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결혼

누군가 나의 현재 상황을 보면서

‘왜 그런 남자랑 결혼을 했냐?’

‘그런 사람을 선택한 것부터 잘못한 거야.’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파렴치하고 못되게 굴었다면 당연히 나도 교제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연애를 하면 그렇듯이 X는 자상하고 섬세하고 달콤한 말로 내게 다가왔고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견뎌나가는 모습이 나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줄 만큼 듬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저변에 깔린 잔인하고 몰염치한 본성은 보지 못한채. 그의 부모의 모습과 행동에서 나오는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모습을 미리 봤다면 그 역시도 X의 그걸 내면에 깔고 있다고 생각하고 교제조차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변호사에게 ‘사기결혼으로 소송할 수 있느냐’ 물었으나 변호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석사 3학기에 만난 X는 대학원 친구의 소개로 만났는데, 첫인상에 별로였지만 그는 만난 다음 날부터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사귀어보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원래는 X의 선배가 나오기로 한 소개팅 자리에 선배의 사정에 따라 X가 대신 나온 것이었다. 그때 그는 극진하게 나를 아껴주었고 모든 일에 부드럽고 자상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사귄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의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혹시 혼수를 요구하시는 분이면 난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 X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부모님은 인자하고 자상한 좋은 분들이야. 평범한 분들인데, 너를 보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야. ”라고 나의 염려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X의 대답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미 도망간 첫사랑 상간녀와의 어려움을 경험해보고는 나를 속인 것이다.

시어머니와 만난 엄마는 집에 올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나를 앉혀놓고

“상훈이 엄마가 우리한테 현금과 아파트, 자동차, 병원을 요구하더라. 난 그럴 능력도 없지만, 네가 그런 자리로 시집가는 거 반대다. 네가 뭐가 부족하냐? 내 보기엔 네가 이런 결혼을 한다는 건 석유통을 끌어안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포기해라.”

난 믿을 수 없었다. X가 말한 그의 부모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전화를 해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고 난 그 말을 믿었다. 그런 사이 시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네 상훈이 애비다. 니가 와 우리 상훈이랑 갤혼 할라카노? 니는 조건도 좋으니 이 결혼 포기해라. 상훈이는 이미 선봐서 갤혼할 아가 있다. 만약에 니가 헤어지지 안으멘 내가 니랑 니 가족도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그만 포기해라!. ”    

X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X는 자기가 해결할 테니 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며칠 후 엄마, 아버지가 엄청나게 화가 나서 들어오셨다.

“ 그 애비라는 작자가 전화해서, 너희 둘 헤어지게 하란다. 안 그러면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 가족을 다 죽여버리겠단다. 뭐 아쉬워서 이런 말까지 들으면서 결혼을 하냐? 포기하고 유학 가려던 대로 준비해서 유학 가서 거기 살아. 이런 부모들도 끔찍하지만, 그런 부모에게 배운 게 뭐가 있겠냐?”

“그래도 곧 해결한다고 하니, 기다려줘요. 난 그 사람 사랑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요.”

너무 많이 화가 난 엄마는 나 등짝을 내리치며 때리셨다. 난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매를 맞았고 동생과 아버지가 말렸다. 엄마는

“넌 오늘부터 집 밖에 못 나간다. 전화도 빼 버릴 테니 연락도 하지 마.”

라고 하시며 동생에게 나를 옆에서 지키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제일 친한 친구인 지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당시 유학 중이던 지영과는 전화요금 때문에 오래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저 힘들다고 이야기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지 3장에 가득 써서 국제우편으로 미국으로 보냈다. 지영이가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엄마 말처럼 미국으로 가버릴까? X와의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 둘만의 감정으로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자신이 없었다. 그 사이 X의 부모는 매일 나와 엄마, 아빠에게 지속적인 전화를 하고 욕과 협박을 이어갔다.     

