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누만아사나로 향하는 바른 정렬

요가 지도자과정(TTC) 수련일지

by 아루나 Aruna

2025.10.13.


오늘은 '하누만아사나'로 향했다. 일명 원숭이 자세라 불리는 이 자세는 두 다리를 앞뒤로 길게 뻗어 골반을 바닥으로 완전히 내려놓는 동작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이 자세는 우리의 삶처럼 성실함과 겸손을 요구한다.


매트 위에서 로우 런지와 하프 하누만아사나를 오갔다. 골반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려 애썼다. 그 순간 오른쪽 무릎에 딱딱한 돌이 박힌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 다리를 위로 꼬아 앉는 내 나쁜 습관 때문인지, 오른쪽 무릎은 유독 아팠다. 늘 그렇듯, 나는 이 통증을 '내 몸의 한계' 혹은 '근육 부족'이란 익숙한 틀 안에 가두려 했다. 더 힘을 주어 억지로 버티려 했다.


그때 J 선생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정체를 깨뜨렸다.

"발을 안쪽으로 세워요. 다리를 안쪽으로 힘을 돌려 배꼽으로 힘이 향하게 해 주세요."

그저 발의 각도를 아주 미묘하게 틀었을 뿐인데 몸 안의 지도가 완전히 다시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무지외반이 심한 나의 엄지발가락이 내 시야에서 살짝 보이도록 정렬하니 귀신 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내 몸은 늘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내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힘을 주면 줄수록 통증은 더 깊어졌고, 내려가려 애쓸수록 하누만아사나에서 더 멀어졌다. 그런데 앞발로 바닥을 밀어내고 허벅지 근육을 안쪽으로 끌어올리는 순간 신기하게도 무릎의 압박감이 사라졌다. 몸은 억누를 때보다 끌어올려 중심을 세울 때 비로소 더 자유로워졌다. 오른 다리의 런지 간격을 왼다리보다 조금 더 짧게 가져가는 게 나에게 맞는 자세였다.


요가를 '내려놓음'이라고 자주 얘기했지만, 오늘 나는 그 내려놓음이 있기 위해 선행돼야 할 '세움의 지혜'를 배웠다. 내려놓는 것과 중심을 버티고 끌어올리는 것 사이, 그 미묘하고 역동적인 균형 속에서 몸은 스스로 가장 편안하고 올바른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수련의 모든 과정, 그 변화의 리듬을 지탱해 준 것은 역시 호흡이었다. 빈야사 수련의 마지막 플로우에서 내 숨은 거짓말처럼 한없이 길어지고 고요해졌다. 그때 나는 계산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무아(無我)'의 순간을 경험했다. 호흡이 곧 나였다. 바깥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내 안의 고요만이 가득했다.


문득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굳은 등, 짧은 햄스트링, 펴지지 않는 골반, 늘 쫓기듯 몰아쉬는 짧은 숨으로 가득했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저항이 나를 단련시킨 가장 정직한 선생님이었음을 안다. 오늘의 무릎 통증 역시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내가 올바른 방향, 즉 내 몸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요가에서는 완벽한 아사나를 이루는 것보다 내 몸과 마음의 현재 상태를 잠잠히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오늘 근육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을 했지만 결국 바뀐 건 통증을 대하는 나의 마음의 방향이었다. 아직 하누만아사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는 멀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조급함 대신 겸손과 기다림을 배우며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시르사아사나가 내게 용기를 가르쳤다면 하누만아사나는 내게 겸손과 기다림, 그리고 바른 정렬의 지혜를 가르친다. 몸의 한계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그 속을 잠잠히 듣는 일. 나만의 고유한 속도와 내가 서야 할 진정한 중심을 아는 일 말이다.


수련을 마치고 매트에서 일어나자 다리 근육이 따뜻하게 깨어나 있었다. 몸이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감각이 아니라 내가 마침내 몸의 언어를 듣기 시작했다는 그 감각만으로 오늘은 충분했다. 요가는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본래부터 있던 질서와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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