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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Sep 28. 2022

보살님,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물 한 컵 건네고 알게 된 미래

세상을 살다 보면 현대 과학과 기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두 번 정도 그런 경험을 한 기억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겪은 일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지 1년쯤 되는 2004년 8월쯤 되는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1층에 집주인이 거주하고, 그리고 2층에 세 들어 사는 가구가 둘인 다세대 주택이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에 집에서 밀린 빨래도 하고 이불도 밖에 널며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며 집 정리를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때만 해도 본가에서 독립을 하고 이곳에 정착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같이 일하는 사람 서너 명을 제외하곤 거의 없을 때였다. 그냥 무시하고 못 들은 척 방에 누워있는데 이번에는 묵직한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만큼은 거의 최고 수준에 가까운 내가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 목소리를 듣자 왠지 그냥 무시하고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보통 스님들이 입는 법복을 입은 40대 중반쯤의 여성이 서 있었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으로 합장을 하며 바라보는 시선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겼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처럼 금방이라도 옷 속에서 광선검을 꺼낼 듯한 포스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자 그 아주머니는 예상외의 말을 꺼냈다.

"시원한 냉수나 한 사발 얻어마실까 합니다."


기껏해야 '좋은 말씀' 전해드리려고 왔다느니 조상님의 기운이 어쩌느니 하는 말을 꺼내리라 생각하고 그에 대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던 내게 던져진 예상치 못했던 말에 당황한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서둘러 냉장고로 향했다. 끓여둔 보리차에 얼음 몇 조각을 띄워 건네며 멀쩡한 아래층 주인집을 놔두고 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우리 집을 찾았는지 물었다. 


아주머니께선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말없이 빙긋 웃으시며 물을 마시고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꺼냈다.

"시원하게 잘 마셨습니다. 받아먹은 것이 있으니 물값을 좀 해야겠는데..... 제가 해드릴 말씀이라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어떤 아줌마의 일장연설을 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골탕 먹일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느닷없는 한 방이 날아왔다. 

"요즘 만나는 여자분이 계시네요."


어쩌다가 넘겨짚어서 하나 맞힌 것이려니 생각하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더듬거리는 말로 몇 마디 하려는데 뒤이어 확인 사살에 가까운 말이 귀에 꽂혔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으실 거고.... 두 분 성격상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으세요."


모든 게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아내 가족들로부터 돌아가며 공격을 받던 시기였다. 정작 그걸 막아주고 수습해야 할 아내는 강 건너 불 보듯 수수방관하고 있었고 모든 걸 나 혼자서 해결하다 보니 처가 쪽 식구들은 그런 나를 오해하게 되고 다시 그 오해를 풀기 위해 혼자서 동분서주하면 나를 점점 더 별난 인간 취급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시기라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을 때였다.


그 말을 듣자 특유의 삐딱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갑자기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짧은 말과 함께 자리를 뜨려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매달리며 더 하실 말씀이 없는지 물었다. 또다시 부처님과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아주머니께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결국엔 두 분이 인연으로 맺어질 겁니다. 여자분 마음이 이미 어느 정도 기울었네요."라고 하셨다.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불쑥 나타나서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로 툭툭 던지는 몇 마디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그냥 넘겨짚어서 하는 말인지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지만 아주머니께선 그에 대한 답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셨다.


"어차피 주관이 뚜렷하고 자아가 너무 강하셔서 남의 말을 안 들을 거라는 거 알지만 훗날 제 생각이 나거든 지장보살을 모신 사찰을 다녀보세요. 상대적으로 말년이 편한 대신에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도 많을 거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언젠가 몇몇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내가 더위를 먹어서 헛것을 보았다든가 낮잠 자다가 꿈을 꾼 것일 뿐이라든가 하는 해프닝으로 여겼다. 그중 독특한 의견을 낸 두 사람이 있었는데 불교에 심취하여 전국 사찰 중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는 한 친구는 불심이 깊은 사람 중에 가끔 신통력을 발휘하는 분이 있다는 얘기를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내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만들어낸 사기극이라는 신선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꿈을 꾼 것도 아니고 헛것을 본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겪은 일이 분명하고 그 당시 아내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아내의 자작극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 부부의 삶을 돌아보면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충돌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비교적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보살님의 말씀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가끔 그날을 떠올릴 때면 왜 더 많은 것을 묻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도 드는 반면 더 묻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게 차라리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이 쉰을 넘기고도 몇 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내가 돈을 얼마나 벌고 자식은 어떻게 살 것이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시점이라 시기상조 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저질러 놓은 것을 모두 수습하고 죽는 것인지 미처 마무리 못하고 가는 것인지 그것뿐이다.


다시 그 보살님을 만난다면 그거 하나만은 물어보고 싶다.

'보살님, 제 아내가 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제가 여기저기 펼쳐놓은 거 정리 다 해놓고 편하게 죽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하고 대책 없이 훌쩍 떠날까요? 그거 하나만 답 좀 해주세요. 내가 이번엔 최고급 수질의 물 한 사발 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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