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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Sep 26. 2022

“우린 아플 자유도 없잖아요.”

이럴 때 자영업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명절 연휴를 앞둔 목요일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출근하는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아 이유를 물어봤더니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다. 그 전날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던 게 생각이 나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집에 간 나는 무슨 예감이라도 했던 건지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며 아내가 퇴근 후 할 일들을 미리 해뒀다.


그날 저녁 퇴근과 함께 쓰러진 아내는 늦은 밤, 39도까지 오를 정도로 고열에 시달렸다. 그런 아내를 두고 출근하려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딸아이에게 혹시 코로나에 감염되었을지 모르니 불필요한 접촉은 하지 말고 수시로 살펴보라는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섰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라는 원망 가득한 생각과 함께 가게에 들어섰지만 걱정이 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인 금요일은 아르바이트생도 출근하지 않아 맞교대를 하는 날이고 그다음 날부터는 연휴의 시작이라 근무자들 모두 고향으로 가거나 집에서 친척들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등 출근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내의 부재는 곧 하루 24시간 모두 내가 일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보통 명절 연휴 때라면 내가 14시간 정도, 아내가 그 나머지 10시간 정도를 맡아 맞교대를 하며 보내곤 했는데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자 온몸에 맥이 풀렸다. 마치 낡은 동아줄에 의지해 낭떠러지에 겨우 매달려 있는 내게 커다란 바위 하나가 어깨에 올려진 것 같은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시간을 근무하는 일상에 아내가 일하는 시간까지 더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명절 당일 심야 영업을 하지 않겠다고 본사에 미리 통보를 해둔 터라 어떻게든 만 하루만 버티면 단 몇 시간만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날이 밝고 아내에게 몸 상태를 물어보며 그 얘기를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예전에 2002 월드컵 때도 그렇게 했었던 경험이 있다고 설득해봤지만 30대 초반 젊은 나이와 지금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며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 했다.


부랴부랴 주말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연락했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며 살지도 않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기에 말 꺼내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며 각자 가능한 시간을 얘기했다. 거제도 고향으로 내려가기 직전 오전에 서너 시간 정도 시간을 뺄 수 있다는 근무자, 친척들이 내려오는 저녁시간까지는 할 수 있다는 근무자까지 조각조각 이어 붙이다시피 해서 겨우 24시간 근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비록 근무 시간대가 맞지 않아 하루에 세 번 네 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보살필 잠깐의 여유 시간과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연휴기간 내내 비슷한 일과를 보내던 중 다행히 아내는 일요일 오후쯤부터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고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기력을 회복했다. 월요일부터 당장 출근하겠다는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은 후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여유 시간이 있는 아르바이트생과 고향인 대전에 갔다가 그날 돌아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해 오후와 저녁 시간대를 부탁했다.


그렇게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보내자 주변 상가 사장님들이 아내의 부재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차마 코로나 확진이라 말할 수는 없어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는 중이라 했지만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특히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 가게를 찾는 바로 옆 PC방 사장님은 아내 걱정과 함께 과로사를 걱정할 만큼 장시간 일을 하는 내 걱정까지 했다.


똑같이 24시간 일하는 업종이라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누던 PC방 사장님께선 "사장님이나 저나 참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직업인 거 같네요. 직장인들이야 아플 때 그냥 쉬면 그만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개인 사업자도 아니고 프랜차이즈라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우리는 아플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잖아요."라는 말까지 했다. 조금 과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처음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본사 직원에게 경영주가 확진 판정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문의한 적이 있다. 예상외로 본사 직원은 회사에서 대체 근무자를 파견해준다는 답변을 했다. 본사에서 어쩐 일로 그런 시스템까지 갖췄을까 놀라는 내게 직원은 말을 이어 나갔다. 회사원들 정상근무 시간, 정확히 말해 오전 9시에서 저녁 시간대까지만 가능하다고. 결론적으로 말해 나처럼 심야에 일을 하는 사람은 아파도 대체 근무자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PC방 사장님 말씀처럼 나 같은 자영업자는 아플 자유도 없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거의 일주일을 다 채우고 다시 출근했다. 후유증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에 마음 놓고 퇴근도 못하는 내게 출근과 동시에 동분서주하던 아내는 예의 앙칼진 목소리로 나를 몰아붙였다.

"야!! 이게 뭐야? 유통기한이 어제 까지잖아. 물건 넣을 때 이런 거 다 체크하라고 했어? 안 했어?"

그 잔소리를 들으니 이제 정상으로 되돌아온 게 맞는구나 싶었다. 그 목소리가 많이도 그리웠다.


서둘러 아내 곁에 다가가 유통 기한 지난 상품을 넘겨받으며 한마디 했다.

"아줌마, 우리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다시는 아프지 마. 그게 우리가 살 길이야. 나도 최선을 다 해 버텨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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