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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21. 2024

1400만 원

화요일부터 줌으로 2학기 수업을 시작했다. 그나마 수업을 시작하니,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자신감이 생기고 어렵고 힘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난 수업을 하고 일을 하는 게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편과 상간녀 간의 카톡과 그들이 나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던 대화들 때문에 감정이 널뛰던 것이 서서히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화, 수에는 오전수업을 하고 주변 산책을 했다. 걸으면서 가족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저들은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서로에게 솔직할까 의문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저들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영원할 줄 알았던 나의 결혼이었는데 그가 내 손을 일방적으로 놓으면서 끝났다. 그런데 나는 그게 끝이라는 걸 10년이 넘도록 몰랐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똑똑한 척 잘 챙기고 야무진 척하면서 나는 내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조정당하고 있음을 몰랐다. 나는 그가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나의 남편이 아니었고, 나는 그의 동거인, 동업자 일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김경아만이 그의 영원한 운명 같은 여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그 손을 나도 놓으려고 하는데, 그는 내 손을 놓는 게 그렇게 쉬웠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수요일에 은행에 가서 부모님의 용돈을 드리는 계좌를 해약했다. 어젯밤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언니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막내가 부모님 용돈 드리는 걸 중지하고 싶다고 해서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고, 본인은 계속 보낼 거지만 너는 네 마음대로 하라는 통고였다.


대답을 하기 싫었다. 지금 내가 누굴 돌볼 처지가 아니었고, 지금 내게는 언니와 동생의 싸움에 참전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항상 돈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 많았다. 동생은 제부에게 모든 생활비를 받아서 쓰기 때문에 부모님 용돈조차 보내기가 힘들고, 제부는 내 계좌로 돈을 넣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직접 보내는 게 맞지 왜 내 계좌로 보내느냐 내가 그 계좌의 돈을 빼서 쓸 수 있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고 제부의 의심에 기분이 너무 많이 상했다. 게다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세무사의 의견이었다. 부모님에게 다른 수입처가 생기면 세금을 더 내야 하니 직업이 있는 내 통장으로 보내서 쓰시게 하는 게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조금 더 세금을 내더라도 그게 나을 것 같아서 한 선택이었는데, 언니는 소송제기 전에 부모님의 용돈 통장을 해지해서 보내드리고 싶었던 나에게


 ‘그 돈을 한 번에 털어먹으려 하는 나쁜 년’


이라고 욕을 하고, 수업을 하는 중간에 계속 문자와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언니의 전화를 차단하고 수업을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연락도 안되고 돈을 빼는 동생이 이상하다고 생각 들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워낙 이기적으로 자신의 상처만 생각하며 늘 우울한 언니였기에 그 사이에는 여유 있는 내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견뎠지만 이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그 계좌를 해지했다는 말에 변호사는 뭐 하러 해지하고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했다. 작은 일들은 물어보고 잘 처리하면서 그런 일은 왜 그렇게 의논 없이 처리했느냐며 화를 했다.

왜냐하면 언니의 히스테리와 모욕적인 말들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내가 지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을 해봤자, 자기 이야기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소송제기를 하고 한 번에 앉혀놓고 설명을 하려고 했던 거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질 않는다.


’ 아버지가 너 때문에 망신당하게 할 수 있느냐? 계좌를 왜 없앴느냐? 네가 그 돈을 다 먹어버리려고 그러냐?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


난 어디까지 내려가야 할까?


분노와 모욕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서 오후 수업을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의존적인 언니는 평소에 술을 먹고는 전화해서 자신만 피해자라며 자기만 힘들고 왜 너는 그렇게 잘 사는지 화가 난다고 했다. 이제 내가 더 심한 피해자가 된 걸 알면 아마 괘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형부가 바람이 났을 때도 언니는 본인이 해결하기보다는 엄마,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야기하고 형부를 만나 말려달라고 했고 아버지는 사위를 만나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나는 그런 해결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50이 넘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게 너무 싫었다. 젊은 시절에도 언니는 늘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대신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형부와 싸운 날은 나에게 전화해서 새벽에도 난 언니를 달래러 가야 했다. 난 그렇게 되기 싫어서 이렇게 혼자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언니는 너무도 가혹한 말들을 날리고 있다. 자신의 히스테리를 나에게 퍼부우면서 삶을 갉아먹고 주변을 병들게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 들었다.


언니의 핸드폰 번호를 차단하고, 동생의 번호도 차단해 버렸다. 소송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샤워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좁은 오피스텔을 다시 정리했다. 그래도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나면 나 자신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막 청소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엄마의 전화였다. 계좌를 해지해서 돈이 떨어지니 전화를 한다. 거의 6개월 만에 온 전화였다. 돈을 아버지 계좌에 넣으라는 언니의 협박을 전달하려는 것일 게 분명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바로 차단을 해버렸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희원이에게 전화할 것 같아서 카톡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큰 이모가 전화하면 엄마가 집을 나갔고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만 하라고 급히 연락을 했다. 몇 분 후 카톡이 왔다. 할머니가 뭘 사다 놨으니 가지러 오라고 했다는 거다. 아마 그건 핑계이고 내가 가져간 돈을 달라고 설득해 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언니가 그 돈을 내가 먹어버렸다고 했을 게 뻔하기 때문에 가장 믿는 큰딸의 말을 고 그 돈을 찾아야겠다고 전화를 그렇게 한 게 분명하다.


 변호사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아버지 계좌로 수표 그대로 보내드리라고 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처리하고 은행을 나왔다.


고작 1400만 원에 난 형제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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