“에이 이 씨발 년놈들아! 니년놈들 따문에 우리 상훈이랑 갤혼하기로 한 **백화점 부사장 딸 현정이와 갤혼을 몬하게 되었데이. 그 집은 우리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준다 켔는데 니가 나타나가 상훈이가 미치서 부모 뜻을 어기는 거 아이가? 이라면 내가 널 가만 둘 줄 아노? 니 애미, 애비도 내가 다 죽여버리고 니도 죽어버릴라니까, 어디 끝까지 해보레이!”

X의 아버지가 전화를 해오고 나서, 1시간쯤 지나서 X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니가 뭔데 내 자슥을 뺏아갈라까노? 나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니가 뭔데 나서냐 말이다. 당장 헤지라...안그라믄 내가 니 가만 안둘라니까”     

너무 무서웠고 X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고 자상한 부모라고 했던 X의 부모는 몰상식하고 잔인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어서 부모님에게도 너무 미안해지고 나도 자신이 없어지고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했다. 단지 2~3주간의 이런 겁나는 말과 고달픈 일은 26살의 나에게는 버티기 힘든 일이었고 살면서 이런 미움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더욱 버티기 힘들었다.

 그럴 즈음 X가 만나자고 집 앞으로 왔다.      

부모님 몰래 집 앞에서 만난 그에게 X의 부모가 나와 부모님에게 까지 쌍욕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하며 힘들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는 이제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로부터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부모들이 몰상식하고 무례한 행동을 해서 미안하지만, 나를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부모에게 나와의 결혼을 방해하면 ‘난 앞으로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날 중에 하루는 아버지가 내게 편지를 한 통 주시면서 상훈이 아버님께 보내라고 하셨다. 알았다 하고 가방에 넣고 나와서 그 편지를 꺼내 읽었다.

“상훈이 아버님, 어머님께

우리 지수가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도 나왔지만, 무엇보다도 성실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두 분께는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너그러이 받아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리고자 편지를 씁니다. 지금 두 아이들이 많이 사랑하고 있는데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 주는 게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저희가 두 분이 원하시는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지수가 지혜롭고 착한 아이니까 상훈이에게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정성껏 한 자 한 자 써 주신 아버지의 그 편지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다시 봉투에 넣고 보내지 도 못했다. 그저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걸까? 나만 힘든가? 아님 다른 사람도 힘든가? 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서, 어느 집에 가도 사랑받는 며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이런 일은 정말 그 어떤 시나리오나 소설에도 본 바 없던 일이다. 그 와중에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논문을 썼다. 나와 그를 소개해준 친구는 우리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고 나만 보면 슬슬 피해버렸다.      

이후에도 X의 부모는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나와 부모님께 협박을 해왔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부모를 이길 수 없는 X의 연락이 뜸해질 때쯤 아버지가 나와 X를 함께 부르셨다. 무릎을 꿇고 앉은 우리는 아버지의 물음을 받았다.

“너희들 정말 결혼하고 싶니?”

X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그러고 싶습니다.”

“지수도?”

“네.. 그러고 싶어요.”

“아버지는 너희가 그렇게 사랑하고 원한다니, 너희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엄마는 내가 설득할 테니, 자네는 부모님을 설득해 보게.”

“감사합니다. 아버님! 믿어주신 만큼 잘하겠습니다.”      

친정아버지의 지원으로 엄마의 승낙은 얻었지만, X의 부모는 더 난리를 쳤다.

심지어는 병원 과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상훈이가 맞도 않는 아를 델꼬와가 갤혼을 할라카는데, 과장님께서 좀 말려주이소.’ 라고 해서 나는 X의 병원 과장님에게 호출되어 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과장님의 조카가 내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이고, 과장님 대학의 총 동문회장님이 내 아버지의 고모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서 과장님은

“어디서 이렇게 좋은 신붓감을 데려왔나?”라며 흡족해하셨다.      

이러저러한 글로 다 쓸 수 없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이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