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치 누가 쏜 살과 같아서,
달리고 달려
결국엔
그를 쫒던 나를 두고 저만치 멀리 떠나가버리겠지만,
추억은 어디 가지 않고
추억의 자리를 맴돌며
내가 너를 떠올려 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내가 돌아봐주기만을 기다리던 추억은
기다리다 지칠때면
어느날 갑작스레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반가운 오후의 무지개처럼,
가을 밤의 보름달 처럼,
그렇게 가끔
내 마음의 언덕에 두둥실 떠오른다.
그리고는 추억은
내 마음의 호숫가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고는
내 맘 속 온 물가를 일렁이기를,
그 순간을 기다린다.
불현듯 찾아온 추억은
‘마비 증상’과 닮았다.
우리는 종종 추억의 방문에 마비되어
시간을, 감정을, 그리고 의지를 멈추고
발 아래 추억으로 이어진 맨홀 뚜껑 아래를
멍-하니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추억을 찾아 과감히 멘홀 뚜껑 아래로 풍덩 빠져들어가
느릿느릿 흐르는 유속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나의 어제를 찬찬히 살펴본다.
웃는다. 내가 웃고 있다.
웃는 나의 얼굴, 그 시선은
행복의 주인에게 걸려있는 채
높이 나는 연
그 도르래에 감긴 실을 의심없이 풀어 헤치듯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의 선이 휘리릭 하고 멀게 풀어진다.
우리는 서로의 볼을 쓰다듬으며
초록을 노래한다.
그렇네 어제의 초록을 바라보며
여기에 내가 웃는다.
눈이 펄펄 내리던 2020년 2월의 어느 멋진 오후,
마치 스노우 볼 안에 들어 온 듯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 스노우볼 안에는 '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