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지도자과정(TTC) 수련일지
2025.11.09.
요가 철학의 여정에서 타파스(열정, 불)를 만났다. 삶의 불순함을 불태워 진정한 고요, 즉 아름다운 마음의 상태로 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진심으로 몰입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배우는 수행이기도 하다.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는 그 시작에서부터 타파스를 강조한다. 1장 1절, '아타 요가 아누싸싸남'. '지금 요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라는 의미다. 몰입의 시작이 요가의 첫 번째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지금'은 here and now가 아니라 비로소 진리가 '아하!' 하고 깨달아지는 각성의 순간을 뜻한다.
요가의 가르침을 내 삶에 적용할 때 비로소 '요가가 내 마음에 와닿았구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곰곰이 되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가장 큰 영역인 노동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명상을 가르치는 T 선생님은 '나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 노동은 나를 소모시키는가, 성장시키는가.'
'내 속에서 나는 존재하는가, 단지 작동하고 있는가.'
'몸의 언어를 듣고 있는가.'
'일과 쉼의 리듬은 조화로운가.'
'그리하여 나의 일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흔히 카르마(Karma)를 '업'이라 한다. '업보'. 지금 내가 처해있는 고통의 원인으로 이해된다.
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이 일의 한계와, 동료들의 심리적 불안, 그로 인한 병가 휴직, 그 병가를 쓴 사람을 향한 손가락질.
'나약하네', '이것도 못 버티면 어쩌자는 거야?'
카르마가 빚어내는 고통의 현장이다.
회사는 그 나약함에 내몰리게 한 구조적 모순에는 관심이 없다.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군데군데 너무 많다. 괜찮아진 줄 알았던 사람들도 작은 트리거 하나에 힘들었던 그때가 불현듯 떠올라 고통에 처해진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언제나 개인의 몫, 각자도생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계속 앞만 보고 굴러간다. 이곳의 카르마는 누가 만들어내고 있는가.
'나의 행위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묶어두는가.'
만약 그 일이, 일에서의 행위가 나의 진정한 자아를 묶어둔다면 그 일이 다른 어떤 보상을 가져다 준다 해도 나는 일상에서 요가를 실천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