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시간을 두 번 살게 한다

요가 지도자과정(TTC) 수련일지

by 아루나 Aruna

2025.11.29.

​"희미한 잉크가 선명한 기억보다 낫다. 기록은 시간을 두 번 사는 것과 같다."


​이동진 평론가의 이 말은 요가 수련 일지를 쓰는 나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일지를 써 내려가는 순간, 나는 방금 끝난 수련을 한 번 더 경험하며 매트 위에 두 번 오르는 것 같다. 방금 느꼈던 감정의 온도, 미세하게 변화한 육체의 감각,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매트 위에 올랐는지 다시금 또렷이 기억하게 된다.
​이 기록은 휘발될 뻔한 소중한 시간을 단단하게 붙들어, 언제든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는 나의 자산이 된다.


비록 조금 더 부지런하게 써내려 갈 걸, 경험을 붙잡을 걸, 후회하고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그때의 에너지는 거기까지였고 그 또한 다 이유가 있었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인다. 요가에서 얻은 모든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고 이미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까.


​섬에서의 휴식과 침묵의 연결
​나는 왜 수련을 하는가.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풀기 위한 일종의 섬에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트 위 1시간만이라도 편안했다면, 여기서 나가 같은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만족했다.


​하지만 T 선생님의 질문은 이 안락한 섬과 현실에 다리를 놓으라고 가르친다. 밖에서의 나와 매트 위에서의 나를 '침묵'으로 연결시켜 보라는 말씀이었다. 밖에서의 나와 요가에서의 내가 너무나도 다른 괴리 속에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요가를 한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침묵'을 세상만사 밀려오는 방대한 인풋(Input)을 자기만의 방 안에서 정성껏 재가공하여, 온마음에 와닿는 아웃풋(Output)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무심히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나의 내면을 거쳐 의미를 부여하는 정화의 시간인 것이다.

​요가가 내 마음에 와닿을 때, 그 깊은 평화와 정렬이 밖에서도 내가 요가를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순간일 것이다. 매트 위에서의 수련이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결정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요가는 삶이 된다.


​이것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꾸준함, 즉 아비야사만이 답이다. 몸을 움직이는 수련이든, 글을 쓰는 기록이든, 일상 속에서 침묵으로 나를 연결하는 노력이든, 이 작은 아비야사를 계속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매트 위에서 발견한 진실이 삶 전체에 다다라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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