품인 건가? 뭐지?



출구라는 표지판 위로 빛나는 분홍빛 싸인을 따라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분명 전시 홀 입구도, 출구도, 아닌데..

무슨 싸인인 걸 까?



매의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지금, 머릿 속은 오만가지 추측으로 가득하다.




아니,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되지 않는가?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라는 사람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까지, 주저의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그 [쭈뼛쭈뼛 병]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나만 아는 내 모습. 뭐라고 할까. 미지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낯가림 ?





#쭈뼛쭈뼛

몹시 궁금하면서도 겁이 나서,

그리고 바보같이 보이고 싶지 않아-하고 있는

가장 바보다운 모습.




사실 적정량의 쭈뼛쭈뼛의 시간이 흐르면 결국에는 냅다 질러버릴 거면서 꼭 망설인다.



싸인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막상 직접 가서 알아볼 시동은 잘 안 걸리고.. 애써 침착하게 1층부터 3층까지 찬찬히 전시를 관람해 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층계인 3층. 퍼포먼스까지 모두 구경했건만..


전시장 3층에는 주류회사 헤네시의 아티스틱한 홍보 부스가 전시되어 있다. 그 옆으로 간단한 칵테일과 음료를 판매하는 바를 운영하며 관람객들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칵테일을 홀짝이는 사람들 사이로,

난간 아래 펼쳐진 전시장 모습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시선은 다시

의문의 분홍빛에 머무른다.




사진 속에서 그 의문의 분홍빛을 찾아보시길.. 전시장 가장 구석, 비상구 입구에 아주 작게 보이는, 그러나 분명히 밝게 빛나는 분홍빛. 그곳에 비버리스가 있다.






더는 안 되겠다-



무엇인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늘 가지고 있는 내게, 임시 철골 구조의 삐걱거림은 진땀이 날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그래서 층계를 오르는 내내 거의 기어가듯 올라가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피하고자 했건만..


다다다- 내려가고 있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불안 공포.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의문의 분홍빛을 향해 층계를 내려간다.









+ 전시장 밖 비상계단으로 확장되는 아트 씬



분홍빛 싸인이 걸려있는 비상구 Salida 입구로 쭈뼛거리면서 들어간다. 비상구 근처에 서있는 스텝에게 세상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저... 이 싸인은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요....? "





"전시 싸인이에요. 복도 끝까지 들어가시면 비상계단이 나오는데 그 계단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돼요."



전시 공간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 평행이론


전시장 밖으로 나가서 비상계단 위로 또 다른 전시가 이어 진다...?

흡사 몇 년 전에 봤던 한 연극과 닮은 설정이다.


몇 해 전 나는 아티스트 S와 실험 연극을 보러 갔다. S와 나는 전시기획 수업 과제로 파티 형태의 퍼포먼스 전시를 기획했는데 행사를 무사히 마친 뒤, S가 깜짝 선물로 해외 극단의 실험 연극 티켓을 준비해 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공연장 내 관객의 시야는 객석 앉아 정면으로 보이는 무대가 전부이다.



하지만 이 실험 연극은 달랐다.


일부 관객 혹은 관객으로 설정된 배우들은 스테이지 한쪽에 마련된 무대 위의 객석에 앉아 관람한다. 배우들 또한 그들을 향해 극을 펼치면서 백스테이지 backstage는 물론 비상구까지 극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식의 독특한 구성이었다.


쉽게 말해, 일반 공연장을 우측으로 90도 회전한 뒤 진짜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은 마치 공연장의 단층을 보는 듯한 설정인 것이다. 덕분에 S와 나는 객석에 앉아 무대, 무대 위의 객석과 관객은 물론, 백스테이지와 그 뒤의 비상구까지 연극의 공간이 확장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공간에서 극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뜻 밖의 볼거리를 선사함을 의미한다. 또 관객의 입장에서는 미지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극의 상황이 더 생생하게 전달됨을 느낄 수 있다.



오직 실험 정신 하에 설계된 프로젝트가 우연히도 이곳 머티리얼 아트페어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두 장르가 서로 놀라울 만큼 닮아있는, '평행이론'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는 새로울 게 없다던 이 세상, 그 어렵다는 새로움을 구경했으니. 얼마나 환상적인지..







중심부에서 벗어나

그것을 초월하는 주변부의 짜릿한 판타지가

비버리스Beverly's에 있었다.





+출구로 연결되지만, 출구 없는 매력이 있던 비버리스 Beverly's


비상계단을 차곡차곡 오르니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에 설치 된 조각 작품.




Beverly's


비버리스는 갤러리스트와 아티스트들을 위한 클럽이라는 이색적인 컨셉의 공간으로 뉴욕 맨해튼에 로어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에 있다.


