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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Oct 04. 2022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나가고

그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랄 뿐

길고 긴 겨울의 끝자락이 보이는 듯하다. 한 때 몇 만 명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지역의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가끔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할 때도 있는 것을 보니 끝이 오긴 오려나 보다. 휴일이 끼어 상대적으로 검사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월요일임을 감안하더라도 감소 추세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제는 언제 시작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진 기억의 조각들만 남은 지금,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그 암흑의 터널 같은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나 싶을 정도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살아날 방법을 찾긴 했지만 코로나 19 사태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겨울이자 한파였다.


넓게 보면 전 세계가, 시야를 조금 좁히면 모든 국민이 고생했지만 그중에서도 고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은 자영업자들이었다. 매출이 반 토막 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주변 상가에서 폐업을 하는 곳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볼 때면 나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회사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는 각종 수치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짓눌렀다. 파란색 막대그래프로 나타나는 전년 대비 매출액의 증감 수치는 한 때 60% 내외를 기록하기도 했고 400명 가까이 찾아주던 1일 고객 수도 200명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가상승을 고려하자면 적어도 전년 대비 110~120% 정도의 매출액이 나와야 하고 아무리 못해도 최소 300명 가까운 고객이 찾아줘야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데 그 두 개의 숫자가 곤두박질친 것도 모자라 정확히 반토막 난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간 수많은 위기를 겪고 이겨내기를 반복했지만 이번만큼은 장사를 시작한 후 처음 겪어보는 최대 위기였고 그 고통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수시로 정부에서 지원금을 지급했고 본사에서도 각종 혜택을 지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매월 몇백만 원씩 줄어드는 수입에 비해 몇 개월 만에 한 번씩 일회성으로 주는 돈 몇 푼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것만큼 적은 액수였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들거나 몸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하는 일은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방역 관련으로 일은 늘어났다고 보는 게 맞다. 오는 손님마다 일일이 체크인을 하고 수시로 바뀌는 집합 금지 시간을 고객에게 알리고 통제하는 것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수긍하고 잘 따라 줬지만 마스크 쓰기나 명부 작성을 거부하거나 형식적으로 낙서하듯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는 사람들을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많았다.


하루하루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중에 가끔씩 SNS에 올라오는 댓글들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장사가 안되면 문을 닫는 게 낫지', '자영업자가 무슨 봉이냐?', '그만 좀 징징거려라', '피 같은 세금으로 자영업자들에게 다 퍼준다' 같은 글을 볼 때마다 마치 죄인이 된 듯했다. 지원금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라는 몇몇 고객들의 안부 인사마저 비아냥처럼 들릴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웠던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학여행을 못 간 딸아이, 대학에 입학하고도 2년 가까이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막내 조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가까운 친척만 모시고 조촐하게 식을 올린 지인처럼 우리 모두가 피해자였고 큰 병을 앓았던 거라 생각하면 안 될까?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그런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 큰 기대였을까?


코로나 19 사태는 우리 업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앱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상품을 찾아가는 픽업 서비스와 와인이나 맥주에 대한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도 꾸준한 것을 보면 그만큼 대면 고객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점포 내에 꽤 넓은 시식 공간을 갖춘 우리 입장에서는 꽤 치명적인 변화를 맞은 셈이다.


한 때는 시식대가 꽉 찰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자주 봤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처럼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사람들 모두 어느새 익숙해진 것인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무는 경우도 거의 없고 불가피하게 시식대를 이용할 때에도 취식이 끝나면 이내 자리를 뜬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어쩌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끔은 오래전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오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자면 코로나 19 사태 발생 이전과 비교하여 80%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출과 고객 수는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이 정도면 잘 견뎠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다가도 또 어떤 위기가 닥쳐올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오듯 또 한 번의 시련을 이겨냈으니 이제는 내 인생에도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날이 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따뜻한 봄햇살을 예약하고 싶다. 찬란한 햇살 속에 그동안 가슴 졸이며 견뎠던 기억,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고 싶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번 한파는 힘없는 자영업자가 버티기엔 너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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