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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30. 2022

또 응급실? 자꾸 가면 버릇된다니깐

응급실은 엉겁결에 가는 엉겁실이 아니다잉

아내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처럼 작은 키를 감안하더라도 성인 몸무게가 30kg대 중후반이었다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아내의 몸은 늘 그대로였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드는 약한 아내를 볼 때마다 2세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아니, 그보다는 임신 기간을 제대로 버틸 수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런 아내가 3kg이 넘는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딸아이는 첫돌이 될 때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안 먹어서 고민, 기껏 먹여놨더니 다 토해내서 문제라고 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정기검진과 예방 접종을 빼고는 생후 1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했던 딸아이는 뭘 먹을 때에도 일단 입안에 들어간 것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배우 김희애 씨의 유행어처럼 절대 입 밖으로 내놓는 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네 집 아이는 새벽에 응급실에 갔네, 누구네 둘째는 열이 떨어지지 않아 입원을 했네 하는 소식들은 모두 강 건너 불만큼이나 먼 얘기처럼 여겨졌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면 저렇게 부실할까?' 하는 자만심 가득한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그런 자만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라도 하듯 한순간에 날벼락을 맞았다.


첫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늦은 봄 일요일 아침, 늘 그렇듯 안방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내를 보고 거실에서 모처럼 휴일의 여유를 즐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오빠~~~ 빨리 이리 와봐. 쩡이가 이상해.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평소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아내임을 잘 알기에 또 무슨 일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가 싶어 어슬렁어슬렁 안방으로 가보니 눈앞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통나무처럼 일자로 곧게 누워 있는 아이의 눈동자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하얗게 질린 얼굴과 대비될 정도로 입술은 점점 파랗게 변해갔다. 순간 정신이 반쯤 나갔지만 어떻게든 냉정을 찾아야 했다. 이미 실성한 사람처럼 넋이 나간 아내에게 119에 신고하라 말한 후 다시 아이를 살펴봤다. 이름을 불러도 몸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주무르고 뺨을 때리며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경직된 아이의 몸이 서서히 풀리는 게 눈에 보였다. 혈색도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고 동공 반응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 때마침 도착한 119 대원은 아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대수롭지 않게 "돌 경기(驚氣)네요. 위급한 상황은 넘긴 거 같으니 딱히 저희들이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주 가시는 병원 있으면 그쪽으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오래 머물 수도 있으니 아이 짐도 좀 챙기시고요"라고 했다.

  경기(驚氣) :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병증으로 급경풍과 만경풍의 두 가지로 나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난생처음 가본 응급실은 휴일 아침임을 감안하더라도 예상보다 조용했다. 간혹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수시로 피투성이 환자가 들어오는 일도 없었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의 모습도 없었다.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얼마 되지 않아 젊은 의사와 간호사 한 명이 왔고 내가 말한 그간의 진행상황과 현재 상태를 보고는 체온이 정상보다 높은 편이니 링거를 맞으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딸아이는 좀 전까지 의식이 없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을 했다. 링거 하나를 다 맞기도 전에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응급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할 정도로 멀쩡했다. 잠시 후 다시 찾은 의사는 일단 퇴원을 하되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소아과에 예약을 한 후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두 여자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운전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내가 있어서 빠르게 대처하고 넘어갔지만 행여 내가 없는 상황에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새가슴을 가진 아내는 혼자서 허둥지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고 그러다 큰일이라도 발생하면 골든타임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눕히고 아내를 불러 신신당부를 했다.

"만약 내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절대 당황하지 말고 바로 가까운 응급실로 가. 내가 없을 땐 네가 유일한 보호자야. 알았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필요한 물품도 미리 가방에 챙겨 놓고."

당시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지만 이 말이 나비효과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한 번 호된 경험을 해서인지 아내는 밤이나 새벽에 아이가 열이 오를 때마다 응급실을 찾았다. 처음 한두 번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지만 조금 과장해서 분기별로 한 번씩 응급실을 방문하는 상황이 계속되니 나중에는 모든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 이번에는 뭔 일로 갔는데??"

"독감이래. 얘는 참 희한한 게 다 죽어가다가도 링거만 꽂으면 생생해진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닌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나이 먹도록 링거 근처도 못 가본 나도 있는데 딸아이는 겨우 7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10번 넘게 링거를 맞았다. 내뱉은 말이 있으니 툭하면 응급실에 가는 아내를 탓할 수도 그렇다고 나약한 녀석이라고 아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7세 어린이의 흔한 응급실 인증 사진


학교에 입학하기 전 딸아이가 7살 되던 겨울, 마지막으로 응급실을 다녀온 아내에게 "이거 이렇게 나가다가는 아예 병원에 살림 차리는 거 아닌가 몰라. 쟤는 어떻게 연례행사처럼 응급실을 가는겨?"라고 푸념 섞인 한마디를 한 적이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그로부터 2년 후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시작과 동시에 아이는 응급실을 거쳐 방학의 절반 기간 동안 병원에서 생활을 했다. 그때 새털처럼 가벼운 입놀림 때문이라고 아내로부터 얼마나 많은 구타, 아니 구박을 받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그 이후로 딸아이는 가벼운 감기 증상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병원에 가는 일이 없었다. 가끔 옛 일을 회상하며 딸아이에게 "이봐, 딸!! 아빠는 말이야. 미술시간에 조각하다가 손가락 절반이 날아갔을 때도 병원 안 가고 혼자서 티슈 감고 해결했어.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애가 그렇게 약해 빠졌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다.

"아빠, 그게 자랑이야? 그런 걸 두고 미련하다고 하는 거야. 실기점수 감점당하기 싫다고 그걸 참는 미련 곰탱이가 어디 있어? 꼰대도 아니고 틈만 나면 옛날 얘기나 하고 말이야."


과연 내가 미련 곰탱이가 맞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50년 넘게 살면서 병원 간 횟수보다 딸아이가 응급실에서 링거 맞은 횟수가 조금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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