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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02. 2022

지구 반대 편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철새는 날아가고, 그녀는 사라지고

그에게는 Simon & Garfunkel의 'El Condor Pasa'라는 곡을 들으면 생각나는 여자가 하나 있다.  

그녀는 그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기고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노래가 아닌 연주곡으로 준비했으니 가급적이면 BGM처럼 깔아놓고 글을 읽으시길 권한다.  

그럼 지금부터 뮤직 스타트!!!


노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글 맨 밑에


어린 시절, 총잡이들이 등장하는 서부 영화에서 주인공의 무차별 총격에 쓰러지는 인디언들을 볼 때마다 유독 어두운 표정을 짓는 한 소년이 있었다. 단순히 선악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에 뛰어들어 총질을 해대는 쪽이 나쁘다는 게 소년의 생각이었다. 그 모든 것이 '개척'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일들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침입'이자 '약탈'이었다.


그 소년이 인디언이나 북중미, 남미 계열(이하 남미로 통칭)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남미에 대한 소년의 짝사랑은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언젠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첫 여행지는 무조건 페루와 볼리비아 두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잉카문명을 상징하는 마추픽추, '육지 속 바다'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 대충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온다는 우유니 사막 등 여행지를 떠올릴 때면 생각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반년 정도 거주하며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의 삶을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법, 그는 편의점이란 사슬에 묶여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근거리 국내여행마저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장 속에 갇힌 새의 심정이 그러할까. 실망과 낙담 속에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던 그가 기적과 같은 인연을 만난 것은 200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늦은 밤이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들어오는 늘씬한 여자를 보는 순간 그는 한순간 숨이 멎는 듯한 경험을 했다.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 건강미 물씬 풍기는 피부색, 살짝 부족해 보이는 영어 발음까지 그는 그녀가 남미 여자임을 한눈에 알아챘다.


어떻게 해서든 말을 붙여보고 싶었던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고르고 카운터에 온 그녀에게 어디서 온 것인지, 지금 여행 중인지에 대해 물었다. 자신을 페루에서 왔다고 밝힌 그녀는 일본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시 한국에 들렀다고 했다. 정해진 일정 없이 온 것이기에 부산에서 며칠 머물다 서울로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미 그녀의 미모에 빠져 절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였던 그는 새삼 그녀가 대견해 보였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남자도 하기 힘든 배낭여행을, 그것도 지구 반대편 머나먼 아시아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는 물음에 그녀는 날이 밝으면 서울로 갈 거라 했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던 그는 그녀가 서울로 가는 방법을 약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그녀는 그의 친절에 고마워하며 자신이 손수 깎아 만들었다는 나무로 된 작은 병 하나를 배낭에서 꺼내 보였다. 병뚜껑을 열어 그의 코 끝에 살짝 갖다 대는 그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가 그의 콧속까지 전해졌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안데스 고원의 향이로구나.'라는 생각에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표정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는 원한다면 선물로 주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정성이 가득한 물건이라 그냥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녀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냥은 받지 못하겠다고 하니 1,000원짜리 한 장만 달라고 했다. 그는 그 정도로 낮은 가치의 물건이 아니라며 그녀에게 2만 원을 건넸다. 그 돈에는 앞으로 남은 일정과 귀국에 이르기까지 무사하기를 기원한다는 뜻도 포함된 거란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그에게 한국인의 친절함을 새삼 느꼈다며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문을 나섰다.


간밤의 여운은 날이 밝은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행여 병 안에 있는 향이 날아갈까 비닐에 밀봉을 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은 그는 아내가 어서 빨리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내가 이렇게 자기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놨는데."

한참이 지나 가게로 들어서는 아내를 향해 그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그래서? 이걸 2만 원이나 주고 샀다고? 이 아저씨가 돈이 남아도는 줄 아나?"

"어허이, 수제품이라니깐 수제품. 핸드 메이드 몰라? 단돈 2만 원에 지구 반대편 안데스의 향을 산 거란 말이야. 싫으면 그냥 나 주든가."

으름장이 통했던 것인지 그의 아내는 잽싸게 병을 낚아채서 요모조모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아내가 가리킨 것은 병 밑바닥에 붙어 있는 작은 스티커였다.

"그거? 본인만의 시그니처 같은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와 달리 그의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로 스티커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 오빠 눈에는 이게 본인만의 시그니처로 보이나?"

잠시 후 그의 아내가 눈앞에 불쑥 들이민 병 밑바닥에는 'Made in Chin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짧은 순간 그의 동공은 급격히 흔들렸고 그와 동시에 입에선 얕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당했구나.'

 

그의 아내는 그동안 무시당했던 서러움을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그를 향해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안데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안데스 산맥이 중국으로 공간이동을 했나? 언제부터 핸드 메이드와 메이드 인 차이나가 같은 뜻으로 쓰였지? 우와~ 똑똑하신 우리 오빠님이 사기를 당할 때도 있구나."

빗발치듯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굳게 다짐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페루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내 언젠가 그녀를 잡으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에게는 선물을 받으면 바닥부터 살펴보는 희한한 버릇이 생겼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카바니에 가까웠다. 멕시코의 루이스 에르난데스(좌) 선수와 우루과이의 에딘손 카바니(우) 선수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El Condor Pasa(엘 콘도르 파사)는 잉카족의 마지막 추장이었던 Tupac Amaru(투팍 아마루)를 애도하는 안데스 지역의 전래 민요이다.
이 곡은 Simon & Garfunkel(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러 더욱 유명해졌지만 곡 자체는 18세기부터 내려오는 페루 민속음악을 1913년 페루 작곡가 Daniel Alomias Robles(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악보에 옮겼다고 한다.
본래는 가사가 없었는데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말을 붙인 것으로 추정되며 케츄아어(안데스 인디언어)로 옮긴 것으로 이것을 스페인어로 옮기고 다시 영어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Paul Simon(폴 사이먼)이 가사를 붙여 개작한 것으로 1970년 9월 12일 빌보드 차트에 처음 등장하여 18위를 마크하였던 작품이다.

<출처> 어느 유튜버가 옮겨온 글을 살짝 수정해서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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