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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Mar 07. 2024

혼자 준비하는 결혼



결혼 승낙은 하셨지만, 그때부터 엄마는 내게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500만 원을 주시면서 네가 알아서 살림살이를 사라고 하셨다. 언니가 결혼할 때는 금은방이며 가구점, 가전, 한복을 보러 함께 다녀주셨는데, 나는 나 혼자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예단으로 보낼 이불과 은수저를 따로 마련해 주셨고, X의 가족 모두에게 줄 한복감과 금단추를 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의 부모는 현금을 원했다.     

 

나는 유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5000만 원을 내놓았고, X는 1000만 원 밖에 없었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월급통장을 X의 엄마가 돈을 불려주겠다고 가져갔는데, 잔액이 0원 이더란다. 5년간 X가 번 돈으로 이리저리 흥청망청 다 써버린 것이다.  그렇게 둘이 합쳐서 6000만원을 보냈다.

 

함이 들어오는 날 엄마는 집에 안 계셨고, 아버지와 여동생만이 있었다. 언니는 외국에 살고 있어서 올 수 없었으니... 함을 내려놓고 X의 친구들과 뒤풀이를 갔다.


뒤풀이를 갔다가 와보니, 엄마가 함을 열어보고 어이없어하고 계셨다.

사주단자 밑에 한복이 3벌이나 있고 수준에도 맞지도 않는 밍크코트가 들어있었다. X의 엄마 말로는 의사들의 파티나 모임이 많으니 그런 곳에 갈 때 입으라고 여러 벌을 준비했다는데, 마른 체형의 내가 두 사람은 들어갈 만큼 컸다. 그것도 아이 낳으면 살이 많이 찔 테니 일부러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난 그런 모임이 1년에 1~2번 정도 갔지만 그 한복은 단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 외면해 버리셨고, 나도 겉치레 가득한 함을 보면서 기운이 빠졌었다.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그때 멈추었어야 했는데.....   

  


결혼식 준비는 더 고달프고 서러웠다.

X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의 양복은 어떤 브랜드에서 금색 단추를 달고 금색 넥타이를 매게 하라고 했다가 다음날 금색 말고 검정 단추에 은색 넥타이로 하라고 했다가, 이바지 음식을 ‘갱상도는 문어 안먹는데이’ 했다가 도로 넣어라, 무슨 음식을 추가해라 수시로 바뀌는 통에 나는 이바지 주문집에서 잔뜩 불평의 소리를 듣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X를 기다리며 엉엉 울었다.

    

시부모의 변덕과 억지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집에서 쓰러졌다.

집에 있던 여동생이 X에게 연락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더니 빈혈과 영양부족이란다. 그 사이 나는 몸무게가 10 이상 빠져서 정말 내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남들은 일부러 살을 뺀다는데 나는 시부모 덕에 돈도 안 내고 살을 빼서 결혼식 당일에 드레스가 너무 커서 수리를 해야 했다.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는 장롱과 화장대와 냉장고와 남대문에 가서 제일 싼 그릇들을 당장 필요한 몇개만  샀다. TV는 X가 자취하면서 쓰던 중고 TV를 가져왔고 식탁이 없어서 접이용 상을 쓰기로 했다. 결혼 당일을 위한 드레스는 메이컵 아티스트인 친구의 소개로 드레스집에 납품하시는 이모님의 집에 가서 가장 저렴한 위쪽과 아래쪽을 이어 붙여서 만들어 입었다. 당시 사진은 결혼식 당일에 고궁 같은 곳에서 찍었는데 그 또한 우리는 가장 최소한으로 정했다.      


그런데 그런 준비보다 더 힘든 것은 X의 두 부모였다.

결혼식날을 X의 아버지는 자기 누이들이 오기 좋은 3월 해야 한다, X의 어머니는 자기 동생이 올 수 있으려면 2월에 해야 한다. 결혼식 장소도 서울과 **으로 오가며 몇 번을 바꾸었는지 모르고 교회 집사인 시어머니는 교회에서 해야 한다 해서 나는 그날부터 교회를 나가야 했다.      


이런 북새통에 우리 부모님은

“서울에서 하든, **에서 하든, 2월에 하든, 3월에 하든 맘대로 하라고 해라. 어차피 우린 우리가족 셋 만 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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