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사 Jan 16. 2024

이대로 괜찮을까?

새벽 2 시가 넘자 불안은 더 심해졌다. 호텔을 나와 24 시간 하는 약국을 찾아서 수면제를 사볼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붐비던 강남대로는 텅 빈 채 그 넓은 거리에 나 혼자 서 있었다. 세상에 이제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남편이 전화 위치 추적을 할 것 같아서 핸드폰을 꺼버렸더니 편의점조차 찾기 힘들었다. 골목을 뒤져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를 한 병과 젤리를 샀다. 술을 못하는 나는 소주를 먹어본 것이 대학 이후 처음이다. 남편은 늘 와인을 먹으며 같이 못 먹는 나를 보며 놀리곤 했었다. 그런데 상간녀와는 와인을 즐기고 와인을 마시며 섹스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와 소주를 병째 들고 마셔버렸다. 그렇게 쓰고 독하던 술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술술 넘어가고 좀 쓰면 리를 한 개 먹고 그렇게 한 병을 먹었다. 술에 취해 1 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알코올 알레르기가 심한 나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고 다시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일주일간 먹은 것이 없어 나오는 것은 아까 먹은 리가 전부였다.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시원한 한기를 느끼며 잠시 잠이 들었다.


새벽 5 시에 겨우 깨서 샤워를 하고 이삿짐 용달에게 11 시까지 와달라고 하고 주소를 보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이 가슴이 너무 뛰어서 가슴을 움켜잡아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플라스틱 박스에 옷들을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있던 큰 아이가 엄마의 행동에 놀라서 깼다.


“엄마 왜 이래?”


“엄마가 짐 싸고 나서 이야기해 줄게... 좀 도와줘”


정신없이 되는대로 일단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옷과 화장품, 신발, 책 등을 상자에 넣고 포장을 했다. 어느 정도 짐을 싸고 이삿짐 용달이 오기 전 큰아이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아빠의 심각한 문제로 더 이상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엄마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이 정리되는 데로 연락한다고 해. 너나 민우이는 너의 일상을 살아.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빠의 일이니까. 엄마 이해해 줄 수 있겠니?”


“잘 모르겠지만, 난 엄마가 쉽게 이러는 거 아닐 꺼라고 믿어요.”


“고마워... 아빠가 물으면 엄마가 이야기한 대로 이야기해. 엄마가 나중에 연락할게. 이거 백만 원인데 비상금이야. 너나 민우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