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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야니 May 23. 2020

꿈 속의 꿈, 안녕 엄마.

어느날 아침, 건네는 인사. 안녕 엄마.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잠든 코끝을 간지럽힌다.  눈꺼플을 밀어올리니 내려오는 햇빛의 각도마저 더없이 익숙한 내 방임이 분명한 창문과 천장이 비스듬히 보인다.

선영아, 일어났나. 밥 무러 온나 ~

부엌에서 치지직.. 뭔가 굽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이불을 젖히고 맨발로 방문을 열고 나가본다.  작은 부엌에 서서 눈빛 반짝이며 찌개의 간을 보고 있는 엄마가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깃털이 내려앉듯 엄마를 뒤에서 가만히 껴안는다. 뺨에 닿는 엄마의 등이 따스하다. 어제와 똑같은 엄마의 체취다.

아. 꿈이었구나.

여기가 현실이구나...

나는 엿가락처럼 흐물흐물해져서는 엄마 등에 딱 달라붙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엄마. 내 꿈꿨다.

무슨 꿈..?

엄마는 아기원숭이처럼 등 뒤에 매달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꺼내놓은 파를 총총 썰며 묻는다.

... 꿈 속에서.. 내가 서른 다섯살이드라.. 완전 어른이 되가꼬.. 15년 뒤든데...

지금도 다 다 아이가. 스무살이면 어른이지 아~가? 그래 서른 다섯에 결혼은 하고 애도 있드나?

엄마 등에 얼굴을 묻고 흐릿한 꿈을 기억하러 애써본다. 엄마가 움직일때마다 대롱대롱 매달리며 나는 대꾸했다.

엄마. 15년 뒤에는 결혼적령기가 25살이 아니라 35살이라카드라. 사람들이 다 서른 넘어 결혼하대.

아이구야. 엄마는 서른 다섯에 너네 둘 다 국민학교 보냈는데?

말해놓고 엄마는 뭐가 우스운지 까르르 웃고는 또? 하고 호기심있게 묻는다.

..또.. 음.. 내가 비행기 타는 승무원을 4년이나 했드라. 엄마 데꼬 막 세계여행도 다니고.

사실 세계여행까지는 아니고 엄마 모시고 잠깐 유럽에 여행갔다 온 거지만 꿈 속의 일이니까 난 일부러 과장해서 말한다. 엄마는 고갤 돌리고 날 보며 방긋 웃으며 답한다.


거봐라, 엄마는 우리 선영이가 승무원하면 잘 할끼라고 했다아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내가 또래에서 제일 키가 컸다. 그러자 엄마는 우리 딸 키가 크다고 승무원하면 좋겠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홱 고갤 돌리며 나는 그런 거 싫, 남들 시키는 심부름 하는 거.. 라고 대답하곤 했고.

음. 또.. 내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드라.

제주도 좋지~ 엄마도 가서 살고 싶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떠나요~ 제주도~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엄마의 허밍이 등을 통해 내 뺨으로 전달대는게 좋아 나는 등 뒤에서 엄말 더 꽉 껴안는다.


.......근데 거기엔.. 엄마가 없었어..

나는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 흘려버린다.

자. 다 됐다. 밥 먹자. 얼른 아빠랑 오빠 깨워온나.

엄마 등에서 몸을 떼자 불현듯 약 생각이 떠오른다.


참 엄마, 혈압약 먹고 있나?

이구야. 그런 거 안 무도 된다. 그거 먹기 시작하면 평생 무야 된다 카든데. 엄마는 괘안타.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 먹고 나아야제, 약 안 무도 된다.

엄마는 부러 호기있게 말하며 어서 깨워라고 나를 부엌에서 좇아낸다. 아빠와 오빠를 부르며 나는 엄마가 병원에서 타온 약이 어디있더라 두리번거린다.

이제부터 약봉지에 오늘부터 날짜와 아침/점심/저녁을 적어놓매일 삼시세끼 밥을 먹고는 엄마에게 꼬박꼬박 약을 먹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꿈이 정말 리얼했다며.

정말.. 내가 15년을 더 산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며. 아득하지만 20대의 청춘을 재미있고 치열하게 보냈던 기억,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볐던 기억, 내가 살았던 일본, 호주, 두바이, 제주도가 그림처럼 다 그려졌다.

꿈 속에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여행도 다 해보고 해외에서도 실컷 살아보고 열정적인 사랑도 다 해봤다. 그러고 나니까 엄마가 여자는 요리며 청소며 배워놔야한다며 늘어놓던 듣기도 싫었던 잔소리가 갑자기 달콤하게 느껴진다.

​엄마와 요리하고, 엄마와 청소하고, 엄마와 아기자기하게 집안을 꾸미는게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요가선생님인 엄마한테 하루에 한 동작씩 요가를 배우고 오늘은 좀 더 내려갔네.. 하며 매일 매일 칭찬 한마디씩 듣고 엄마가 쓰담쓰담 해주면 좋겠다.

함께 명상을 하고 깊은 호흡을 내쉬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주는 그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나는 문득 깨닫는다 .

그래. 이제 엄마가 그림을 그리면 옆에서 나도 같이 스케치를 해야지. 뒷산에 약수뜨러 가자고 하면 이제부턴 벌떡 일어나 꼭 같이 가야지. 최근에 읽고 있는 걷기예찬이나 월든 같은 책은 엄마도 분명 좋아할테니 같이 읽자고 해야지. 아. 맞다. 엄마랑 제주도 여행가서 엄마 좋아할 것 같은 맛집도 가야지.

엄마와 하고 싶은 일이 계속 계속... 끊임도 없이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할 수록 슬퍼졌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깼다.

베갯머리가 젖어있다. 어둑어둑하고 낯선 천장. 15년 전 고향집을 나오고 나서부터 나는 몇 번이나 천장을 바꿔왔던가.


엄마와 하고 싶은, 꿈 속에서 계속 계속 되뇌었던 그 많은 일들 중 그 무엇도 함께 할 수 없는 곳. 이 곳이 그리고 지금이 내가 있는 현실임을 깨닫는다.  북받쳐오르는 뭔가에 으앙. 아이처럼 소리내어 크게 한번 울음을 터트려 운다. 그리고 으레 하듯이 코를 크게 팽 하고 풀고 일어난다.

닫혀있던 커텐을 연다. 찬란히 쏟아지는 햇살머리맡에 내가 간밤에 다 읽고 둔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라는 책을 비춘다. 그 때 스무살 무렵에 나도 나미야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를 썼더라면... 그 때 미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신랄하게 내가 해야할 일을 말해주었더라면.. 그런 생각으로 책을 다 읽고 간밤에 잠이 들었었나보다.

 

책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은 부스스한 머리를 꽉 묶으면서 함께 꽉 묶어버린다.  찬 물에 얼굴을 때리듯 세찬 세수를 하고 정성스레 화장을 하고 단히 아침 밥을 차려먹고 집 밖을 나선다.


요가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또 천천히 제주를 여행한다.


내 안에 있는 엄마를 만나며

엄마의 딸로 어여쁘게 오늘을 삶.

오늘도 안녕,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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