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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02. 2022

저는 삐딱합니다

내가 문제인가 세상이 문제인가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험난한 세상을 살아온 후천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의심병 환자다. 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현상들에 대해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인들로부터 섭섭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오해를 살 때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나는 '카더라 통신'을 극도로 혐오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이란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2019년 봄의 일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딸 모건 스타크의 대사 '3,000만큼 사랑해.'라는 대사의 의미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무 의미 없는 대사일 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스타크 부녀가 자주 먹는 치즈버거의 가격을 의미한다는 얘기까지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그중 가장 황당했던 주장을 들은 것은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는 내게 헐레벌떡 뛰어 온 알바 녀석이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어벤저스 엔드게임 보셨죠? 혹시 그거 아세요? '3,000만큼 사랑해'라는 대사가..... 아 글쎄 그게 이제까지 개봉한 어벤저스 시리즈 영화 시간을 다 합친 거래요. 그게 정확히 3,000분이라는 거죠. 놀랍지 않아요?"


언뜻 듣기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검색 사이트 영화 정보 제공에 나오는 러닝타임 기준인지 엔딩 크레디트 올라가는 시점까지인지 쿠키영상 포함인지 아닌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는 상황이니 미리 답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내가 확인을 좀 해봐야겠네.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검색창에 나온 영화 정보를 토대로 상영시간을 다 더해 보면 알겠지."

언제나 그랬듯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집요한 성격이 또 한 번 발동했다.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이란 생각을 했는지 알바 녀석의 반응은 당황 그 자체였다.

"우와~ 사장님 같은 반응 처음 봐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했길래 그래?"

"알아낸 사람 대박이라고, 다들 신기하다고 난리도 아니죠. 그걸 일일이 다 더해서 확인하겠다는 사람은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지현(가명)아, 세상엔 무수히 많은 거짓 정보들이 넘치거든. 대부분이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만 가끔은 악의를 갖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들도 많아. 이른바 가짜 뉴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언론 같은 것들이 그런 예가 될 수도 있지. 그런 것들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는 거야. 이번 일은 웃어넘길 수준이지만 앞으로 네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지금 내가 하는 말 명심했으면 좋겠네.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뭔가를 판단할 때 최소한 합리적 의심을 한 번쯤은 해야 하는 거야. 일단 오늘 네가 한 말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는 내가 내일 증명해 보일게."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접 계산을 해보았다. 얼마 전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 플러스를 기준으로 해도 최대 2,900분 정도를 조금 넘길 정도였다.

다음날 직접 만든 도표를 보여주었더니 지현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곤 상상을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얼마 후 논란이 확산될 무렵 어느 행사장에서 밝힌 앤서니 루소 감독의 해명(?)을 통해 모든 것이 명쾌하게 밝혀졌다. 토니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딸이 실제로 그에게 한 말이고 그것을 대사로 넣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의심병 환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렇게 세상을 피곤하게 사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곤 한다. 누군가 나를 속이려고 작정한 결과 뒤늦게 내가 속은 걸 알게 된다면 화가 나지 않겠냐고.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했던 초창기, 언론에선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확진자 수가 급속도로 증가한다며 연일 '정부의 방역 실패'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 기사의 제목만 보고 마치 정부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고 분노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만 관심을 두고 찾아봐도 그 기사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연 그 당시 정부의 방역은 실패를 했던 것일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고강도 선제 검사를 실시했음에 비해 일본 정부는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었기에 제대로 된 검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검사를 받는 사람들 숫자가 비교불가일 정도로 많으니 당연히 확진자 숫자가 그만큼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건 현 정부를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철저히 중립적인 위치에서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당시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내 자식이 1,000개의 문제를 풀어서 10개의 틀린 답을 써냈고 이웃집 누군가의 자식이 10개의 문제를 풀어 5개의 문제를 틀렸다고 치자. 이걸 두고 전후좌우 다 무시한 채 단순히 오답 숫자만을 놓고 내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옆집 아이보다 2배나 더 틀렸냐?'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속이려 드는 자가 나쁜 놈일까? 아니면 그런 선동에 넘어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함을 탓해야 할까?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거라는 점이다. 손가락질 몇 번으로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파급력 또한 엄청나다 보니 그런 점을 노리고 악용하려 드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사자성어 중에 아무런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을 뜻하는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말이 있다. 아무나 쉽게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불신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극히 일부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처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병적인 집착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와 최소한의 뚜렷한 주관만은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지금보다는 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덧)지난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있었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판단은 여러분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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