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주인공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 속 초콜릿 같아요. 그 안에 어떤 걸 먹게 될지 모르니까...”라는 말이 나온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인생은 계획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나만의 싸움이라고, 내가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오만함 때문이다.
그렇게 오만하던 내가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혼을 위한 변호사를 선임했다. 계약서를 쓰면서 손이 떨리고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다. 내가 이런 곳에 앉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유체이탈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변호사의 말을 듣고 있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저 사인하라는 곳에 사인하면서 멍한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변호사가
“오늘 많이 불안해 보이시는데요. 처음 오셨을 때보다 상태가 나빠보이세요”
“네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못 잤어요. 물론 밥도 먹질 못하겠더라고요...”
“버티시려면 좀 주무셔야 할 텐데요..”
“날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들어서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어요.”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끼시면 지금이라도 집에서 나오세요. 재판에 아무 영향 없으니까,,, 안심하고 나오시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아직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나와 살 집도... 짐도 못 싸고”
“우선 집에 들어가서 남편분과 부딪히는 게 가능하신지 생각해 보세요. 견딜 수 있으시겠어요?”
“아니요.. 못하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그럼 먼저 호텔에서 오늘 하루 지내시면서 생각해 보시고, 소송시작하면 짐은 언제든지 가져오실 수 있어요.”
“아이들에겐 뭐라고 하죠? 아빠에게 30년간 내연녀가 있었다. 결혼 생활 내내 성실하고 자상한 아빠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줬지만 그건 다 거짓이었다고 하면 특히 아빠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롤모델이라고 하는 작은 아이가 못 견딜 거예요. 게다가 수능이 이제 100일밖에 안 남았는데.... 흑흑 아이를 위해서는 수능날까지 이 악물고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요. 아이들한텐 너무 미안해서.... 흑흑흑 ”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에요. 판단할 능력이 있어요. 지금은 갑자기 집을 나간 엄마를 이해 못 하겠지만, 소송시작하고 아빠의 위선적인 모습들을 알게 되면 엄마를 이해할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아이들도 겪어야 할 일들입니다. 먼저 본인부터 생각하세요. 지금 너무 불안해 보이셔서 쉬시고 병원을 가셔서 스트레스 관리를 하셔야 재판과정을 견디실 수 있어요.”
“네.. 그럴게요. 근데 병원을 가려해도 남편이 의사니까 남편과 관계없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못갔어요..다들 남편에게 알리고 절 속일 것만 같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의사들이 환자와의 면담결과를 외부 알리는 건 의료법 위반이라서 쉽게 그러지 못할 거예요. 당장 좀 주무실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으니.. 병원부터 가세요.. 꼭”
“네 그럴게요.”
난 도대체 어떤 초콜릿을 고른 걸까? 내가 고른 것이 초콜릿이긴 했던 걸까? 아무리 운명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이 180도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