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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23. 2021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역지사지의 뜻을 아시나요?

늦은 오후 시간에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줄을 서서 번호표 받아 가며 먹거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피크 타임을 피한다고 미룬 것이 어쩌다 보니 너무 늦어져 하필이면 일하시는 분들 식사시간에 들어간 것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식당은 대부분 오후 3시 전후로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들어서는 아예 브레이크 타임으로 한두 시간 정도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곳도 있는데 자영업자의 입장에선 손뼉을 쳐주고 싶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는 당연히 손님은 하나도 없고 매장 한구석에서 직원들만 식사 중이었다. 순간, 아..... 이거 다시 나가야 하나 망설였지만 사장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식사 중이신데.... 저도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가끔 이런 경우 겪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그래도 손님이 오니깐 좋죠?"


순간 마음속 깊숙이 들어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뭔가 중요한 일을 집중해서 하고 있을 때나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하고 있을 때 손님이 오면 난감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특히 아무런 용건 없이 들어와서 전화통화만 몇십 분을 하고 나가거나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쉼터에서 쉬듯 한참을 앉았다가 그냥 나가는 손님을 보면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쌍욕이 나올 때도 있긴 하다.


우리 점포는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 아르바이트하던 여학생이 빵을 먹다가 손님이 오는 바람에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고객 응대를 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 고객이란 놈이 아주 별난 놈이라서 면전에 대놓고 기본이 안 되어 있네, 카운터에서 뭐 처먹었네 어쩌네 하다가 결국 고객의 소리에 전화를 걸어 아주 진상질을 한 적이 있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그 근무자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면 될 것을 그저 자신이 조금 불쾌하다고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오래전 블로그 활동을 하던 시절 꽤 이름 있는 맛집 블로거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말이 좋아 맛집 블로거지 올라오는 글들만 보면 거의 고발 프로그램 작가 수준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포스팅을 할 때마다 달리는 댓글은 '믿고 보는 OO님 블로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한번 가볼까 했는데 안 가길 잘했네요.' 등등 찬양 일색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점점 더 신이 나서 폭풍 리뷰를 올렸다.


보다 못해 댓글을 하나 달았다.

"OO님, 그렇게 거품 물고 말씀 안 하셔도 망할 집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사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으세요? 그런 포스팅 하나하나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엄청난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다는 거 아셨으면 합니다."

예상대로 그녀는 '솔직한 느낌을 내 공간에 글로 적는데 뭐가 문제냐?' 고 답글을 달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내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아르웬님 지난번에 해주셨던 말씀,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언니가 OO동에 카페를 오픈했는데 몇몇 악플들을 보고 있으니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러네요."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모두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거라 생각하시라고 직접 당해보니 그 기분이 어떠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이제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고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참고 버티시라 언니께 전해 달라는 말만 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그랬었다. 이 집은 뭐가 문제고 기본 서비스가 엉망이고 종업원들이 불친절하고 등등 무용담 털어놓듯이 여기저기 말을 하고 다녔다. 지금은 아예 입을 닫고 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져도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백화점 내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을 때도 그랬었다. 칼국수에 들어 있는 바지락이 하나같이 오래되어 빈 껍질 투성이었다. 몇몇은 썩어서 갯벌의 진흙이 나오기도 했다. 조용히 다 먹은 후 증거품(?) 하나를 들고 카운터에 갔다. 결제가 끝난 후 사장님께 바지락 껍데기를 보여드리며 "오늘 모처럼 바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방에 있는 바지락 전체적으로 체크하시고, 다음에 오면 서비스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했더니 당황하신 사장님은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괜찮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잠깐만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내가 아는 한 망하기 위해 작정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분들 나름의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서툴고 부족할 따름이다. 그 점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너그러운 마음을 기대해 본다.





사족)
어제 어떤 분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편의점 사장이 목사님 같은 글을 쓰시냐고 ㅋㅋ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답을 드립니다.
어떤 업종이든 서비스업에 발을 들이면 두 개의 길이 나타납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든가, 속은 썩어 들어가도 겉은 성인군자가 되는 이중인격자의 길을 걷든가 둘 중 하나죠.
저는 후자 쪽에 속합니다.
지극히 평온한 현재 모습으로 글을 쓰다 보니 목사님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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