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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06. 2022

우리에게 '신혼'은 없었다

처절한 생존의 기억만 있을 뿐

신혼의 단꿈도 없었고 불같은 사랑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우리 부부에겐 최우선 과제였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서 나온다는 호르몬의 유효기간이 900일 정도라는데 싸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낸 연애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우리 부부는 그 뒤 900일이란 시간을 일하는 데 모두 써버렸다. 꿈과 사랑, 그리고 사랑의 호르몬까지 우리 부부에겐 그 모든 단어들이 먼 우주의 얘기처럼 들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카드 대출까지 써가며 마련한 점포는 본사에서 경영을 거의 포기한 곳이었다. 경쟁점을 없애기 위해 무리하게 오픈한 보복성 출점, 이른바 타깃형 점포였다. 입지 조건에서부터 큰 핸디캡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와 맺은 계약기간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운영을 하는 계륵 같은 곳이었다. 이전에 맡아서 운영하던 두 명의 경영주도 계약기간을 마치자마자 두 손 들고 그만둔 그곳이 우리 부부의 일터였다.


내 명의로 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형식적이나마 작은 꿈을 이룬 것처럼 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직원으로 일할 때엔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의무만 다 하면 그만이었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장사는 차원이 달랐다. 본사에서 일정 부분 지원을 해주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 또한 한계가 분명했기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내가 책임지고 관리를 해야 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매출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3년간 전임 경영주들이 손을 놓다시피 한 결과였다. 한 번 떠난 고객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야간 근무자 한 명만 두고 두 사람이 교대로 매달렸지만 한 달 내내 일해봤자 손에 들어오는 건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고 아내와 상의 끝에 맞교대라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무늬만 사장일 뿐 웬만한 파트타임 근무자보다 못한 삶의 시작이었다.


음력 7월 7일 칠석날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매일 정오와 자정, 하루 두 번 우리 부부는 가게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다. 애틋한 애정 표현은 고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한 사람이 퇴근하면 남은  사람이 배턴을 이어받아 달리듯 일을 시작했다. 퇴근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늦어진 시간만큼 다음 출근에 지장을 주기에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주말 이틀 동안만 오전에서 저녁까지 근무할 사람을 따로 구하고 나머지 평일은 절반씩 나눠서 우리가 했다.


자영업자, 특히 같은 업종의 경쟁점이 근거리에 붙어있는 자영업자의 삶은 잔인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방을 죽여야 했고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나가는 데스매치(death match)와도 같은 생활이었다. 잠깐 한눈을 팔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그 모습은 흡사 콜로세움에 내던져진 검투사와도 같았다.


꼬박 2년을 그렇게 살았다. 주중에는 죽도록 일하고 주말에는 쓰러져 잠만 자는 단순한 생활의 연속, 그 생활을 2년 넘게 했다. 가끔 잠자는 시간을 아껴 아내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간단한 외식을 하는 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외출이자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이었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전직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의 말처럼 죽도록 노력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가게를 인수한 후 2년 가까이 흘렀을 때였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었지만 여러 방면으로 확인한 결과 점포 인수 당시 맞은편 경쟁점에 4:6 정도로 밀리던 매출액이 6:4를 넘어 어느새 7:3 정도의 비율로 역전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디긴 해도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만 2년 넘게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맞은편 경쟁점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온 그날부터였다. 가끔씩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출근하는 아내분을 먼발치에서 보긴 했지만 사장을 대면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짧은 인사가 오고 간 후 사장은 본론부터 얘기했다.


"사장님, 고생 많으시죠? 저희들 이번 달까지만 하고 폐점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그분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본사 입장에서도 월세 부담하는 거 힘들었을 겁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어딜 가서 뭘 해도 이 만큼 못 벌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장님도 얼른 돈 벌어서 다른 일 하세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딱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고생하셨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경쟁점의 폐점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는데 이겼다는 기쁨도,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도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아빠 엄마를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에 이게 사람 사는 것이 맞나 싶은 자괴감과 왠지 모를 서글픔이 더 크게 밀려왔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면 당장이라도 던져버리는 게 맞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싸구려 감정에 휘둘려 살면 언제든 도태되는 게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매정하기까지 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한동안 소용돌이쳤다. 다 같이 잘 살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적어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 속에서 본격적으로 장사에 매진할 무렵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이 전해졌다. 경쟁점이 폐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가을 일요일,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 선물은 2년 넘게 고생하면 살아온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졌다.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행복'이란 단어를 내 인생에서 꼭 한 번만 써야 한다면 바로 이때였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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