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사 Feb 25. 2024

 닌 나가라!

     

필라테스를 가야 하는 날인데, 전날부터 도무지 의욕이 없었다.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내일 좀 힘들어서 못 갈 것 같아요. 미안해요.’라고 문자를 보내니 장문의 답장이 왔다.


브런치 이야기 읽어보니 할 말이 없네요. 제발 너무 생각 깊게 하지 마시길 바라요. 잠기시더라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감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해서 우선 변호사를 바꿔보기로 했다.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황민석 변호사를 만났다. 만나서 나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건의 앞으로 진행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현재 검사의 약식구형으로 100만 원이 벌금형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판사의 판단을 거쳐서 내게 연락이 오고, 학교에도 연락이 갈 것이다라는 사실과 그러려면 2~3개월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벌금이 줄거나 선고유예가 나오더라도 무혐의를 위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고 하였다.      


변호사는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 벌금형 받으시면 학교에 문제가 있나요?”

“그건 아니에요. 관련 부서의 담당 직원에게 물으니, 뭐 음주 운전으로 벌금형 받으신 분들도 있고, 학교의 직무와 관련하여 비리, 횡령이나 성적인 문제가 아니면 학교 내규에서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왜 재판하시려는 거죠?”

“일단 제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사주를 하거나 소문이 나게 하려는 고의성이 없었는데, 너무 억울하고요. 두 번째는 솔직히 제가 힘들고 어려웠던 만큼 그들에게도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제 사건을 수임해 주시겠어요?”


변호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번 일이 진행되려면 2~3년은 걸리겠죠?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때쯤이면 제가 명예퇴직을 하거나 은퇴까지 재직할 수 있거나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을 좀 벌고 싶기도 하거든요.”


이 말 변호사는 나를 쳐다보면서

“재판을 좀 끌어서 괴롭히고 본인의 상황도 정리하고 싶으시다는 것 같은데, 시간을 질질 끌면 판사한테 욕먹고 저도 힘들어지는데....”


이에 대해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수임해 주시면, 소개로 왔다고 수임료를 깎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더불어서 욕받이 비용도 지불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답변 주시지 않으셔도 좋으니 고려해봐 주세요. 일단 판사의 주문이 오면 그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요.”

변호사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아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했다. 대충의 이야기를 하고 아들이 전남편을 내쫓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 아니면 아들들이 그 집에 계속 살 수 있는 법적인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변호사의 답변은 이랬다.     

“일단 아들들이 성인이기 때문에 집에서 내쫓는다고 해서 아동학대나 방임이 되지 않습니다.

꺼내놓은 짐들은 다시 집어넣고, 또 꺼내놓으면 다시 집어넣으면서 집에서 나갈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고, 그래도 큰아들을 독립이라는 핑계로 집을 나가게 하려 하면 집 안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러면 아들들 몰래 전세를 놓고 이사를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변호사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되물었다. 나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인간이기 때문에 여쭤보는 거라고 했다.     


“변호사는 그럼 집을 내놓은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집을 내놨어도 우리는 집을 나갈 생각이 없다. 이대로 버틸 거니까 그래도 들어올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라. 그러면 전세 들어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명도소송까지 하면서까지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요.”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와서 지영이와 민경이에게 전화를 했다.   희원이 일에 대해 변호사가 한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영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들들이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고 나면 몰래 이사를 하고 아들들의 짐만 밖에 내놓고 전세를 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가능하냐?’

‘아버지로서 어떻게 아들들을 그렇게 까지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거야?’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길바닥에 내버리겠니?’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는 이 세상에는 그런 쓰레기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의 전남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내 주변에 여러 지인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물어봤다. X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아는 이들은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떻겠니?” 라며 이야기하는 지인에게 ‘전남편이 그런 신사적인 대화를 하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 같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전남편은 그렇다. 바람피우고 가정폭력에 도박과 알코올중독이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1학아들에게 3개월 된 딸을 돌보라고 두고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집을 나간 사기꾼 엄마를 둔 아들이라면 보고 배운 아버지상이 이런 억압적이고 야비함과 폭력성뿐일 것이고, 김경아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자기에게 복종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애교를 떨어대는 상간녀가 충분히 자기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나의 의견이 분명할 뿐 아니라, 추진력이 강해서 본인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이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느껴지니 싫었을 것이다. 이혼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내가 일방적으로 소장을 보냈으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내게 오히려 화가 난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밉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들들 마저 자신에게 보고를 하지 않는 게 하극상으로 느껴져서 분노가 끊어 올랐을 것이다.  

   

과연 아들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현실에서 내가 도와줄 일이 없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있는데, 지영에게 연락이 왔다.    

 

“희원이가 일단 먼저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읍소를 해보는 게 어떨까? 아버지가 등록금 대줘서 학교 다닌 건 사실이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한다고 하고, 졸업식 날은 본인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가 양복 사주면서 가자고 하도 졸라서 가게 된 것이다(사실이니까). 의도적으로 속이려던 게 아니니까 한 번만 용서해 달라. 난 아직 독립할 만한 준비를 못했고, 3월에 자격증 시험도 있고 제가 원하는 곳으로 이직도 하고 싶은데, 준비를 못했다. 그러니 아직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니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렇게 했는데도 안된다고 나가라 하면 전세를 얻어달라고 하고, 전세도 안 해 줄 것 같기는 하지만, 노력해 보는 거지! 최소한 나는 아들로서 이런 노력을 했는데, 아버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그렇게 내쫓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X도 그런 점에 대해 일말에 죄책감이라고 갖지 않을까?”     


난 그런 생각을 못했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하고 나쁜 놈이라고 어떻게든 혼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지영의 한마디가 내 머리속 박혔다.     


“너 네 복수를 아들 시켜서 하려는 거 아닌가 생각해 봐”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지영의 말이 맞다. 나는 아들들에게 전남편의 욕을 하고 나쁜 기억들을 심어주고, 대립하고 맞서게 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의 이혼은 전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것이니, 아들들이 상처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나의 문제이고 그런 의도로 아들들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간에 아들들이 많이 힘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맘이 아프고 속상하고 분노에 차서 그걸 아들들이 아버지를 괴롭혀서 복수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미안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생각을 해도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전 01화 끝없는 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