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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Mar 03. 2024

버려지는 독립


희원이가 오기로 한 날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장을 보러 갔다. 퇴근해서 오면 늘 배고파하는 아들을 위해 떡갈비와 밑반찬 몇 가지를 사고 순도가 약한 소주 1병을 샀다.


퇴근하고 온 희원이는 7시쯤 도착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배고프다고 하고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저녁상을 차리고 아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을 지켜봤다.


밥을 잘 먹지 않는 내게 아들은

“아까 내가 달래장 만들어 왔잖아요. 그게 꺼내서 그냥 밥에 비벼서라도 좀 드세요”

“아! 참, 그거 네가 만든 거야?”

“내가 만들었는데 맛이 괜찮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희원이는 내가 집에 있을 때도 가끔 요리를 해주곤 했다.      



희원이는 말이 별로 없는 아들이다. 원하는 것도, 해달라는 것도 학교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말 수가 적은 아들이다. 사춘기에 쳐야 할 사고는 다 쳤지만, 그래도 묵묵히 주변에 순응하면서 자기주장이나 고집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아들과 집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는데, 집을 나오고 나니까 아들과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속마음을 보게 되었다. 삶에 대해서, 장래에 대해, 엄마에 대한 걱정까지....


저녁을 먹으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 요즘 어떠니?”

“ 뭐 그렇죠. 그냥 서로 보고 말도 안 하고 그러고 지내요.”

“안 힘들어?”

“괜찮아요. 견딜만해요. 변호사는 뭐래요?”

아들에게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지영이가  말한 읍소와 사과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 그 새끼한테 사과 못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등을 돌리고 손사래까지 치며 소릴 질렀다.


“그게 아니라 엄마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변호사가 이야기해 준 건 아버지와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되는 거라서.., 그래도 조금 노력해 보자는 거지.”


“나 그 인간 없어도 괜찮아요. 유산도 필요 없어요. 기대도 안 하고. 이번에 이러는 것 두 날 내쫓으려고 벼르고 있다가 옳다구나 하고 기회를 잡은 거예요. 내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알고 있었으면 나한테 알고 먼저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고.. 엄마도 그렇고, 수빈이누나(외사촌)도 어떻게 알고 축하한다고 전화 왔는데, 이런 식으로 날 테스트하는 게 화난다는 거죠!”

“알아.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에게도 늘 그랬던 인간이니까. 아마 네가 엄마 편인지, 지 편인지 확인한 걸 거야.”

“아니... 무슨 아버지가 그래요. 적군, 아군 선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나 내쫓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던 놈한테 내가 왜 사과를 해요? 나 죽어도 못해요”


술을 한잔씩 하면서 아들과 2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마음과 아픔도 이해가 가지만, 아버지로부터 내쳐지면  더 깊은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면 집에서 내쫓기면 어쩔 거야?”

“나 주차장에서 노숙할 거예요!”     

술을 한잔 마시면서 우리 둘은 한참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말없고 자기주장도 별로 없던 아들에게 이렇게 완강한 거부 의사를 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내가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방에 내 옷들이 다 꺼내져 있는 거예요. 그 인간이 방에 들어오면서 ‘ 나가라!’라면서 졸업식 이야기해서, 내가 그러면 아버지가 먼저 이야기하면 안 되냐? 엄마는 미리 연락 와서 간 거고 속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물어보지 않으니 이야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내가 녹음을 하려고 하니까 지랄하면서 욕을 하고 난리를 치길래, 나도 욕해줬죠.”

“뭐라고 했는데?”

“방에 있던 책 바닥에 막 던지면서 ‘씨발새끼가 좇나 못돼 쳐 먹었다'고. '지 애비 닮아서 저런다고'.... 뭐 그렇게요.”     


나는 속으로 참 많이 놀랐다. 180이 넘는 키에 110kg이 넘는 희원이는 덩치에 비해 순하고 말이 없고 한 번도 아버지에게 대들어보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가 저렇게 독한 말을 했다는 건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일단 난 사과는 못해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럼 팩트만 이야기하자. 사실 대학까지 교육비 대준 건 고마운 거니까, 감사하다 하고 졸업식에 대해 오해한 부분은 엄마가 이야기하지 말라고 시켜서 그런 거다. 민우랑 너도 힘들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 봐야 하는 게 힘들어서 열받아서 그날 말을 막 했다. 죄송하다 하고 네가 아직 독립할 준비가 안 돼있다. 자격증 시험에 이직을 위한 준비시간도 필요한데, 아빠의 도움이 좀 더 필요하다. 이제부터 큰아들로 잘할 테니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고, 아빠가 원하면 이제부터 엄마 안 만나고 연락도 안 하겠다고 해. 그래서 한고비 넘겨보고 그것도 안되면 전셋집 얻어달라고, 아직 월세까지 내면서 살기는 벅차다 하고 이사 가는 날 너도 독립하겠다고 해.”

“그 새끼가 그걸 믿겠어요?”

“그니까 쇼가 좀 필요한 거지. 다 믿진 않겠지만, 워낙에 사람을 돈으로 휘두르길 좋아하니까 네가 수그리고 들어가면 그래도 다시 생각할 거야. 그래도 안되면 그다음은 다시 생각해 보자.”     



난 사실 더 과격한 방법을 생각했었다. 아들에게 상간녀와 쓰레기 사이에 오고 간 선정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에 대한 이야기와 섹스 동영상을 보여주고, 상간녀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썼는지 그래서 나에게 생활비를 줄이라고 한 이야기까지 하면서 싸우고 인연을 끊자고 하려 했다.


상간남은 내가 나오기 1년 전쯤부터 식비를 줄이라고 했다. 식비는 내 핸드폰에 넣어준 본인의 카드로 결제하고 있었는데, 한 달에 뭘 100만 원씩이나 쓰냐며 80만 원으로 줄이라는 것이었다. 180cm, 190cm의 키에 100kg가 넘는 두 아들이 먹는 양은 어머어마했다. 본인 역시 그런 체격이라 식비는 늘 부족했다. 전남편의 카드로 결제가 안 되는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내가 구입했는데, 그나마 이마트 배달로 오는 100만 원어치의 식비를 80만 원으로 줄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때부터 미국의 상간녀에게 식비와 함께 아줌마를 쓰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에 분노가 쌓인 나는 그걸 이야기하면서 아들의 분노에 불이 지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영의 말처럼 아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거라는 말에 말하지 못했다. 나와 쓰레기 간의 싸움에 아들을 참전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엄마 내가 마포대교로 죽으려고 간 적 있다고 했잖아요? 그때 민우랑 셋이 있는 카톡방에 나 죽으러 마포대교 간다고 올렸더니, 민우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이 새낀 뭐라고 올린 줄 알아요? ‘나 죽는 거 보고 죽어라’ 그랬어요.”

“엄마 그때 너무 힘들었어. 내가 얼마나 너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쏟을 것 같아서 술을 한잔 마시면서 눈을 감았다.       


“근데 이제 그런 생각 없어요. 내 주변에 그 인간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너도 이제 정서적으로 독립해 가는 거야. 이제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되겠네...”     

아마 X는 독립이라는 핑계로 아이들과 분리하고 상간녀와 살림을 차리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부모를 끔찍이 싫어하고 무시하면서 인연을 끊고 싶었던 처럼 이제 자식들을 버리고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방향으로 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희원이는 출근했다. 나는 일어나서 빵과 커피를 챙겨 먹였다. 큰아들의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한동안 못 보게 되면 어쩌나? 버려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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