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전시 관람을 마치고.
오후 3시, 첫째 날 오프닝 시간에 맞춰 입장해서, 세 잔의 블랙커피로 피로를 씻어보려 발버둥 쳤던 내가 어느덧 전시 관람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 머리가 멍-해진다. 바지 끝자락이 졌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던 나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바닷속으로 들어와 알록달록한 물고기를 좇으며 정신없이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전시장을 한번 스윽- 둘러보니, 흐음.. 확실히 덜 붐빈다.
전시장 전반에 전시된 여러 작품을 하나의 장면으로 담지 못해 아쉬웠던 나는 이때다! 싶어 사람들이 빠져나간 전시공간 이곳저곳을 깡총깡총 거리며 열심히 사진으로 남긴다.
전시 관람 종료 시간이 가까워지자 전시장에는 갤러리 스텝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전시 관람 종료 안내 방송이 나온 8시,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물리며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빠져나가는 출구에는 (그들 또한 이때다!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홍보용으로 비치된 여러 미술잡지가 쌓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나의 아쉬운 발걸음은 급 반색하며 그곳에 멈춰 섰다. 4~5종류의 미술잡지가 놓여있다. 사실 그리 알찬 내용의 잡지는 아닌 듯 보였으나, 그래도 간간히 아트 바젤과 마이애미의 갤러리를 소개하는 잡지도 더러 있어 2권을 골라서 숙소로 돌아갔다.
퇴장의 물결을 따라 마이애미 컨벤션 센터를 나온 나는 또다시 무리의 사람들 속에 몸을 숨겨 숙소로 돌아간다.
마이애미 해변가의 저녁 하늘은 이미 깜깜해졌다. 주황색의 가로등 불빛 사이로 저녁에도 여전히 덥고 습한 그곳의 날씨가 얼른 내 피부에 달라붙는다.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목 넘김을 기대하는 나의 갈증이 숙소 가는 길에 난 건널목에 서서 초조하게 신호를 기다린다. 사실 그 길 건너에는 아까 전시장 가는 길에 봐 두었던 길가의 펍이 있다. 그 앞을 괜히 어슬렁거려본다.
아. 아깝다. 로컬 맥주를 반값 할인하는 해피아워를 눈앞에서 놓쳐버렸구나.
확실히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아까 전시장 안의 푸드코트에서 중식 치킨 덮밥을 두둑이 먹어 둔터였다.)
하지만 기대보다 훨씬 좋은 관람이 되었던 아트바젤에서 갓 빠져나와 여전히 부풀어 있는 내 흥분된 기분을 식혀줄 무언가를 간절히 하게 바라고 있었다.
해변가에 위치한 숙소로 향하는 길 반대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바, 작지만 매력적인 바, 플립플롭과 비키니를 취급하는 숍이 모여 있는 링컨 로드 Lincoln Road에 들어섰다.
링컨 로드Lincoln Road 풍경
하지만 늘어선 여러 숍 중에 내 눈에 가장 들어오는 것은 마이애미 비치에 어울릴법한 스타일링을 자랑하는 편집숍 혹은 디자이너 숍이었다. 의외의, 그리고 이목을 끌게 하는 매장 분위기의 들썩임은 나로 하여금 쇼윈도 너머의 매장 안 사람들을 훔쳐보고 싶게 만들었다.
사실 마이애미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마이애미란 컨츄리 송이 울려 퍼지거나, 죠스가 나오는 바다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왜 인지 "감각", "섬세", "스타일리시"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해변가 특유의 호탕함과 오픈카를 타고 해변가를 달려야만 할 것 같은 마이애미 고유의 자유로운 정서, 그리고 과도한 화려함과 촌스러움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마이애미만의 스웩 Swag은 도시 곳곳에 울려퍼져 있었다. 정말이지 그곳을 떠난 뒤에도 자꾸만 그 풍경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식의 중독성 강한 짜릿한 끌림이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이러한 낌세는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은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전 9:40시 마이애미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에 모여든 사람들은 내가 전에 본 적 없는 클래식 하면서 열정적이고 화사하되 화려하지 않고 우아하되 얽매이지 않는 느낌의 사람들이었다. 그토록 멋진 사람들이 즐겨찾기에 비로소 이 아름다움이 완성되었겠지.
덥고 목마른 스스로를 다독이며 링컨 스트릿의 끝자락에 위치한 스타벅스까지 걸어간다. 초록의 탄산수를 메말라 갈라진 내 영혼에 첨벙첨벙 붓듯 급하게 들이켠다. 탱탱한 탄산 알갱이로 가득 찬 탄산수를 한입 가득 털어 넣고 정신을 차려보려 애써보지만, 지친 내 몸은 아까보다 더 껌딱지처럼 소파에 들러붙어있다.
그때 갑자기 내 주머니 속의 아이폰이 부르르 거리며 나를 찾는다.
위잉 거리며 달리는 버스 소음과 함께 지쳐버린 아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링컨 스트릿. 숙소 근처 번화가가 여기거든. 길 끄트머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널부러져 있어.'
'나 좀 있다 메이시 Mecy 백화점 앞에서 내리는데 니가 있는 걱 뒤편인 것 같아. 근데 나 짐이 좀 많은데.'
'응, 알겠어. 바로 나갈게!'
올란도에서 날아온 아리엘의 빨간 슈트 케이스는 오늘따라 바퀴가 말을 안 듣는다. 우리는 우리만큼이나 지친 슈트케이스를 힘껏 밀었다 끌었다를 반복하면서 링컨 스트릿을 가로질러 해변가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오늘은 늦고 비도 오고 하니, 숙소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기로 하고, 내일 저녁에 근사한 비치 사이드의 레스토랑에도, 바에도 가보기로 기약한다. 맛있는 멕시칸 음식을 먹으러 가자면서 서로를 달래는 내 손엔 바퀴가 시원찮은 슈트케이스가, 아리엘의 작은 어깨 위엔 올란도에서 오는 길이 의심스러운, 마치 이집트에서 벽화라도 몰래 뜯어온 도굴꾼의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노트북 두 개 실린 백팩이 우리와 함께 멕시칸 타코 맛있겠다-하며 함께 걸어간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링컨 스트리트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밤의 분위기에 흠뻑 졌은 이들의 여유로운 풍경을 스쳐 지나갔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다며 컵라면을 먹기로 한 아리엘이 묻는다.
응. 오늘 정말로 기대 이상.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세계 각국에서 온 흥미로운 갤러리들이 많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지. 물론 대부분 뉴욕에서 온 갤러리들이었어.
지난주에 같이 뉴욕에서 갔었던 그 갤러리들도?
쯔워너Zwirner랑 페이스 Pace 갤러리? 응, 그 갤러리들은 당연히 참가했지.
그런데 오늘은 내가 그 갤러리들 있는 쪽 반대편을 구경했어. 가고 시언 Gagosian, 쯔워너 이런 갤러리는 A구역에 전부 모여있더라고. 그래서 내일은 A구역을 좀 집중적으로 보려고 생각 중이야.
오늘은 전체 페어에 1/6정도 봤어.관람은 정말 3시간이 맥시멈인 것 같아.
좀 흥미로웠던 점이, 우리나라 현대 아티스트들 작품을 출품한 갤러리가좀 많이 보여서 놀랐어. 솔직히 요 몇 년 세계 미술계랑 미술 시장에서 한국 단색화를 주목하는 트렌드는어느정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메이져급 갤러리에서 내 예상보다 많이 다루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싶기도 했어. 그래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실제 국제 미술 시장에서도 많이 거래된다는 건 그만큼 국내 미술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