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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27. 2022

시끄러움도 위안이 된답니다

세상을 산다면 이들처럼

딸아이 점심을 차려 주고 설거지와 함께 간단히 집안 정리를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이후 잠들기 전까지 1시간 정도의 여유가 하루 중 내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보통 때라면 Helloween이나 Guns 'N' Roses 같은 메탈 그룹의 비교적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SNS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자주는 아니지만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가끔씩 보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블로그를 순서대로 보던 중 유독 모 사이트에 올라온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층간 소음에 관한 기사였는데 그 내용이 평소와는 달리 모처럼 훈훈한 결말이라 내 눈길을 끌었다.


각 사진 출처 : 보배드림에서 캡처한 기사의 일부에서 다시 캡처

어린아이를 키우는 위층 아줌마가 층간 소음 문제로 아래층 어르신에게 먼저 양해의 글과 함께 작은 선물을 보내고 그 글을 읽은 어르신께서 아이들이 먹을 빵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는 사연도 감동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어르신께서 짧은 편지 속에 남긴 표현이었다.

혼자 외롭게 사는 늙은이 시끄러움도 위안이 된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소음마저 외로움을 잊는 수단으로 승화시키는 그 대인배 같은 넓은 아량과 그 마음을 너그럽게 표현한 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몸에 불같은 분노를 안고 사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또한 10여 년 전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어르신의 그 짧은 글이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층간 소음이란 것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다. 피해자 입장이 되어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나도 그랬었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될 일에 다들 왜 그리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고 충돌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층간 소음 문제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2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모질게 당한 후 피해자의 고통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살던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였다. 4층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당시 5층에 살던 가족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아들 둘을 둔 그 집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 집의 남편이란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취 상태로 새벽에 들어왔고 가끔은 자기 집을 찾지 못해 남의 집 현관문을 발로 차고 고성을 지르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지 그 집 여자도 그에 못지않았다. 남편이 그러면 부끄러워서라도 못하게 말려야 할 텐데 한 술 더 떠 문을 걸어 잠그고는 열어주지 않아 그 소음 때문에 경찰이 출동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낮에는 매일 침대나 가구를 옮기는 건지 수시로 무거운 물체를 끌고 넘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니 아이들 인성이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축구공과 농구공을 벽이나 남의 집 현관문에 던지고 차는 행위는 기본이고 날씨가 궂은날이면 거실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기도 했다. 메모를 남겨서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 직접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한번 죽어 보란 듯이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언젠가 한 번은 친구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미식축구를 하는 것인지 절구질을 하는 것인지 10초 간격으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참다못해 올라가서 "아저씨가 야간에 일을 해서 지금 잠을 자야 하거든. 공놀이는 밖에 나가서 좀 하면 안 될까?"라고 했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서요? 나중에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세요."라며 문을 닫아버린 적도 있었다.


말로 해서 통할 사람들이 아님은 진작에 알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까지 문전박대를 당하고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대화로 해결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그날부터 완전범죄에 가까운 보복을 하기로 마음먹고 어떤 식으로 골탕을 먹일까 고민을 했으나 결과는 너무 싱겁게 끝을 맺었다. 5층 빌런들이 어느 날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이사를 가버린 것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큰 충돌 없이 끝나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반면 제대로 참 교육을 시키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CCTV 위치까지 다 체크하고 투명인간처럼 접근해서 차에 까나리 액젓 붓고 현관문 도어록에 순간접착제 왕창 뿌려줄 생각이었는데.....


얼마 전 우리나라 인구의 50% 정도가 아파트에 산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인즉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언제든 층간 소음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조용할 때면 위층 사람의 휴대폰 진동소리마저도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세상이다.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층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고 아래층 사람들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입부에 예시로 든 저 글을 두고도 픽션이니 주작이니 여러 말들이 오고 갈지 모르겠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제발 픽션이 아니길 바란다. 아니, 픽션이라도 좋으니 이런 글들이 자주 보였으면 한다. 살아감에 있어 최소한 이 정도의 따뜻한 글이라도 보여야 세상 살 맛이 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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