비버리스 그들의 운영 철학을 이 곳 머티리얼 아트페어에서 공유하고자, 페어에 참가한 갤러리들을 위한 전용 클럽이라는 독특한 컨셉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비버리스는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호스트인 셈이다.





대형 아트페어는 언제나 VIP 컬렉터를 위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라운지' 마련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들이 아트페어의 흥행과 미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아트 바젤의 주요 VIP는 세계적인 부호, 할리우드 스타 등 세계적 거물급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례로 몇 해 전 국내 아이돌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 G-dragon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에 VVIP로 초청된 바 있다.)


지난 2016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트 바젤의 주요 스폰서인 BMW와 UBS(스위스 연방은행)이 공들여 만든 VIP라운지는 행사장 입구에 마련되어 있었고 이외에도 다양한 VIP 특별 에스코트 서비스(발레파킹, BMW 오너 우선 등)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티리얼 아트페어는 달랐다.


머티리얼 아트페어의 조직위에게 있어 VIP란 '아트페어에 참가한 갤러리'라는 철학이 있는 까닭인지, 특이하게도 그들은 비버리스를 호스트로 지정하여 참가 갤러리, 딜러들를 위한 아트 클럽을 매해 운영해왔다.




비버리스 exhibitor's club 내부 전경. 설치, 조각, 영상 뿐만아니라 타로카드 부스까지 작게 마련되어 있다. 모든 매체,머티리얼이 한 공간에 혼합되어 판타스틱한 경험

비버리스 참가자 클럽 Exhibitor's club 내부 전경. 설치, 조각, 영상, 사운드 등 모든 매체, 머티리얼 material이 비버리스가 창조한 하나의 공간에서 혼합되어 관람객들에게 판타스틱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상으로나마 현장 분위기를 꼭 경험하시길 바란다.





중요한 사실은 비버리스가 그만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잘 살려 기획한 사이트 스페서픽 아트 site-specific art(장소 특정적 미술) 프로젝트를 페어에서 구현함으로써 머티리얼 아트페어가 지향하는 예술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쇼룸 show room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







어쩜 좋아.

너무 좋아.








SNS,

그리고 그것을 타고 매순간 온천수처럼 솟아오르는 각종 시각 이미지들이 거의 모든 곳에 솟아나고 있다. 현란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음악을 내세워 시선을 빼앗는 모션그래픽. 실제 같은 체험까지 가능한 VR, AR..


'새가 날아 올라 본 풍경'이라며, 상상력 하나로 창조한 '부감시', 미술이 만든 그 허구의 시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360 카메라 그리고 드론 기술까지, 이전 인류는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시점까지 나타난 현재.


이 모든 것이 상상 속이 아닌, 심지어 특별한 것도 아닌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살아 있는 자 숨 쉬는 것' 만큼이나 당연해진 현란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과연 미술은 세상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 아티스트의 예술 세계 혹은 철학이자 판타지의 결과물인 미술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소감을 나누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 되어 가는 현실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감상, 시간을 두고 무언가를 이리저리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는 일.



우리는 우리가 '감상'이라 부르던, 작품과 사람 사이의,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쉽지 않은 세상에 살아간다.



비버리스의 프로젝트를 '감상'하는 내내 내 마음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은 흥분감과 쾌감을 느낀 것은 요즘 같은 상황에 처한 나에게 특히나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공간을 물들이는 보라, 초록, 파랑, 빨강 빛. 박력이 넘치는 사운드. 플레이 리스트를 알고 싶을 정도로 감각적인 음악들..


무엇보다도 몽롱한 판타지로 구현된 비버리스의 작품 밑엔 선명한 설계도, 디렉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판타지가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공간을 잘게 씹어 소화시킨 듯한 섬세한 연출. 공간과 그 장소 만의 특징적 이미지에 대한 촘촘한 이해라는 화분에서 발아한 예술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시각과 청각이 혼합되어

구현하는 폭발적인 스펙터클.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 수도, 굳이 알 필요도 없게 만드는

강력한 몰입 구조.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쨍그랑하고 번뜩이는 번개를 떨어뜨리는 비버리스의 상상력. 이를 바탕으로 온갖 머티리얼을 버무려 변주함으로써 또 하나의 판타스틱한 공간을 창조한다. 그리고 몰입하도록, 빨려들어가게 해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시선을 오래오래 붙잡는다.




미지의 공간이었던 비상계단 위로 올라가

환상적 출구로 탈출 대성공.




오늘 이 감동 이 느낌 그대로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하며,

나는 이 멋진 아트페어와 꼭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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