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처럼 걸었다, 맨발로

요가 지도자과정(TTC) 수련일지

by 아루나 Aruna

2025.10.12.


브라마차리야(Brahmacharya)는 브라만 신처럼 행동하기, 금욕이란 뜻을 갖고 있다. 고전적으론 성적인 절제를 의미하지만 현대 요가에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신성한 목적을 향해 집중하는 지혜로 확장해 해석한다. 아스테야가 도둑맞지 않는 '내 안의 충만함'을 지키는 것이라면, 브라마차리야는 그 충만함을 목표하는 곳에 흘려보내는 능동적인 수련이다.


브라마차리야를 실천하기 위해 신처럼 걷기 명상을 시도했다. 마침 비가 온 뒤라 축축하게 젖은 흙 위를 난생처음 맨발로 걸었다. 발뒤꿈치에 닿는 흙의 차가운 감촉, 발날에 닿아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움, 발가락 사이에 끼어오는 점성 있는 흙의 질감까지. 같은 흙이었으나 나의 발이 닿는 곳이 달라 흙의 감각은 모두 달랐다.


맨발로 걷자 걸음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늘 신발 안에 감춰져 있던 발이 온전히 드러나니 딛는 순간순간을 의식해야 했고 그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걸음은 어색했다. 그 어색함 속에서 '내가 이렇게 땅을 딛는구나',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구나'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내 발을 이토록 주의 깊게 바라보고 땅과 연결되는 발의 움직임에 감사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걷기 명상 도중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따뜻하고 부서지는 빛, 코모레비를 볼 수 있게 해 준 내 눈에 감사했다. 오늘 이렇게 살아 숨 쉬며 흙을 느끼고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낭비되는 에너지를 멈추고 지금 여기의 생생한 감각을 붙잡아 충만함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오늘 명상에서 '내가 원하는, 바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주제가 주어졌을 때, 나는 브라마차리야가 모아준 에너지로 그 상상에 온전히 몰입했다. 나와 네가 결혼을 하고 너를 닮은 아이를 낳고 내가 바라는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내가 실제로 겪었던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그 순간들이 생생했다.


그 모습 안에서 나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학군 같은 외적인 요소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너와 내가 건강하게 활짝 웃으며 같은 곳을 향해 발맞춰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상상이든, 아니면 잠시 미래를 본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 이미지가 주는 충만한 행복과 흔들리지 않은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 자체가 중요했다. 브라마차리야가 안내한 이 내면의 안정이야말로 내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 수련을 통해 나는 브라마차리야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는 적절한 시야를 갖는 것. 무엇을 원하든 간에 그것을 시작하고 이룰 수 있는 때와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에너지를 성급하게 흩뿌리지 않는 시야를 갖는 것이다. 마치 농부가 씨앗을 뿌릴 계절을 아는 것처럼, 우리의 욕망을 성숙시키고 인내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둘째는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 무엇을 시작하든지 간에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했던 수많은 걱정과 우려들은, 일단 시작한 후에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책임지겠다는 굳건한 마음만 있다면 그 무게가 현저히 줄어든다. 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책임감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


브라마차리야는 단지 에너지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정화'하여 가장 높은 의식과 목적을 향해 흐르게 하는 것이다. 내 발에게 감사하고, 내 눈에게 감사하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충만한 미래를 향해 오늘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매일 실천해야 할 브라마차리야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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