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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Sep 29. 2022

저는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가까운 이웃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랜만에 외식을 하려고 아파트 출입구를 나서는데 웬 낯선 여자가 인사를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여자관계를 자랑하는 내게 묘령의 젊은 여자가 인사를 하는 것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나와는 달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아내를 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짧은 인사를 뒤로 한 채 가던 길을 가며 아내에게 물었다.


"방금 그 여자 누구야?"

"위층에 사는 수연이잖아. 바로 옆에 엄마도 있었는데 못 봤어?"

"뭐? 수연이라고? 걔가 언제 저렇게 컸대?"


딸아이보다 한 살 어린 수연이는 올해 중학생이 된 13살 소녀다. 처음 이사를 오고 본 것이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는데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한 이후 좀처럼 만날 일이 없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본 수연이는 어느새 키가 170cm에 육박하는 늘씬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아니, 수연이라면... 넌 왜 인사를 안 해? 옆에 수연이 엄마도 있었다면서? 도대체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인사성이 없냐?"

딸아이에게 묻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대신 답을 했다.

"닮긴 누굴 닮았겠어? 싸가지 없는 당신 쏙 빼닮았지. 얘는 어딜 가도 인사를 안 해. 저러니 친구가 없지. 하여간에 아빠나 딸이나 목에 깁스를 했는지 남한테 고개 숙이는 꼴을 못 봐요."


바로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그만뒀다. 굳이 따지자면 아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아내가 나를 만날 즈음부터는 가는 사람 등 떠밀어 보내고 오는 사람 철저히 검증을 해서 인연을 맺은 게 사실이었고 그 결과 언뜻 보기엔 사람을 좁고 깊게 사귀는 유형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엔 모든 인연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던 나였으나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하고 장사를 하면서 여유 시간이 없어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게다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 실망을 하게 된 일도 있었고 심지어 본인이 필요한 경우에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하는 얌체 같은 짓을 하는 경험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사람에 대해 문을 닫고 인연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니 모든 사람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특히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꽤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단골손님 몇몇이 내가 사람들에게 너무 무뚝뚝하게 대하는 거 같다고 아내에게 하소연(?)을 한 적도 있었다.


어찌 보면 독불장군식으로 타인과 교류가 전혀 없다시피 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이런 생활도 크게 나쁘진 않다. 딱히 남에게 피해를 줄 일도 없고 오로지 내 가족만 잘 살피며 살면 그만이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아내는 이런 나를 두고 밴댕이 속을 가진 속 좁은 인간 취급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이것 보세요. 밑도 끝도 없이 아무나 만나고 다닌다고 인간관계가 좋은 건 아니야. 내가 모른 척하고 있어서 그렇지 당신 만나는 사람들 중에 중요한 순간에 도움 줄 사람 몇 있을 거 같아? 날 보라고. 내가 피해 다녀도 꿋꿋하게 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안부 물어주고 선물 보내는 친구도 있고 이런 게 진정한 인간관계지. 이웃? 친구? 그까짓 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1톤 트럭 수 십 대에 나눠 실을 정도로 많이 만들 자신 있어. 엮이기 싫고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당연히 아내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노발대발 화를 내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을 하지만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번의 온오프 모임을 가져 봤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모임 속의 소모임으로 불리는 끼리끼리 문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 특정 문제에 있어 발생하는 의견 충돌 등등. 


처음 글의 주제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이렇게 가까운 이웃 많아요.'라며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억지로 끼워 맞출 것인가 그게 아니면 그냥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옳을까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을 했다. 굳이 만들어내자면 낚시를 다녀올 때마다 자연산 돔이나 우럭을 손질해서 갖다 주시는 앞 건물 호프 사장님도 가까운 이웃이고 시간 나면 언제든 와서 운동하고 가라는 옆 건물 헬스 사장님도 가까운 이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분들을 두고 가까운 이웃이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허물없이 내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그게 가까운 이웃이자 진정한 인간관계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가까운 이웃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가까운 이웃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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