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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6. 2024

불안함이 나를 조정할 때

오후 6 시에 서초동은 차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저녁이 되어도 습도 높고 무더운 날씨에 마스크까지 써서 땀은 비 오는 듯하고 택시도 잡히질 않는다. 변호사 사무실 앞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오가며 도무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문득 부부상담 전문가인 이 교수가 생각났다.

그녀라면 내가 지금 이 불안한 상태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했다.


“선생님... 나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요.”


낮고 떨리는 내 음성에 단박에 눈치를 챈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지난 일주일간의 일을 간단히 설명하고 지금 내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서 생각이 멈춘 것 같다고 했다.


“일단 집을 가면 안 될 것 같아. 남편이 눈치도 채고 남편과 부딪혀서 선생님이 싸울 힘도 없잖아. 먼저 주변 호텔로 가. 하루 자고 좀 생각을 해. 그러는 게 좋겠어. 지금 어디야?”


이 교수가 알려준 가까운 호텔에 체크인하고 들어갔지만 침대에 누울 수 조차 없었다. 소파 앞 바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이교수의 전화가 왔다.


“체크인했어요? 잠은? 그럼 내가 우선 남편과 관련 없이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는 의사를 알아볼게... 그 사이에 뭘 좀 먹고 쉬고 있어요.”

이 교수가 카톡으로 몇 군데 병원주소를 보내주면서 내일 당장 예약하고 가라고 했다.


‘난 과연 오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을까? 내가 안 들어가면 남편이 날 가만두지 않을 텐데... 어차피 이혼할 건데 어때? 아이들이 불안 해할 텐데.. 혹시 난폭하고 다혈질인 남편이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을까? 본인 부모의 비정상적

인 모습을 보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자기도 그런 모습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면 어쩌지?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보고 배운 게 있으니 본성이 드러나면 아이들을 괴롭힐 텐데... 마음 여린 희원이는 아빠에게 대항하지도 못하고 주눅 들 거고... 다혈질인 민우는 아빠에게 대들다가 뛰쳐나가면 어쩌지? 수능이 코앞인데 내가 좀 더 참고 기다렸어야 했던 건 아닐까?’


온갖 생각에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침대가 바로 옆에 있는데 한 발짝도 옮길 수 없었다. 온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이 교수의 전화가 왔다.


“체크인했어요? 너무 불안하면 지금이라도 집에 들어가면 되는데... 버틸 수 있고,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요. 남편 무서워하잖아.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래요?”

“그다음엔 글쎄... 그냥 여기도 불안하고, 집으로 가기도 불안하고... 내가 내 정신이 아니야. 나 어떻게 해야 해요?”

새벽 1 시가 되자, 둘째 민우에게 카톡이 왔다. “어디세요?”

“둘째가 어디냐고 문자가 왔어.. 어떻게 하지? 걱정할 텐데...”

“엄마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게 문자 해줘요.”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불안한 건, 그 사이 남편에게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런 거야... 왜 당당히 남편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못하겠어?”

“변호사도 그러더라고. 난 가스라이팅 당한 거고.. 그 여자는 섹스파트너, 난 트로피와이프였다고. 근데.... 난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도 않고 내가 피해자인데 내가 더 불안하고 이 새끼는 전화 한 통 없어.”

“그러면 내일은 어쩔 거예요?”

“나 이제 집에서 나와야겠어요.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변호사가 그렇게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집에서 나와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요.. 내일 짐 싸서 나오려면 용달 부르고, 남편 출근하면 짐 싸서 나와요. 남편은 아마 하루 외박하고 오면 혼내줄 생각만 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일단 좀 자요”

“수면제가 없어서 잘 수가 없어... 흑흑흑”

“그래도 좀 누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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