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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6. 2024

어떤 아내의 가스라이팅 스토리

2021년 8월 5일 그날은 내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과 분노, 두려움이 나를 휩쓸어 생각이 멈추고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8년의 결혼 생활 중 나는 남편의 취향, 요구를 들어주며 남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두 아들들에게도 아빠가 우리 집의 가장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자이기에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남편의 외도 증거를 가지고 변호사를 만나러 간 첫날, 변호사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 가스라이팅 당한 트로피 와이프 셨네요.”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내가? 왜?”

난 그저 남편을 신뢰하고 믿었고,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심지어 그를 존경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주입시켰는데, 그게 잘못이라는 건가?

남편을 믿은 내가 바보였나? 그는 내가 자신을 100% 믿게 만들었고 본인의 외도를 숨기기 위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늘 궁금해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전남편과 하루에도 수 십통의 카톡 하는 모습을 보며 주변 지인들은 “ 두 사람은 아직도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 난 그것이 날 위한 관심이라 생각했다.

변호사는 외도 남편들은 본처의 동선을 알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관심을 많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머리가 하얘지고 수많은 기억들이 필름이 돌 듯이 스쳐 지나갔다.

난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30대에 교수가 되었고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기에 이재에 밝았고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고, 나이보다 10년은 어려 보인다는 평을 들을 만큼 나 자신에 대한 관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에서 나온 것 같았다.

능력 있는 아내와 건강하고 씩씩한 두 아들을 가진 완벽한 가정을 유지하면서 외부에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 전남편의 의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두통이 몰려왔다.

난 트로피 와이프였구나... 날 위한 것보다는 전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결정이 나를 조정하고 있었구나. 몸이 지하로 꺼져 들어가는 듯이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해졌다. 나의 28년간의 결혼생활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른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하는 순간 날 기만한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 영화 트루먼쇼처럼 난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였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으로 다루기 쉬운 아내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를 벗어나기로 결심한 날 나의 28년은 무참히 도륙당했고 부정당하는 고통에 나 자신이 제일 미웠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고통의 5일을 보내고 결심했다.

제대로 된 내 인생을 되찾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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