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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23. 2022

<短 다섯> 조충문(弔蟲文)

보글보글 끓이다가 실패한 글

유세차(維歲次) 임인년(壬寅年) 6월(六月) 23일(二十三日)에 부란치(夫蘭治) 작가 아르웬은 한 페이지 글로써 충자(蟲子)에게 고(告)하노니, 매년 여름밤만 되면 밝은 불빛에 혹(惑)하여 우리 가게로 노빠꾸 직진을 하는 불나방 같은 짓은 하지 말라 네 조상에게 일러 후세(後世)에 전(傳)하라 하였거늘 너는 그 말을 듣지 못했던 게냐. 


한낱 미물(微物)이라 해도 그 생명의 소중함에 경중(輕重)은 없을 터, 조심조심 또 조심하여 비행(飛行)을 하면 좋았을 것을 네 어찌 인간의 커피를 탐하다가 이렇듯 허무하게 목숨을 버린 것인지 그저 애통하고 또 비통하도다. 나의 신세 박명(薄命)하여 심야에 홀로 외로이 일을 하다 보니 말벗이 부족하여 너를 벗 삼아 하룻밤 시름을 잊고자 했으나 오늘 이렇게 너를 영결(永訣)하니,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구를 한(恨)하며 누구를 원(怨)하리오. 부디 내세(來世)엔 동쓰식품 회장의 자제로 태어나 멱심(幎心) 목하(木下) 고루두(高淚頭) 커피를 원 없이 마시길 바라노라.



내 커피에 빠져 익사하신 충자(蟲子)님



<본 글은 조선 순조 때 유 씨 부인이 지은 수필, 조침문의 일부를 차용해서 쓰다가 마감시간에 쫓겨 실패한 글임을 뒤늦게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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