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안정감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업준비를 했다. 흡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큰 무리 없이 수업을 마치고 **은행에 가서 언니가 원하는 돈을 찾아서 보내주려고 번호표를 뽑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둘째 민우가 태어나자마자부터 민우를 키워주시고 집안을 도와주시는 아줌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방금 법원에서 서류가 왔는데, 내가 가족이 아니라고 해서 못 받았어요. 내일 다시 온다는데,,, 내가 가슴이 떨려서...”
“무슨 서류래요?”
“몰라요.. 보여주진 않더라고요. 한지수 씨 있냐? 없다니까 가족 없냐? 가족은 없고 난 일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앞으로 3번 더 온다. 내일 12시에서 1시 사이에 올 테니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 뭘까? 전남편이 먼저 이혼 소장을 보냈나? 나보다 먼저 서둘렀다는 건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데... 아니면 내 인감을 가져간 적 있는데 뭘 나한테 사기 친 건 아닐까?'
온갖 잡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은행을 나와 버렸다.
집에 앉아서 물을 한잔 마시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줌마의 전화였다.
“아빠가 지금 전화 와서 택배 온 거 없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야기했더니, 어머 그래요?”라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던데요...”
“아닐 거예요. 낮에 택배 때문에 전화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
핸드폰을 끄는 손이 덜덜 떨렸다. 전남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세상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인간이라는 걸 알고 어떻게 대응할지 마음에 준비도 했는데 온몸이 떨렸다.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배신감에 떠는 걸까?
한번 속은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도 있지만 이게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28년간 내 몸처럼 믿었던 전남편이었는데, 내 모든 것을 바쳐서 돌보고 아끼고 그가 아프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슬퍼했던 나의 시간과 눈물과 사랑이 너무 불쌍하다. 그는 어떻게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자신의 위선으로 남에게 보여주는 세상과 자신의 본능에 따른 세상을 나눠서 이중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상간녀는 내가 보지 못한 그의 그런 기질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 그걸 최대한 조정해서 이용하고 있는 거다.
28년을 함께 살면서 난 왜 그런 그의 모습을 보질 못했을까? 내가 너무 고지식해서 그의 그런 변태적 성행위에 모멸감이 들게 한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있었다. 그는 부부관계를 하면서 여러 번 나에게 항문삽*을 하자고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결혼 전에 성적 경험이 없었고 전남편이 첫 남자였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아서 거절했었다. 그리고 가끔 쓰*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곤 했고, 자기 주변 친구 중에 다른 환자들이 있는 입원실의 빈침대에서 섹스를 했는데 너무 짜릿했다고 하더라. 만약에 첫사랑이 찾아와서 호텔에 가자고 하면 나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등 이상한 질문들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상간녀와 했던 경험들이었던 거다.
상간녀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자신의 벗은 가슴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회의 중에 자기 팬티를 몰래 벗어서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면서 그를 흥분시켰고 그러면 그는 바로 200불을 보내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전남편도 자신의 벗은 몸의 일부를 찍어 보내고, 상간녀에게 영상통화로 그곳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이외에도 한마디 한마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로 전남편은 그녀와의 카톡만으로도 흥분했고 진료를 보면서도 오로지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해서 하루에도 2~300통 이상의 문자를 했다. 이런 변태적인 모습은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진료실에서 티팬티를 입고 엉덩이를 까고 달려드는 여자에게 무장해제 되는 것은 당연한 거였고, 상간녀와의 선정적인 대화를 보면서 그런 변태적인 행위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병원 계단에서, 공중화장실에서, 광주역 광장 구석에서 섹스를 하며 그는 그녀의 노예가 되어 지금 상간녀가 해달라는 모든 것을 해주고 아내를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에게 죄책감은 없다. 조강지처는 그저 자신의 신변처리를 해주는 집사이고 재산을 키우는 동업자일 뿐,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조차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집을 나갔으니 화가 난 것이다.
집 지키는 개가 목줄을 풀고 도망을 갔으니 개 주인은 화가 났고 잡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움직여서 자기가 상간녀와 스릴 있고 짜릿하게 변태적 불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년이 사라진 것이다.
주변에는 자기는 개룡남, ' 나 이런 여자랑 살아' 하면서 성공한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데, 누구에게나 입지전적의 인물로 남기 위해 그렇게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그걸 내가 깨버리려 하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계획대로 라면 몇 년 안에 정리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나의 행동에 당황스럽고 화가 났을 것이다. 미국 영주권을 취득해서 사랑하는 경아 옆으로 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화난 마음에 와이프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넘도록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난 술을 못 마실 뿐 아니라 전남편은 자신의 母가 집안 살림은 뒤로 한 채 밖으로 돌아다니며 술을 많이 마셨기에, 흐트러진 모습을 질색했었다. 그래서 늘 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모습이 싫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전남편은 상간녀와 비싼 와인을 마시고, 술에 취한 상간녀와 관계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난 전남편이 조신하고 우아한 모습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욱 그러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을 빼앗은 건 내가 보지 못한 그의 또 다른 본능을 휘어잡은 상간녀였다. 내 옆에 있었던 것은 껍데기뿐 인 가면을 쓴 위선자였다.
나의 친한 베프들은 이 글들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선정적인 날 것의 자료들을 함께 보면서 나의 소송준비를 도와줬기 때문에 내가 쓴 글들이 너무도 점잖게 순화되었다는 거다. 그런 나에게 기존 그대로 날 것을 써야 구독자도 늘고 이슈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솔직히 고민해 봤지만, 그들이 쓰레기라고 해서 내가 함께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난 나의 기준을 가지고 내가 경험한 나의 시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