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어느 봄, 내가 살던 숲의 벚꽃이 다 떨어졌다고 서럽게 나는 울었다. 그 화려한 꽃들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양 세상이 노래질 듯 울었더랬다.
그 해 여름엔 큰 태풍이 왔다. 나의 아지트인 뒷산 숲에서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기어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작은 나무 몇 그루도 휩쓸려 넘어졌다. 뿌리가 드러나며 땅이 파헤쳐졌고 잘 살던 땅 속 벌레들도 날벼락이었다. 새둥지들도 다 떨어졌고 그야말로 일대는 초토화되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아침에 일어난 나는 그만 철퍼덕 주저앉아 또 울고 말았다.
붉디 붉은 단풍이 지더니 화려한 가을축제가 끝났다. 이름을 붙여주며 아끼던 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 몇 개가 세찬 바람에 후두둑 꺾였다. 내 팔다리가 부러진양 그게 또 그렇게 아팠다. 바람은 찼고 서리가 내렸고 겨울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지켜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서 있는 게 그토록 외로울 수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었다. 나무들은, 숲은, 숲의 동물들과 벌레들과 풀들은 마치 다 죽은 것만 같았다. 방안에 갇혀 벌벌 떨던 나를 할머니가 꼭 껴안고 말씀해주셨다.
얘야, 실상 그들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기대 그 추운 계절을 그 계절답게 보내고 있는 거야. 어떤 동물들은 동면에 들어 편안히 잠을 자고 있어. 어떤 나무들은 제 안에 또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어내느라 바쁘고 말이지. 새눈을 만들어내느라 초연히 수련을 하는 생명들의 말없는 작업은 숭고한 작업이란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눈에 파묻혀 보이지가 않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이 마침내 가고 있었다. 이른 봄의 야생화들은 나뭇잎들이 돋기 전 땅 속에서 먼저 솟아나 노랗고 하얗고 푸른 꽃들을 재빨리 피어냈다. 꽃샘추위에 눈이 내려 소복히 이 꽃들을 덮었으나 그 눈을 녹여 다음날은 지천에 꽃들을 더 피워냈다. 봄의 전령, 야생화들이 지자 이어달리기를 하듯 나뭇들도 질새라 연두빛 잎들을 뿜어내듯 펼쳐냈다. 개나리나 벚꽃처럼 꽃 먼저 피는 나무들도 한줌 봄햇살에 열일을 해대며 봄축제를 준비했다.
다시, 동백이 폈다. 목련이 폈다. 벚꽃이 폈다. 다시, 개나리가, 진달래가, 철쭉이, 쥐똥나무의 냄새나는 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 떨어졌다고 이제 나는 울지 않았다. 그 꽃 졌다고 세상의 축제가 끝나버린 것이 아님을 불현듯 깨달았다.
좋아하던 나무의 가지들이 볼썽사납게 한쪽으로 휘어져 자랄 때도 눈썹 찌푸리지 않았다. 그 가지들은 햇빛을 좇아 동남쪽으로 더 휘었던 것임을 알았다. 그 나무는 그렇게 휘어자라면서도 기묘하고도 우아한 균형을 유지했다. 세찬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휘어진 나무도 있었지만 햇불을 치켜올린 민중들의 동상처럼 장렬하고도 웅장한 자태임을 알아쳤다.
여름에 큰 나무 쓰러졌던 자리에 가보니 새로운 생명들의 신나는 유원지가 되어있었다. 쓰러진 나무에 초록이끼가 풍성히 덮이고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 온갖 버섯들이 제 자태를 뽐냈다. 이랑을 매듯 땅이 한번 파헤쳐진 자리에 이때다 싶어 온갖 씨들이 날아와 쑥쑥 자라났다. 새로운 나무가 커갈지 못보던 꽃들이 피어날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그루의 키 큰 나무가 쓰러지면서 더 커다란 생명들이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새들은 꺾인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새둥지를 트느라 정신이 없었다. 벌레들도 바빴고 나뭇가지의 연두빛 잎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태풍이 왔고 다시 큰 나무가 쓰러졌다. 단풍이 졌고 폭설에 앙상한 나무들이 가지채 푹푹 꺽여나갔다. 겨울에 다시 나무들은 나이테를 만들고 동물들은 동면에 취하고 가지들은 새눈을 만드는 숭고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른이 된 나도 이제 겨울이 오면 나이테를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 때로는 동면을 취하기도 하고 새눈을 만드는 숭고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 겨울의 나는 마치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들의 걱정이나 비아냥은 가벼이 뒤로 하며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시간은 사계절 중에서 가장 볼품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임도 알아차린다.
봄이 오면 내가 겨우내 피워낸 꽃을 바람에 날려보내면서도 울지 않는다. 태풍이 찾아와 내 안의 가장 큰 나무가 쓰러졌을 때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쓰러진 텅 빈 자리에 채워나갈 새로운 생명들이 어딘가 씨를 뿌릴 장소로 설레기까지 한다. 붉은 단풍이 가을 하늘을 화려하게 채우는 축제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세찬 바람과 폭설에 꺽여나가는 것이 좋고 나쁨의 기준이 아님을 안다.
내게 닥친 상황이 불공평하고 억울하다고 주저앉지 않는다. 그저 빛을 좇아가는 나뭇가지처럼 우아하고 조화롭게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다. 나에게 모진 말을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세찬 바람처럼 나를 덮칠 때 나는 햇불을 들고 일어선 용사같은 자태로 고고하게 일어선다. 설령 비난과 실패가 피해갈 수 없는 큰 태풍이 되어 나를 후려치더라도 내가 쓰러진 그 자리에 새로운 기회가 움터나갈 것임을 경험으로 알아간다.
살면서 나는 그저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님도 알았다. 나는 큰 숲의 아주 일부였다. 때로는 한겨울 움츠린 새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을 피웠다. 때로는 깊은 숲 속에서 이른 봄에 제멋대로 피고 지면서 저 혼자 히죽댔다. 때로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화려하게 피고 지기도 했다. 여름에는 쓰러진 나무도 되었다가 겨울에는 꺾이는 나뭇가지도 되었다. 둥지를 잃은 어미새도 되었다가 날벼락을 맞아 집이 파헤쳐진 땅벌레도 되었다. 누군가의 형상을 햇불을 든 전사로 만들어낸 세찬 바람도 되었다가 한 겨울에 겁에 질린 아이를 보듬아 안고 숲의 비밀을 말해주는 할머니가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되었다가, 내가 아니게 되기도 했다.
나의 숨결이 숲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있었다. 작은 나는 하나의 커다란 숲의 일부이되, 나 또한 커다란 숲 그 자체였으므로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잘한 일들은 나의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임을 알았다.
나는 지금 나이테를 그리는 계절에 들어서있다. 그리고 이 계절이 몹시 마음에 든다. 개화의 설레임에 들떠있지 않으며, 태풍의 호통소리에 찔끔거리지 않으며, 수확의 만족에 배부르지 않은 채로 나는 고요히, 그리고 앙상하게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