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5일 그날은 내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과 분노, 두려움이 나를 휩쓸어 생각이 멈추고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8년의 결혼 생활 중 나는 남편의 취향, 요구를 들어주며 남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두 아들들에게도 아빠가 우리 집의 가장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자이기에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남편의 외도 증거를 가지고 변호사를 만나러 간 첫날, 변호사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 가스라이팅 당한 트로피 와이프 셨네요.”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내가? 왜?”
난 그저 남편을 신뢰하고 믿었고,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심지어 그를 존경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주입시켰는데, 그게 잘못이라는 건가?
남편을 믿은 내가 바보였나? 그는 내가 자신을 100% 믿게 만들었고 본인의 외도를 숨기기 위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늘 궁금해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전남편과 하루에도 수 십통의 카톡 하는 모습을 보며 주변 지인들은 “ 두 사람은 아직도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 난 그것이 날 위한 관심이라 생각했다.
변호사는 외도 남편들은 본처의 동선을 알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관심을 많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머리가 하얘지고 수많은 기억들이 필름이 돌 듯이 스쳐 지나갔다.
난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30대에 교수가 되었고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기에 이재에 밝았고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고, 나이보다 10년은 어려 보인다는 평을 들을 만큼 나 자신에 대한 관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에서 나온 것 같았다.
능력 있는 아내와 건강하고 씩씩한 두 아들을 가진 완벽한 가정을 유지하면서 외부에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 전남편의 의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두통이 몰려왔다.
난 트로피 와이프였구나... 날 위한 것보다는 전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결정이 나를 조정하고 있었구나. 몸이 지하로 꺼져 들어가는 듯이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해졌다. 나의 28년간의 결혼생활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른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하는 순간 날 기만한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 영화 트루먼쇼처럼 난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였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으로 다루기 쉬운 아내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를 벗어나기로 결심한 날 나의 28년은 무참히 도륙당했고 부정당하는 고통에 나 자신이 제일 미웠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고통의 5일을 보내고 결심했다.
제대로 된 내 인생을 되찾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