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확정되고 한동안은 허전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몸의 일부를 떼어낸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마음과 괴로운 심정은 많이 줄어서 수면제의 양도 200g에서 25g까지 줄어서 주치의도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에서 등기가 왔다.
내용은 상간녀 김경아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한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었고 화도 났지만,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최승연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최승연 변호사의 소개로 형사사건을 도와줄 이연우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등기를 들고 가서 상담을 하고 변호사로 선임을 했다.
며칠 후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법과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변호사, 소송, 법원, 이혼에 이어 경찰서와 검사, 판결이라는 단어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담당 경찰은 친절한 듯 했지만, 내용은 잔인했고, 태도는 냉정했다.
양교수가 후배 박동주에 대해 주변에 수소문을 하면서 대학 동창들에게 알렸고 그 사실은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 있는 상간녀에게도 알려진 것이다. 총 6가지로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것인데, 2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다. 내용은 이상훈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모두 허위사실이고 그에 따라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것이었다. 그 허위 사실에는 수많은 선물과 생활비를 지원했으며 불륜관계와 변태적 섹스 파트너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주변에 알려진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를 고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뻔뻔함이 따라올 자가 없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부끄럽지도 않을까?
경찰서를 나오면서 나는 한결 차분해졌다.
‘나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구나. 나는 아직 더 싸워야 하나 보다!’
나보다 먼저 참고인으로 양교수도 조사를 받았고 김경아와 김경아의 절친으로 이상훈과 김경아의 불륜을 미국에 사는 주변에 알린 친구도 김경아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김경아가 미리 알려준 내용으로 김경아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또 기다림이 시작되었고 불안하고 혼돈스러워졌다.
몇 달이 지나고 학교의 이사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내가 이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사장을 만났다. 경찰 담당자가 나에게도 알리지 않고 6개의 고소사실 중 2개의 사실에 대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바꾸어서 검찰에 기소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공문이 나에게 보다 학교로 먼저 공문발송이 된 것이었다.
이영우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변호사는 먼저 당사자에게 알리고 추후에 학교에 알리는 것이 맞다고 했고, 나는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은 잘 못 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민 끝에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청에 민원제기를 했다.
그러나 그 또한 문제없음으로 결론이 났고 나는 초록은 동색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당 경찰관을 조사한 것은 그의 상급자와 또 다른 경찰관이었기 때문이다.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참고인 재조사’로 다시 경찰서로 넘어갔다. 경찰은 양교수를 다시 불러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나도 재조사를 받는가 하고 기다렸는데, 담당 경찰은 참고인인 양교수를 재조사한 후 다시 재기소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경찰은 나를 기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질문이 내가 유포자라고 전제하에 하는 질문들이었다. 내가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김경아의 인권은 소중하고 나는 모든 것을 잃어야 이 싸움이 끝나는가 싶어서 다시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양교수의 말에 따르면 김경아는
‘나는 고소해서 져본 적이 없어. 이번에도 한지수를 학교에서 짤리게 만들 거야!’
라고 했다고 한다.
상간녀가 원하는 대로, 나는 학교징계위원회에 올려져 검찰의 구형결과에 따라 위원회가 열리는 것으로 보류상태이고, 학교 내에서는 나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왜곡되어 퍼졌다. 내가 피해자인데 사람들의 눈빛은 나를 가해자로 보는 것만 같았고, 학생들 앞에 서기가 무서워져서 항불안제의 양을 늘려야만 했다. 이제 검찰의 판결에 따라 또 어떤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든 상황이었는데, 어려운 일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법원으로부터 한 장의 등기가 도착했다는 딱지가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우체국으로 달려가 등기를 받아보니 김경아가 법원에 ‘재판비 반환 청구’를 한 것이다. 즉, 내가 일부 승소하여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전남편이 내준 상황에서 김경아는 자신의 재판비를 반환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을 한 것이다. 내가 승소를 했는데 재판비를 돌려달라니....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는 다시 우울해 지고 무기력해져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최승연 변호사에게 재판비 반환에 대한 청구를 어찌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법인에서 답변서를 대신 작성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답변서를 제출하고 얼마 후 판사의 주문이 도착했다.
“ 상환해야 할 비용 없음 ”이었다.
한숨을 쉬며 한 가지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김경아는 이 건에 대해 다시 항고를 했다.
이 기나긴 싸움은 언제까지 가야 하나?
전남편 이상훈과 김경아가 나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분명하지만, 내가 피해자이고 내가 손해를 보며 점잖게 이혼해 주었더니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흔히 하는 말로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라던가?
내가 싸움이 싫고 아들들이 괴로워하는 게 싫어서 조정에 합의해 줬더니 나를 끝까지 무참히 짓밟기로 했나 보다.
내가 죽어야 할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자신들에게서 사라지는 것인가 보다?
다시 마시기 시작한 술은 독하지 않았다. 한 병, 두 병을 마시고는 바닥에 뻗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유서를 목에 걸고 상간남 집 앞에서 목을 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창피라도 주고 죽자 싶어 병원 앞에 가서 1인 피켓 시위라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너무 피폐해졌고, 무기력하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채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정말 제발 내일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으면 좋겠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의 글은 내일로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